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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Apr 12. 2023

4월 10일 월요일

오랜만에 한낮 산책을 즐겼던 월요일

1. 외식

남편의 출산휴가 마지막 날, 마침내 점심 외식을 했다. 아기가 태어나면 언제든 맘만 먹으면 유모차에 아기를 싣고 외식이나 산책쯤은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 수준까지 아기를 키우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고 좌절했다. 6킬로 남짓한 아기들 데리고 병원에서 주사를 맞히고 나오는 길, 아기가 노곤노곤한 지 햇살에 잔뜩 눈을 찌푸리며 낮잠을 잤다. 셋이 하는 거의 첫 번째 산책.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살았던 동네에서 학창 시절 걷던 산책로를 걸으며, 대학생 때 자주 가던 음식점에서 밥을 먹고, 첫 취업 후 늦은 밤 무서워하며 귀가하던 길을 따라 집에 왔다. 거의 꼬박 10년 만에 동네에 돌아오니 감회가 새로웠다.


남편과 짧은 외식을 마치고 즐거우면서 아쉬웠다. 마음 한편에 아기가 걱정되는 마음과 약간의 후련함이 있기는 했지만 주로 마음이 무거웠다. 아기는 잘 자고 있을지 혹시 낯선 냄새에 울고 있진 않을지 같은 걱정을 하면서. 언제쯤 아기와 우리 셋이 함께 한 식탁에 앉아 밥을 먹을 수 있을까? 백화점에서나 카페에서 유모차와 함께 터덜터덜 걷곤 했던 엄마들의 모습이 계속 생각난다. 딱 그만큼의 일상만 즐기면서 살아가게 되는구나 엄마란. 나는 언제 그만큼의 일상에 가까이 갈 수 있을까.


2. 엄마

엄마집에서 2주 차. 엄마는 아침마다 과일을 깎아 내 입에 넣어준다. 점심이면 바쁜 일정을 쪼개어 밥을 차려주고, 오후엔 조금이라도 쉬라며 아기를 안아 토닥인다. 저녁엔 행여 애써 재운 아기가 깰까 걱정되어 설거지도 한 번 제대로 못하고 발뒤꿈치마저 조심해 가며 집안일을 한다.


엄마집에 6개월 정도 머물 계획이라 관리비라도 내겠노라고, 혹은 생활비를 보금 보태겠다고 하니 도리어 화를 냈다. 이미 아기가 모든 힘듦과 고됨의 값어치를 다 하고 있으니 잘 먹고 잘 키우면 된다면서.


오늘은 어디가 불편한지 유난히 보채는 아기를 안아 달래는 내 입에 맛있어서 사 왔다며 타코야끼를 욱여넣어주었다. 나는 내 딸을 달래고, 엄마는 나를 달래고. 과일을 열심히 깎아 생과일주스를 한 잔 내려주고는 다시 출근한 엄마. 엄마가 고생하는 게 너무 미안해 어떻게든 혼자 무던히 해보려고 한 건데 아기 하나를 키우는데 성인 4명이 마음과 손을 합쳐도 모자라다. 정말 한 마을이 필요한 것 같다.


3. 감사

이번 주부터 산후우울증 심리상담을 받기로 했다. 일주일에 한 시간 정도 공식적으로 밤 외출을 하는 셈인데 어떤 게 힘드세요?라는 아주 일상적인 첫 질문에도 이미 울고 있는 나를 마주했다.


코로나 때 한 번, 이직하고 또 한 번, 유산을 경험하면서 그리고 쉽지 않았던 임신기간을 지내면서 아마도 약간씩 쌓였던 불만족과 우울감이 일순간에 터져 나오는 거겠지.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하고 나니 상담사 선생님께서는 일기 쓰기를 추천하셨다. 아기와 관련 없는 그저 나의 하루를 적어보라고. 그리고 여가시간엔 일부러라도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거나 멀리 산책을 나가면서 기분을 환기시켜 보라고. 혹시 많은 것이 달라지지 않으면 약을 처방해 먹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새벽마다 아기 곁을 지키는 시간 동안 일기를 쓰는 것뿐이라서 한번 써보았다. 특히 하루 중 있었던 일 중 감사한 일 위주로 적어보라기에 적어보았다.


아기가 낮잠을 잘 잔일. 분유를 남기지 않고 다 먹은 일. 오랜만에 웃으면서 잠에서 일어난 일. 아프지 않고 하루를 보낸 일. 아기와 관련 없는 나의 하루와 감사한 내용을 적으라는데 온갖 것이 아기와 관련되어 있었다. 내 인생의 희로애락은 이 작은 아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을 뿐.


그래도 감사일기의 가장 마지막엔 남편에 대한 고마움과 아기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함께 적었다. 쉽지 않은 시간들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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