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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Mar 01. 2023

2월 27일 월요일

2월의 마지막 월요일기

1. 행복한 지옥

조리원에서 퇴소했다. 조리원 첫 주는 지옥 같았고, 두 번째 주는 버틸만했다. 아마도 처음 보는 분들께 아기를 맡기는 데에서 오는 불안감과 긴장감 그리고 24시간 내내 이어지는 각성상태와 스트레스가 차츰 풀리면서부터 나아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조리원에서 나온 지 3일 차. 왜 조리원이 천국이라 불리는지 이제야 알겠다. 삼시세끼 방 안으로 따뜻한 국과 밥, 고기와 생선이 들어오고, 때에 따라 간식도 들어오는 곳. 수유콜이 오긴 하지만 하지 않겠다 쿨하게 선언하고 나면 낮잠이고 밤잠이고 오래도록 잘 수 있는 엄청난 곳이었다. 거기에 가슴마사지, 전신마사지를 받고 나와 족욕에 파라핀까지 하면 셀프케어까지 끝. 병원에서는 배를 가른 환자로 대우받았다면 조리원에서는 애국한 한 명의 위대한 엄마로 대우받았달까. 물론 애국의 필수조건은 모유수유였지만 말이다.


일요일 아침, 집에 돌아와 아기를 먹이고 누이고 집을 쓸고 닦고 나니 저녁이 다 되었다. 엄마가 와서 식사를 차리고 아기를 종종 안아주긴 했지만 안타깝게도 부모님과 우리 부부, 성인 4명 중 그나마 아기를 가장 많이 안아본 사람이 나 자신이라는 사실. 아기는 내 품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진정을 했다. 그렇게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첫날을 보냈다.


월요일 아침, 드디어 이모님이 오셨다. 처음 뵌 분이지만 빠르게 얼굴을 익히고 부엌과 아기를 맡겼다. 아무리 좋은 분이라고 해도, 또 불안함에 24시간 녹화되는 카메라를 설치했다고 해도 걱정이 아주 가시는 건 아니라서 첫 이틀쯤은 깍쟁이처럼 굴 작정이었는데 실패했다. 정성스레 졸여주신 감자와 정갈한 설거지에 홀라당 넘어가 아주 달게 1시간을 잤다. 예민하게 굴어봤자 조리원 1주 차랑 같을 뿐이니 밤새 잠을 못 자 몽롱한 틈을 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맡겨보는 걸로. 물론 자러 들어가면서 남편에게 홈캠으로 집을 보고 있어 달라고 부탁한 덕도 있지만.


집에 아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고 설레면서도 피로가 떨쳐지지 않는다. 행복한 지옥 시작.


2. 다이어트

지난 1년 간 20킬로 정도가 불어났다. 그중 13킬로가 보름 만에 빠져나가긴 했지만 아직 7킬로 아니 원래 평생 가지던 평균 몸무게 기준으로 10킬로는 족히 더 빼야 하는 상황이다. 본격적인 다이어트에 앞서 컨디션 회복이 중요하니까 잘 먹고 잘 자는 게 우선되고 있긴 하지만 호시탐탐 다이어트와 운동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요가와 필라테스로 습관들인 복식호흡 대신 벌어진 골격을 줄이는 흉곽호흡을 우선해서 한다던가 몸을 쭉쭉 펴내는 스트레칭을 조금 긴 호흡으로 한다던지.


손발 부기가 아직 빠지기 전이지만 왠지 결혼반지는 다시 낄 수 있을 것 같아 도전했다가 처참히 실패한 오늘. 3월의 목표는 결혼반지 다시 끼기. 좋아하는 신발들도 바지들도 얼른 입어보고 싶은데 여전히 묵직한 몸에 맞지 않아 천천히 시도해 보기로 했다. 그나저나 어떤 다이어트를 해봐야 하나. 아무래도 체력 회복과 같이 가려면 고기와 함께하는 황제 다이어트가 좋겠지. 암 그렇고 말고.


3. 침대

2월 초쯤 이르지만 아기의 넓은 침대를 하나 구입했다. 사고 싶었던 모델이기도 했고 때마침 할인 행사를 하고 있어 남편과 알람까지 맞추어 구매에 도전했던 침대. 그 침대가 집으로 왔다.


설치기사님이 이렇게 작은 아기가 있는 집은 아주 오랜만이라며 마스크를 고쳐 쓰고 장갑을 벗고 손세정까지 하시면서 설치를 마치셨다. 우리 아기 몸의 20배는 족히 돼 보이는 큰 침대. 아마도 당분간 주중엔 남편이 주말엔 내가 사용하는 침대가 되겠지만 드디어 아기의 정식 가구가 들어찬 방을 보니 어쩐지 뭉클했다. 정말 집 안에 한 명의 가구원이 더 생겼구나 싶고.


새 침대 덕에 처음 내 방 침구류를 고르며 느꼈던 설렘과 낯섦을 다시 한번 느끼고 있다. 체크무늬를 골랐다가 반들반들한 면을 골랐다가 하는 것들. 살면서 늘 해왔던 일들인데 아기의 이름이 붙은 물건들은 어쩐지 낯설게 느껴져 삐걱거리게 된다. 3월엔 결혼반지 다시 끼기와 더불어 본격적인 아기방 채우기를 마무리해야겠다.


4. 영아산통

신생아의 급성장기라는 생후 3주 차. 아기는 낮 동안 천사 같은 얼굴을 한 채 잘 지내다 밤이 오자마다 울어재끼기 시작했다. 월요일엔 30분, 화요일엔 3시간. 남편이 밤 사이 5시간 넘게 아기를 봐준 덕에 조금 오래 자고 일어나니 아기는 이제야 진정이 되어 있었다. 아기 귀에 대고 크느라 고생이라고 아무리 이야기해 준들 아기는 여전히 끙끙거릴 뿐. 막상 크느라 고생인 아기를 안고 먹이느라 어른들 모두가 고생이다.


오늘 밤엔 부디 짧게 아프기를. 낮동안 마사지도 열심히 해주고 기저귀도 부지런히 갈아줄 테니 우리 셋 오늘 밤엔 평온하게 잘 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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