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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Apr 03. 2023

4월 3일 월요일

4월의 첫번째 월요일기. 4월이라니!

1. 엄마

산후우울증은 모두를 거쳐간다더라. 얕은 해변의 파도처럼 스쳐 지나가는 사람도 있고 인생을 송두리째 휘감아 흔들리는 사람도 있고. 나는 그 중간에 서 있는 기분이 든다.


어느 새벽엔 아기를 안고 엉엉 울다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고, 자려고 누운 컴컴한 방 안에서 숨죽여 울기도 했다. 매일 하루 할당량만큼 울어야 끝나는 것 같은 시간들. 하루종일 우는 아기를 달래고 있으면 같이 눈물이 터져버리기도 하고 곤히 잘 자는 아기를 바라보고 있어도 여전히 눈물이 난다.


아기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이틀 밤낮을 매달렸던 어느 날 눈물을 꾹 참고 아기가 잠들자마자 답답한 마음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엉엉 울었다. 아기가 눈을 뜨면 하염없이 예쁘다가도 눈을 감으면 혹시 눈을 뜨자마자 울까 봐 너무 무섭다고.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지기도 한다고. 아기를 매우 사랑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고작 아기의 울음에 내 일상이 모두 흔들린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엄마가 된 나의 불안이 아기에게 고스란히 전달될 수 있으니 본가로 내려오라고 했다. 그 길로 날이 밝자마자 본가로 내려왔다. 아기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챙기니 차가 가득 찼다. 거기에 나와 남편의 옷가지 몇 개가 전부. 어차피 잠옷만 입는 삶인걸.


어느덧 엄마집에서 맞이하는 다섯 번째 날. 아침저녁으로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정갈하게 깎아 나온 과일을 집어 먹는다. 아기는 종종 엄마 품에서 잠을 자고 아빠 품에서 응석을 부린다. 여전히 우울의 파도에 집어삼켜지는 순간들이 있지만 마음이 평온한 순간들도 늘어났다. 엄마 고마워. 나도 아기에게 그런 엄마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게.


2. 벚꽃

5년 전 서울로 독립해 나가살기 전까지 살았던 동네에서 맞이한 봄. 동네에 유명한 벚꽃길이 여러 군데 있는데 동네가 오래되다 보니 나무가 워낙 울창해 벚꽃이 피는 계절엔 늘 장관을 이룬다. 멀리까지 꽃구경 못 간 아쉬움이 하나도 남지 않는 곳.


출산휴가 중인 남편과 번갈아가며 산책을 했다. 어느 중학교 앞 벚꽃길이 예쁘니 꼭 가보라, 어느 공원의 산책로가 지금 멋지더라 하는 소소한 일상을 나누었다. 같은 동네에서 초중고등학교를 같이 나와 즐길 수 있는 일상. 함께 나눈 일상 덕에 올해 벚꽃은 만개직전부터 만개 그리고 떨어지고 연두색 잎이 나는 것까지 모두 보는 호사를 누렸다.


3. 50일의 기적

맘카페에서 유명한 50일의 기적을 맞이했다. 24시간 중 20시간을 안겨 지내던 아기가 마침내 등을 대고 자기 시작한 것. 아기의 무게가 무거워지면서 안아주기도 벅찬 데다가 아기도 본인의 몸을 감당할 수 없어 매일 내 배 위에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다 지쳐 잠들곤 했다. 언제쯤 누워 자려나 싶었는데 배앓이와 속역류가 잡히니 금방 눕기 시작했다. 누워 자주는 덕에 트림 시키는 시간을 조금 더 챙겨줘야 하지만 그래도 밤새 안고 있던 시절을 생각하면 감지덕지.


처음엔 낮에만 몇 번 눕혔다가 어제는 밤잠으로 가는 첫 번째 텀에 눕혔더니 5분 만에 잠들었다. 누워 자는 것도 놀라운데 5분 만에 잠든 건 정말 기적적인 일. 엄마가 교대해 주어 남편과 얼굴을 맞대고 같이 오붓하게 저녁도 먹고 티브이도 봤다.


물론 이제야 등을 대고 자는 것뿐, 매번 30분에서 1시간씩 쪼개자느라 곁을 꼭 지켜줘야 하는 데다 아기의 애착인형이 된 듯 손끝에 꼭 몸의 어딘가를 닿게 해주어야 하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야. 아기는 아기의 속도에 맞춰 자연스럽게 자라난다. 통잠도 새벽수유도 잘 부탁한다 아가. 100일쯤엔 어떻게 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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