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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Feb 22. 2023

임신 34주차에서 36주

출산준비 시작, 가진통, 막달 검사 및 고단백 식단 처방

34주차 증상
34주차 2일 아기 크기 2387g
출산준비(출산가방 싸기, 아기세탁) 시작

33주 3일, 주말 아침 갑자기 태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밥을 먹고 물을 마셔봐도 아기는 미동도 없었다. 남편이 배에 대고 말을 걸어보기도 하고, 따뜻한 손으로 몇 차례 배를 쓰다듬었지만 여전히 변화는 없었다. 그 길로 1시간 남짓을 달려 응급진료를 보러 갔다. 병원 도착 5분 전, 이미 지옥에 떨어진 마음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신호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아기가 뱃속에서 딸꾹질을 시작했다. 남편도 울고 나도 울고. 병원에 도착했지만 분만이 너무 많아 초음파는 따로 보지 못하고, 심박수와 수축 검사만 하고 돌아왔다. 집에 오니 아기가 조금씩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지막 응급 진료와 함께한 지옥 같은 주말을 보내고 34주를 맞이했다. 컨디션이 조금 올라왔는지 짧은 산책도, 출퇴근도, 운전도 편해졌다. 물론 배가 많이 나와 물리적인 불편함이 생기긴 했지만 어느 주수보다 더 잘 자고 컬러로 된 꿈을 꾸기도 했다. 아기의 움직임도 일정하고 컨디션도 나아지니 '나는 내 삶을 산다.'는 임신 초기의 마음가짐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34주 2일, 아랫배에서 아주 작은 풍선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기분이 들어 매번 내 맥박이 여기서도 느껴지나 보다 하다가도 순식간에 딸꾹질로 변하는 과정을 경험하면 '아 우리 아기의 숨이 느껴지는구나.' 싶다. 살아있는 생명이 있구나 내 피부 아래.


34주 3일, 아기 세탁을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걸린다는 손수건 세탁. 세제 없이, 세제 넣고, 세제 없이 총 3번을 해야 해서 넉넉하게 1.5일의 시간을 잡고 시작했다. 아기용품 중 가장 많이 쓴다는 손수건을 과하게 준비하고 싶지 않아 30장 정도로 준비하고, 옷 선물을 받을 때마다 딸려온 손수건 10장 정도까지 더하니 총 40장 정도가 되었다. 육아용품 후기들을 찾아보다가 많게는 80장까지 준비했다는 후기를 보고 멈칫했다. 정말 그 정도가 필요한 건가. 세탁하다가 진 다 빠지겠는데 싶기도 하고.

밤부베베 시그니처패키지로 준비 완료!


34주 4일, 출산휴가를 시작했다. 13개월의 장기 휴직 중 첫 번째 날일 뿐인데, 하루짜리 연차 같은 기분이라 부랴부랴 밀린 집안일을 했다. 환기에 수건과 속옷 세탁, 이불빨래에 청소까지. 막달검사 결과가 나왔다. 빈혈 수치가 여전히 낮고 단백질 수치도 낮은 편이라 붓기가 계속되니 식단에 유의하라고 했다. 이제 정말 막달이라 출산 준비를 마무리해야 하는데 그 와중에 식단 조절이라니, 출산휴가 4주 동안 친구들 만나고 외식이나 하면서 대충 때우려던 심산이었는데 망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 아기 물건들을 하나둘 구입하기 시작했다. 아기 욕조, 국민 모빌인 타이니 모빌, 젖병세제도 사고, 쌓아두었던 아기 물건들과 옷가지들을 다 꺼내어 계절별로 정리했다. 긴축이다 뭐다 해도 출산 준비 중 현금 들어갈 일이 많아서 500만 원 정도를 통장에 넣어두고 있었는데 차 떼고 포 떼니 100만 원 정도가 남았다. 그마저도 조리원 비용으로 미리 돈을 빼두고 나니 오히려 -100만 원이 되었다. 500만 원 쓰기 얼마나 쉬운지. 출산 준비로 이것저것 거의 천만 원 돈이 든다는 글을 읽으면서도 나는 운 좋게 큰 물건들(카시트, 바구니카시트, 유모차 등등) 물려받기도 하고 저렴하게 구입해 둔 터라 뭐 얼마나 쓰겠냐 했는데 핫딜로 산 유모차만 해도 100만 원 돈, 조리원도 그나마 마사지 포함 가성비 있다는 곳인데도 600만 원.


