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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Mar 10. 2023

3월 6일 월요일

어느새 봄이 되어버린 월요일의 일기

1. 수술을 했다

길게 풀어놓기도 부끄러운 작은 수술이었다. 하루이틀 사이에 몸이 안 좋아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었다. 다만 달라진 건 집에 있는 갓난아기라는 존재. 유유히 홀로 집을 나설 수 없어 귀한 남편 휴가를 하루 홀라당 써버리고는 수술에 들어갔다.


하반신 마취를 해야 해서 1박 입원을 권장받았다. 1박은 무슨, 6시간 후 퇴원하는 당일 입원을 하긴 했지만 4시간이 지나 마취가 풀리자마자 귀가를 선포하고 길을 나섰다. 포부와 다르게 컨디션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어쩐지 남다른 책임감이 느껴지는 하루였다.


수술을 마친 주말, 산후 한 달 차 정기검진을 받았다. 원장님께서 제왕절개에 이어 두 번째 마취를 그것도 몸을 푸는 중인 산욕기에 결정하다니 용기가 대단하다도 하셨다. 팔에 꽂힌 작은 무통주사 덕에 할 수 있던 것뿐인데. 무통주사 덕에 배를 갈라 아기를 꺼낸 수술자국 위에 놓아주신 주사도 더 씩씩하게 맞을 수 있었다. 물론 아직 감각이 없어 원래도 전혀 안 아픈 곳이긴 하지만 왜 심리적인 통증이나 상상통증 같은 두려움도 없었다니까! 무통 미라클. 건강이 제일이다. 이제 나는 엄마니까 아픈 건 무책임한 거다.


2. 아기와 나

한 달 전 시작된 아기와 나의 삶. 임신기간 동안 엄마가 되기 위해 몸과 마음을 준비했다. 물론 이제와 서보니 임신기간에 했던 ‘엄마로서의 준비’는 사실 ‘건강한 출산을 위한 준비’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 실제 엄마로서의 준비는 아기가 세상에 나와 더 이상 우리 둘이 1이 아닌 2가 되었을 때 시작된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아기를 어느 병원에서 낳을 것인가, 어느 조리원을 결정할 것인가에서부터 시작되는 고민들 중 아기 침대는 어떤 것으로 준비할지, 아기 분유와 기저귀는 어떤 브랜드가 좋을지 같은 아주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준비 역시 아기가 내 눈앞에 등장한 이후에나 비로소 그 고민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게 된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 비교하고 결정할 게 너무 많아 매일같이 ‘아 아기가 태어날 때 본인이 입을 것, 먹을 것, 성격, 성향을 모두 다 정리해서 딱 가지고 태어나면 좋겠다.’ 고 생각하곤 했다. 참 시답지 않은 바람이네라고 여겼는데 아니었다. 실제로 아기는 그 모든 것을 결정하고 태어나는 것 같다. 내가 준비한 분유, 기저귀, 침대를 고르는 건 결국 아기 본인이기 때문. 게다가 2월과 3월, 초 봄에 맞는 옷을 잔뜩 준비해 두었음에도 집에 온 지 일주일 만에 어느덧 여름에 어울리는 얇은 옷만 골라 입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모든 결정은 아기가 직접 한다. 물론 그 지령에 따라 옷장에서 옷을 골라오는 건 나의 몫이긴 하지만.


엄마가 되자마자 조리원에서 몰아친 우울의 파도가 조금 두렵긴 했지만 임신기간 내내 나를 에워쌌던 불안과 두려움의 파도에 비하면 사실 버틸만했다. 임신 후기에 접어들면서 생긴 비일상적인 마음의 평화도 여전히 유지된다. 그 덕에 날카롭고 예민했던 과거의 나는 많이 수그러들었다. 밤 잠을 2-3시간만 자도 너끈히 하루를 버틸 수 있어졌다. 아기가 울 때마다 미안함과 야속함이 앞서다가도 내 품에서 새근새근 잠에 들면 모든 마음은 사라지고 사랑만 남는다.


나에게 하루하루는 아주 소중하고 귀하다. 아기와 내가 보내는 이 시간들이 아기에게 찰나일까 영겁일까 매일 생각한다. 나에게 1분 1초는 찰나 같은데 아기를 안고 아기를 재울 때마다 그 순간들은 영겁과 같이 아주 느리게 흘러가는 기분이 든다. 아기가 눈을 느리게 껌벅이는 순간이나 하품을 마치고 눈물이 고여 마치 작은 우주 같은 눈동자를 바라보는 순간들은 어디선가 슬로 모션으로 이 순간을 내려다보는 기분이 든다. 눈물 나.


아기는 어느덧 25일 차가 되었다. 아기는 열심히 자란다. 나도 함께 자란다. 하루가 다르게 손발을 맞춰간다. 아기가 입을 오물거리면 젖병을 준비하고, 아기가 손으로 눈을 비비면 잠을 잘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한다. 아기의 얼굴이 빨개지면 기저귀를 준비하고 아기가 울면 언제고 품 안에 넣어 안아줄 준비를 한다. 손발이 맞지 않아 밤마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울어도 괜찮다. 곧 우리는 같은 곳에서 만나게 될 거니까! 엄마와 아빠에게 조금만 더 시간을 줘. 그리고 건강하게 잘 지내보자 우리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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