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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Feb 24. 2023

임신 37주차

출산 일주일 전, 감기에 걸렸다.

37주 0일, 계속되는 감기기운과 물처럼 흘러내리는 콧물을 주체할 수 없어 밤잠을 못 이룬 지 이틀이나 지났다. 게다가 지난밤 집에서 열린 부어라 마셔라 파티의 흔적을 겨우 치우고 조금 춥게 잔 탓인지 아침부터 컨디션이 바닥났다. 거기에 미열까지 겹치니 태동도 줄어들었다. 다행히 수술 전 마지막 정기검진이 잡혀있어 불안감은 거둬내고 푹 쉬었다.


37주차 증상
배가 하루가 다르게 커진다. 풍선 같기도 하고.

수술 전 마지막 정기검진에서 수술동의서 싸인, 태동검사를 진행했다. 출산까지 일주일, 뭘 하면서 보내야 조금이라도 더 이 자유를 만끽할까 싶어 강남 곳곳에 널려있는 좋아하는 음식점과 카페에 들러 부랴부랴 맛있게 먹고 왔다. 요즘은 어느 식당에 가나 아기가 있는지 없는지, 아기 의자가 준비되어 있는지 같은 걸 먼저 살핀다. 내가 여길 또 올 수 있으려나 싶어서. 마지막 만찬을 즐긴 곳은 다행히 초등학생 입장 가능한 곳이었다. 8년만 있으면 또 올 수 있겠구나.


병원에서 처방받은 타이레놀 ER을 털어 넣고 누웠더니 몸이 조금 나아졌다. 정희정 원장님의 가장 큰 장점은 '적극 처방'과 '적극 처치'인데 코가 가득 찬 목소리를 들으시고는 코로나만 아니면 된다며 감기약을 잔뜩 처방해 주셨다. 다행히 약 먹고 감기는 서서히 나아가는 중. 만약 감기가 아닌 코로나 재확진이 되는 순간 모든 일정이 꼬여버린다. 제왕절개 수술일자를 뒤로 미뤄야 하는 건 물론이고, 만약 그 사이 출산신호가 오게 되면 보건소에서 지정한 병원에서 수술해야 하는 상황. 게다가 수술 회복기간까지 감기가 낫지 않는다면 개복한 배를 부여잡고 기침과 재채기를 뱉어야 하는 상황. 감기 절대적으로 나아야 한다.


*미래와 희망 수술 전 안내사항

- 수술 48시간 전 보건소 PCR 검사

- 수술 12시간 전 금식

- 수술 2시간 전 내원 (문진, 수술 전 준비)

- 수술 후 3박 4일 입원

- 입원실 대기, 당일부터 가능


37주 5일, 요 며칠 5시쯤 일어나 남편과 조금 이야기를 나누다 다시 잠에 든다. 그렇게 8시 반쯤 다시 기상. 매번 뒹굴거리다 10시에나 아침을 먹는데, 간밤엔 아기가 많이 움직이기도 하고 몸이 좀 찌뿌둥하기도 해서 9시부터 일어나 부지런히 손바닥만 한 소고기를 구워 든든하게 한 끼 차려먹었다. 오늘은 집안일도 거의 하지 않고, 식기세척기를 비워내고 젖병소독기와 분유제조기를 닦고 푹 쉬었다. 점심엔 햄버거가 먹고 싶어 든든하게 시켜 먹고 하루종일 스타벅스 더블샷이 생각나 2시간 넘게 고민하다가 저녁 6시가 다 된 시간에 나가 사 마셨다. 출산이 이제 2일 앞으로 다가왔다. 말년 병장은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라고 한다는데, 말년 임산부의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아 꼬박 48시간 만에 큰 용기를 내서 외출을 감행했다. 미루고 미뤘던 휴대폰 교체도 미리 주말에 해두고, 구글 포토 백업도 시작했다. 아 이렇게 보내면 되는 건가, 아기 없는 아줌마의 마지막 날들.


38주 0일로 넘어가는 시간, 출산 1일 전이다. 오늘은 소파와 이불 빨래를 했다. 긴 여행을 준비한다. 출산병원에서 4일, 조리원에서 14일 거의 스무날이 다되는 여행. 마지막 만찬으로 월남쌈을 해 먹었다. 오전 8시 반 수술의 금식 개시는 저녁 8시 반, 8시부터 부지런히 식탁에 앉아 30분 동안 열심히 먹고 29분에 바로 숟가락을 내려놨다. 이제 시작이다. 출산.

출산 막바지 준비를 하고 만삭 사진 대신 ‘연희동 사진관’에서 부부 사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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