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일주일 전, 감기에 걸렸다.
37주 0일, 계속되는 감기기운과 물처럼 흘러내리는 콧물을 주체할 수 없어 밤잠을 못 이룬 지 이틀이나 지났다. 게다가 지난밤 집에서 열린 부어라 마셔라 파티의 흔적을 겨우 치우고 조금 춥게 잔 탓인지 아침부터 컨디션이 바닥났다. 거기에 미열까지 겹치니 태동도 줄어들었다. 다행히 수술 전 마지막 정기검진이 잡혀있어 불안감은 거둬내고 푹 쉬었다.
37주차 증상
배가 하루가 다르게 커진다. 풍선 같기도 하고.
수술 전 마지막 정기검진에서 수술동의서 싸인, 태동검사를 진행했다. 출산까지 일주일, 뭘 하면서 보내야 조금이라도 더 이 자유를 만끽할까 싶어 강남 곳곳에 널려있는 좋아하는 음식점과 카페에 들러 부랴부랴 맛있게 먹고 왔다. 요즘은 어느 식당에 가나 아기가 있는지 없는지, 아기 의자가 준비되어 있는지 같은 걸 먼저 살핀다. 내가 여길 또 올 수 있으려나 싶어서. 마지막 만찬을 즐긴 곳은 다행히 초등학생 입장 가능한 곳이었다. 8년만 있으면 또 올 수 있겠구나.
병원에서 처방받은 타이레놀 ER을 털어 넣고 누웠더니 몸이 조금 나아졌다. 정희정 원장님의 가장 큰 장점은 '적극 처방'과 '적극 처치'인데 코가 가득 찬 목소리를 들으시고는 코로나만 아니면 된다며 감기약을 잔뜩 처방해 주셨다. 다행히 약 먹고 감기는 서서히 나아가는 중. 만약 감기가 아닌 코로나 재확진이 되는 순간 모든 일정이 꼬여버린다. 제왕절개 수술일자를 뒤로 미뤄야 하는 건 물론이고, 만약 그 사이 출산신호가 오게 되면 보건소에서 지정한 병원에서 수술해야 하는 상황. 게다가 수술 회복기간까지 감기가 낫지 않는다면 개복한 배를 부여잡고 기침과 재채기를 뱉어야 하는 상황. 감기 절대적으로 나아야 한다.
*미래와 희망 수술 전 안내사항
- 수술 48시간 전 보건소 PCR 검사
- 수술 12시간 전 금식
- 수술 2시간 전 내원 (문진, 수술 전 준비)
- 수술 후 3박 4일 입원
- 입원실 대기, 당일부터 가능
37주 5일, 요 며칠 5시쯤 일어나 남편과 조금 이야기를 나누다 다시 잠에 든다. 그렇게 8시 반쯤 다시 기상. 매번 뒹굴거리다 10시에나 아침을 먹는데, 간밤엔 아기가 많이 움직이기도 하고 몸이 좀 찌뿌둥하기도 해서 9시부터 일어나 부지런히 손바닥만 한 소고기를 구워 든든하게 한 끼 차려먹었다. 오늘은 집안일도 거의 하지 않고, 식기세척기를 비워내고 젖병소독기와 분유제조기를 닦고 푹 쉬었다. 점심엔 햄버거가 먹고 싶어 든든하게 시켜 먹고 하루종일 스타벅스 더블샷이 생각나 2시간 넘게 고민하다가 저녁 6시가 다 된 시간에 나가 사 마셨다. 출산이 이제 2일 앞으로 다가왔다. 말년 병장은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라고 한다는데, 말년 임산부의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아 꼬박 48시간 만에 큰 용기를 내서 외출을 감행했다. 미루고 미뤘던 휴대폰 교체도 미리 주말에 해두고, 구글 포토 백업도 시작했다. 아 이렇게 보내면 되는 건가, 아기 없는 아줌마의 마지막 날들.
38주 0일로 넘어가는 시간, 출산 1일 전이다. 오늘은 소파와 이불 빨래를 했다. 긴 여행을 준비한다. 출산병원에서 4일, 조리원에서 14일 거의 스무날이 다되는 여행. 마지막 만찬으로 월남쌈을 해 먹었다. 오전 8시 반 수술의 금식 개시는 저녁 8시 반, 8시부터 부지런히 식탁에 앉아 30분 동안 열심히 먹고 29분에 바로 숟가락을 내려놨다. 이제 시작이다. 출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