다행히 아기 물건을 새로 사들이겠다는 마음보다는 깨끗한 물건은 친구들에게 물려받자는 마음이 컸어서 정말 많이 물려받았는데도 제왕절개 수술과 입원비용 100만 원에 산후도우미 본인부담금 50만 원, 출산 후에 분유와 기저귀 그리고 돌아서면 커 있을 아기의 옷과 용품, 장난감 등등 하면 매달 우리 부부의 고정지출에서 적어도 100 정도는 더 잡아야 할 것 같다. 종일 집에 있으니 관리비, 전기세, 생활비도 배로 들 테고 내 월급은 30% 수준으로 줄어드는데 긴축으로 가능한 범위인지 조금 현실적으로 계산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5주차 증상
막달의 용감함: 하루 2킬로 산책 그리고 가진통

35주 1일, 이번주 두 번째 산책을 했다. 편도 1킬로 떨어진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 하면서 30분 정도 쉬고 다시 1킬로를 걸어 돌아오는 코스. 고작 왕복 2킬로의 산책만으로도 이렇게 활기가 돌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너무 좋다. 산책을 마치고 집안 곳곳을 정리했다. 2인 가족으로 지낸 지 6년이라 3인 가족 체제로의 정비가 시급했다. 남편과 자려고 누웠다가 도로 일어나 거실, 안방, 아기방의 가구배치까지 두루두루 심도 있게 토론하기도 했다.


그리고 가진통을 맞이했다. 강도가 세지거나 시간이 짧아지면 바로 병원에 가야 해서 아픈 와중에 시간과 통증의 텀을 체크해야 했다. 35주가 다 되도록 아기가 둔위자세(역아)를 유지하고 있어 출산신호가 오게 되면 무조건 응급수술을 해야 했다. 다행히 1시간에 10분씩 2번으로 가진통은 끝났다. 갑자기 두려운 마음에 부랴부랴 출산가방 리스트를 재정비하고 사야 할 물건들의 리스트를 꾸렸다.


35주 3일, 일주일 사이 태동이 많이 달라졌다. 꼬물거리고 좌우로 흐르는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바로 차고 몸을 돌리고 쭉쭉 피는 느낌. 앉아있기만 해도 태동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일주일이 지날 때마다 새로운 증상이 생기고 있던 증상이 사라진다. 아기가 좀 내려갔는지 숨찬 증상은 완화됐고, 아기 다리가 있는 방광부근은 하루종일 안에서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기분이 든다. 누워있을 땐 뱃속 공간이 넓어지는지 아기가 유영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30대 중반의 일주일은 매일 물리적으로 성장하지 않기 때문에 일주일이 뭐 얼마나 대단하겠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6주차엔 검정 아기집뿐이었던 곳에 7주차엔 반짝이는 심장이 생기는 게 태아의 시간이니까. 가장 빨리 큰다는 막달 뱃속의 일주일은 아주 큰 변화이겠지.


35주 4일, 집정리를 거의 마쳤다. 신혼 때부터 분리해서 사용하던 드레스룸을 아기방으로 사용하기로 해서 방을 통째로 비우고 있다. 침대세팅하고 유모차, 옷정리까지 이제 출산이 3주 남았다.

