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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월요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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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Mar 18. 2023

3월 13일 월요일

아기 탄생 한 달. 많은 것이 바뀐 날의 일기.

1. 월요일기

매주 월요일, 가장 바쁘고 정신없는 날 일기를 쓰기로 마음먹으면서 월요일이 꽤 좋아지기도 했다. 취미생활을 할 때도, 운동을 할 때도 꼭 월요일 저녁을 할애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어쩐지 월요일은 야근과 잡무에 조금 더 어울리긴 하지만 그런 날 열일 제치고 칼퇴하는 기분이 얼마나 째지는지! 그렇게 시작한 월요일기. 나와의 약속 같은 월요일의 글 한 편을 지켜낼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일주일의 일기로 바꿔야 하나 싶고. 그렇다 토요일 밤에 올리는 월요일기라 서론이 조금 길었다.


2. 남편

남편이 4주 휴가를 받아왔다. 아마도 적당히 크고 적당히 작은 회사라 가능한 일. 원래대로라면 출산휴가가 전부인데 근속연수에 따라 지급되는 리프레시휴가가 생기는 해라 임신 초기부터 차곡차곡 빌드업해 쟁취한 4주의 아주 귀한 휴가가 시작됐다.


그 덕에 산후도우미 선생님이 끝나시자마자 바로 남편이 육아에 투입됐다. 아침저녁으로 우당당탕 손발을 맞추느라 어느덧 5일을 흘려보냈다. 이 귀한 휴가동안 아기의 신호를 파악하고 육아 패턴을 잡고 거기에 아주 기본적인 교육을 해내야 하는데 4주 휴가에 대한 감사함보다 고작 3주밖에 남지 않은 아쉬움만 마음에 남는다. 그래도 그게 어디야 감지덕지.


남편이 집에 있는 동안 매일매일 산책을 나간다. 아기가 가장 잠잠한 수유시간부터 짧지만 놀아주는 시간과 잠들어주는 시간을 다 합치면 고작 한 시간이 좀 덜 되지만 낮동안 생기는 그 짬을 이용해 각자 시간을 갖고 돌아온다. 어느덧 봄이 와 가볍게 입고 산책도 하고 덤불 속 새순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낸다. 남편이 없었더라면 이 귀하고 힘든 시간을 어찌 보낼까 싶을 정도로 막상 육아라는 세계관에 들어오니 혼자서는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함께 잘 헤쳐나가 봐야지.


3. 아기의 등센서

아기는 어느덧 37일 차. 병원과 조리원에서 익히 알고 있던 것처럼 우리 아기는 이미 ‘손이 탔다 ‘. 워낙 주변 소리에 민감한 우리 아기. 게다가 몸집도 크게 태어나 울음소리도 우렁차 조금만 울어도 신생아실 간호사 선생님들 품에 안겨있곤 했다. 집에 돌아와 산후도우미 이모님께서도 아기가 이미 등 대고 눕는 건 싫어한다며 엄마가 힘들겠다고 말씀을 얹으셨고.


그래서 지금의 나. 바로 인간 침대가 되어버렸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유하는 시간 15분 남짓, 트림 시키는 시간 20분, 재우는 시간 20분이 8세트. 거기에 아기가 하루종일 자는 시간 통틀어 12시간 정도니까 거의 20시간은 아기를 안고 있다. 다행인지 남편과 절반씩 분담하고 있으니 각자 10시간씩.


매일 5kg에 육박하는 아기를 매일 안고 쪼그려 앉았다 일어나고 먹였다 세웠다 하는 일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낮에 조금이라도 등을 대고 누워주면 좋으련만 등이 닿자마자 귀신같이 울어대는 통에 결국 10-20분 정도 모빌을 보는 시간 동안 화장실도 가고 젖병도 닦고 부리나케 다음 육아를 준비해야 했다.


수면교육 권장 시기는 60일 이후. 생후 6주부터 해도 된다고 하지만, 막상 그 영상들도 보다 보면 생후 6주부터 할 수 있는 건 ‘이제 우리는 잠에 잘 거야.’라고 알려주는 수면의식일 뿐. 아기가 울어도 그대로 놔두는 이른바 퍼버법이나 안아 눕히는 안눕법, 쉬 소리를 내며 토닥이는 쉬닥법을 고작 6주밖에 되지 않은 아기에게 적용하기는 조금 이른 감이 있다고 설명한다. 지금은 지난 10개월간 엄마 몸 안에서 늘 보호받던 모습처럼 많이 안아주면 된다고.


다만 맘카페에 약간의 아기 자랑과 허세로 점철된 ‘40일 아기 통잠자요.’ 같은 글들에 부럽기도 하고 어쩐지 우리 아기는 좀 뒤처지는 건가 싶기도 하고 묘한 마음이 들긴 했다. 우리 아기는 아직 어디에도 등을 못 붙이고 그저 엄마품 아빠품을 전전하는데.


그러던 중 보건소 방문 간호사 선생님께서 부부 침대에라도 조금씩 누이는 연습을 하라며 권해주셔 그 길로 바로 연습에 돌입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했는지 침대에 누워 혼자 잠에 들기도 하고, 울지 않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러다 우리 아기도 맘카페 속 신생아 탑급에 들어가는 건가 기대했지만 간밤엔 거의 한숨도 못 잤다. 침대에서 끙끙거리는 신생아를 어찌할 재간이 없었다.


밤새 안았다 내려놨다를 반복해서인지 잠투정이 유난히 심했던 오전을 보내고 오후가 돼서야 진정이 된 아기를 데리고 침대에서 같이 30분을 잤다. 팔베개도 해주고 엉덩이도 토닥이니 선잠이지만 잠에 들어버렸다. 그렇게 깜박 졸다가 눈떠보니 아기가 내 팔에 얼굴을 파묻고 자기 몸과 내 몸을 밀착시켜 두었다. 순간 걱정이 되어 빠르게 몸을 떼어내긴 했지만 얼마나 귀엽던지. 그다음엔 남편이 아기와 30분. 남편의 몸 어딘가에도 아기가 붙어 잠에 겨우 들었다고 했다. 아기는 필사적으로 우리 곁에 붙어있던 거였다. 우연이나 귀여움 같은 이유가 아니라.


어쩐지 마음이 짠해 저녁엔 푹 자라고 한 시간 동안 품을 내어주었다. 그 사이 한번 더 침대에 뉘어보려는 오만했던 시도와 동시에 아기가 겁에 질려 소리 지르며 울었다.


살을 비벼야 겨우 잠들 수 있는 37일 차, 이렇게 작은 아기에게 대체 뭐 얼마나 대단한 걸 바라고 있던 걸까. 조금 정신이 차려졌다. 천천히 하면 되는 것을. 뭐가 그렇게 조급해서. 오늘도 결국 침대를 포기하고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잘 자고 잘 먹고 건강하게 자라나렴. 미안하고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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