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월요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 Apr 18. 2023

4월 17일 월요일

Looking good mama.

1. Looking good mama

예전에 앤 해서웨이가 출산 후 영화 촬영장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는 짧은 클립을 본 적 있다. 출산 후 살이 모두 빠지지 않은 상태였지만 오랜만에 청바지를 입고 촬영장에 갔는데 촬영장에서 만난 배우들이 모두 한 마디씩 칭찬을 던져주어 기분이 좋았다는 이야기였다. 엉덩이가 나처럼 예쁜데! (리한나가 앤 해서웨이에게 한 말) 라던지, 오늘 예쁘다! 같은 인사치레같은 말들뿐이라 뭐 별 얘기 아니네 하고 넘겼는데, 막상 출산을 하고 나니 이야기를 전하며 한껏 들떠있던 앤 해서웨이 감격에 동기화되는 기분이 든다. 그만큼 출산 전 입던 옷을 다시 입는다는 건 꽤 즐거운 일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허리도 골반도 엉덩이도 어느 것 하나 내 것같지 않지만 그래도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든달까.


주말엔 아기를 맡겨두고 남편과 데이트를 나갔다. 오랜만에 치마도 입고 좋아하는 양말과 신발도 신었다. 좋아하는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도 마셨다. 오가는 차 안에서 남편과 시시콜콜한 수다도 떨고 최신곡에 맞춰 춤도 한사위 추고 나니 일주일을 모두 보상받은 기분이 들었다.


주말을 잘 마치고 다시 맞이한 월요일. 상담에 병원진료까지 바쁜 날이라 외출 준비를 하는 내 등 뒤에서 엄마가 “어제 예쁘던데. 어제 입은 옷 입고 나가면 되겠네.”라고 했다. 어쩐지 앤 해서웨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청바지가 쏙 들어가는 짜릿함을 기억하며 버텨본다 일주일.


2. 바쁘지만 헌신적인

산후우울증 상담 두 번째 시간엔 엄마와 나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기를 출산하고 힘들었지만 엄마에게 바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던 것, 그리고 엄마의 공간인 엄마집이 아닌 나의 공간인 우리집으로 와달라 요청했던 것 등등 어딘지 나도 이유가 궁금했던 묘한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 했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정말 바빴다. 그럼에도 정말 헌신적이었고. 학창시절엔 도보 10분 거리의 학교를 늘 차로 태워다주었다. 과일을 예쁘게 깎아 간식통에 늘 쥐어주었고, 샤워를 하고 나오면 화장실 앞에서 잘 다려진 교복을 들고 입혀주기도 했다.


첫 직장이었던 김포공항으로 통근하던 나를 아침 6시면 리무진 버스정류장에 내려주고 저녁엔 종종 데리러 오기도 했다. 리무진을 놓치는 날에는 다음 정류장까지 버스 뒤꽁무니를 쫓아주기도 하고, 이도저도 안되던 몇몇 날에는 김포공항까지도 데려다주곤 했다. 1년 여의 통근을 마치고 독립을 선언했을 때, 엄마는 쿨하게 그러라고 했지만 8평짜리 작은 원룸에 켜켜이 짐을 꾸려둔 모습을 보고는 아무 말 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아침 6시에 과일 도시락을 싸서 너를 배웅하던 지난 1년이 엄마에게 큰 기쁨이었노라.’고 ‘기쁜 나머지 왕복 4-5시간의 통근길의 힘듦을 모른척 해 미안하다고.’ 메일을 보냈다.


엄마가 된 지금, 내 딸이 아무 이유 없이 울고 있을 때 어떻게 대처할거냐는 상담 선생님의 질문에 돈과 시간을 들여 해결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해결해주겠다고 대답했다. 모든 것의 가장 우선에 두고 어려움을 해소해주겠다고. 나의 0순위.


이맘때쯤의 아기들은 우는 것이 말을 거는 것과 같다고들 하지만 나는 아기의 일그러진 표정과 어딘가 불편해하는 속마음만 느껴진다. 기분이 좋을 땐 옹알이로 이야기하는데 울며 소리칠땐 그 반대일테니, 아기의 불편한 순간들을 해소해주지 못하면 약간의 패배감도 따라온다. 아기는 내가 가장 잘 보이고 싶은 존재. 그런 존재의 필요를 모르겠는 순간들이 가장 괴롭다. 아기에게 잘 보이고 싶은데, 그래서 아기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가 되고 싶은데 아직은 방법을 잘 모르겠다. 그저 묵묵히 우는 아기 옆을 지킬뿐.


3. 날씨

집에만 있다보니 날이 맑은지 흐린지도 모르고 하루를 보낸다. 그저 아기가 잘 자면 흐린 날이고, 바깥에 나가 걷고 싶은 마음이 들면 맑은 날이겠지. 요몇일을 돌이켜보면 흐린 날이 많았던 것 같다. 미세먼지에 황사까지 심하다고 하고. 봄이면 찾아오는 계절성 알레르기도 느끼지 못한 채 지나간다 봄. 여름엔 좀 나갈 수 있으려나?


4. 밥

출산 2달차. 살은 모두 다 빠졌다. 놀랍게도 뱃가죽도 늘어남 없이 홀쭉해졌다. 집에서 아기를 돌보면서 하루 한 끼도 챙겨먹지 못한 채 하루를 보낸다. 정말 힘들었던 어느 날은 남편과 바나나만 하루종일 먹기도 했다. 강제 다이어트가 된 것 같은 느낌.


내가 밥을 먹으려면 누군가 아기를 돌봐야하기 때문에 매번 마음이 무거웠다. 그 대상은 갓 퇴근한 남편이기도 하고, 일하던 중간에 집에 온 엄마이기도 해서 그들의 바쁜 일과를 비집고 만든 시간에 밥을 먹는다는게 조금 미안했다. 아기가 등을 대고 누워자기 시작하면서 나는 거실에서, 아기는 방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운좋은 날은 그 시간이 30분이 되기도 운나쁜 날은 0분이기도 해서 우는 아기를 달래며 화장실에 가기도 했다.


어제 저녁, 처음으로 배가 고팠다. 아기의 컨디션도 좋아 등을 대고 1시간이나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갓 끓인 찌개에 밥을 먹고 있자니 행복감이 몰려왔다. 아기를 출산하고 처음으로 가장 마음 편했던 식사. 하루 한 끼라도 이렇게 먹게 해주라 아가. 잘 부탁해.


매거진의 이전글 4월 10일 월요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