아기 침대는 이케아로 준비했다.
36주차 증상
36주차 2일 아기 크기 2820g
숙면 유지 시간 4시간, 고단백 식단 처방

평균적으로 1차 숙면 유지 시간은 4시간에서 4시간 반 정도 되는 것 같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 일어나거나 배가 뭉쳐서 일어나는 건 아니고, 그냥 저절로 눈이 떠지는 시간이 4시 정도. 아기가 엄청 움직이고 있을 때도 있고 딸꾹질을 대차게 하고 있을 때도 있다. 새벽에 눈을 뜨면 낮에 못다 한 분유나 제왕절개 흉터크림 같은 정보를 검색한다. 출산용품 중 직구가 필요한 것들도 있어서 이제 구매를 더 미룰 수 없어졌다.


아기 무게가 3킬로 전후에 태반, 양수 다 해도 5킬로 정도 될까 말까일 것 같은데 과연 출산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얼마나 살과 부기가 빠질지 요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가 돼버렸다. 손발 저림이 익숙할 정도로 자주 느껴지고 얼굴과 목에 쥐젖도 잔뜩 생겼다. 다행히 튼살은 없지만 수술 후에는 이제 제왕흉터와의 전쟁이 시작되겠지.


조리원 가방 준비물에 수유브라가 있어서 인터넷 최저가 제품을 한참 찾아 구입했다. 혹시 몰라 가슴사이즈를 정확하게 재고 보니 글쎄 XXL를 사야 한다고. 어떤 의복이든 덮어놓고 XS나 S로 구입하던 나에게 너무 생소한 사이즈라 좀 우울해져서 누워있다가 낮잠까지 잤다. 여러모로 임신은 위대하고 내 몸이 바뀌어가는 과정을 보는 게 신비로운 과정이긴 했지만 내가 어찌할 도리없이 당해야 하는 소화불량, 불면, 역류성식도염, 손발부종, 그리고 물리적인 불편함(예를 들면 발 닦기, 속옷 입기, 양말 신기 등)에 대한 약간의 억울함이 있다. 고개 숙이는 것, 허리숙이는 것, 쪼그리기 못하는 것도 포함.


36주 2일, 출산 전 태동검사를 했다. 태동검사는 건강보험에서 1회 보장, 만 35세 이상이면 2회까지 보장된다. 비급여로 하는 경우 7만 원 정도의 작지 않은 돈이 드는데 밤새 거의 못 자고 태동검사에 갔더니 아기가 대차게 자는 바람에 다음 주 수술 전 검사에 태동검사를 추가했다. 맨날 엄청 움직이면서 7만 원짜리 검사를 다시 하게 하다니. 정밀초음파 때도 하품하고 잠들고, 입체초음파 때도 손으로 얼굴 가리고 잠들어서 얼굴도 제대로 못 봤는데 태동검사마저 이럴 줄이야. 그래도 검사 끝나자마자 잠에서 깨어나 쿵쿵거리며 온 배를 울리는 것 보니 건강하긴 한가 보다. 그럼 됐다.


34주 아기 몸무게 2.38kg, 36주 아기 몸무게 2.82kg. 내 몸무게는 69.5kg에서 72.2kg로 2.7kg나 증가했다. 붓기가 심한 편이라 내과 진료를 병행했는데 폐에 물이 차있어서 수술 예후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수액을 제한적으로 쓰거나 이뇨제를 사용해야 할 수 있으니 우선 빈혈 수치와 단백질 수치를 정상화시키는데 집중하자고 했다. 매 끼니 단백질을 최소 50g씩 섭취하고 저염저탄수 식단을 병행하고 과일도 줄이라고. 막달 그것도 출산 2주 앞두고 갑자기 고단백 다이어트 식단 수준으로 관리해야 한다니. 매일 소고기 100g, 고등어 1마리, 계란 2알을 먹는다는 마음으로 2주만 2주라도 2주만이라도 해본다 식단.

소고기와 닭가슴살을 쌓아두고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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