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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May 01. 2023

4월 24일 그리고 5월 1일

어느새 반팔을 꺼내 입게 된 월요일의 일기

1. 4월

남편이 대뜸 수요일에 휴가를 냈다고 했다. 왜 냈냐고 물어보니 자기 생일이라 냈다고. 맙소사 4월 말이라니. 종종 인생이 바빠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의 대소사를 놓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웠는데 그 사람이 바로 저예요. 고작 인생에서 육아 하나 추가된 것뿐인데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도통 모르겠다.


아기 온도에 맞춰둔 방은 시종일광 늘 썰렁하기도 하고 하루종일 어차피 잠옷만 입고 사는 인생이라 계절이 흘러가는 걸 놓치고 있었는데, 4월이 되고 남편의 출근 옷차림이 점점 얇아지는 걸 보며 눈으로 바람으로 봄을 느낀다. 4월이라니. 벚꽃 구경한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아파트 단지가 모두 푸르다.


남편 생일엔 엄마찬스로 연희동에 다녀왔다. 파인다이닝이고 호텔 뷔페고 다 필요 없고 그저 좋아하는 곳에서 밥 먹고 커피 마시고 나니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었다. 머리만 겨우 감고 옷도 겨우 짐더미에서 꺼내어 입고 나간 우리. 심지오 연희동 가기 전만 해도 어디 근처 모텔에서 낮잠이나 2-3시간 자고 오자는 선택지도 있을 정도였으니 우리에게 이 정도면 엄청난 일탈이었다. 오래간만에 즐겁게 놀고 피터팬에 들러 빵도 잔뜩 사서 집에 돌아오니 아기는 신명 나게 울고 있었다. 어르고 달래서 재우고 나니 몰려오는 피곤. 그렇게 4월의 마지막 날까지 피로가 풀리지 않아 아주 혼났다. 노는 것도 체력이라는 말을 완벽히 이해한 하루.

녹원쌈밥은 하나하나 드셔야 됩니다


2. 책

오랜만에 책을 샀다. 이름하여 ‘똑게육아‘. 회사생활에서도 가장 큰 덕목은 똑똑하고 게으른 거라고 하는데 어쩐지 육아는 부지런만 떨다가 하루의 퀘스트를 겨우 깨고 밤을 맞이하는 기분이 들어 열심히 읽어보고 있다. 책의 주된 내용은 수면교육. 아기를 꿀잠 자게 만드는 여러 스케줄을 제시하고 뒷받침이 되는 이론들을 설명해 준다. 아주 빠른 속도로 읽어내는 중인데 그중 ‘잘 자는 아기가 잘 먹는다.’라는 부분에서 크게 공감했다.


우리 아기는 3.64kg로 태어나 70일 전후로 6.4kg로 쑥쑥 자라고 있다. 잠은 조금 부족한 편이라 낮잠은 고작 4시간 남짓, 밤잠은 10시간 정도를 겨우 잔다. 낮잠이 총 4번인 것을 감안하면 회당 1시간 겨우 자는 수준이니 아주 많은 편은 아니다. 워낙 식탐이 있어 소화할 수 있는 능력보다 더 많이 먹고, 배탈도 많이 나고 최근엔 약한 장염증상도 겪고 있다.


요즘 국민육아템으로 손꼽히는 옆으로 눕는 바디필로우형 베개를 들이고 나서 아기의 낮잠 시간이 6시간에서 7시간까지 늘어났다. 일시적이었지만 아기가 푹 자고 일어나니 우유도 꿀떡꿀떡 잘 먹고 또 배가 부르니 다시 잘 자는 선순환. 아기의 컨디션의 좋고 나쁨은 잠을 어떻게 자는가를 보면 된다. 쪽잠을 자고 있다면 속이 불편할 확률이 매우 높고 그 반대라면 아기의 속은 편안한 상태. 하루종일 아기를 관찰하고 돌보는데에서 더 나아가 쉬는 시간에도 아기와 관련된 책을 읽는다니.


엄마는 아기띠를 허리에 둘러 아기의 부족한 낮잠 시간을 채워준다. 나는 아침마다 공갈젖꼭지를 물려 어르고 달래 기상시간을 미뤄주고, 남편은 새벽마다 한 두어 번 수유를 해가며 아기가 깨지 않게 돌본다. 육아의 시작과 끝은 그저 ‘재우기’에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 시간들. 그 말인즉슨 잘 재우면 내 삶의 질도 올라간다는 것! 안 되겠다 똑게육아 다시 한번 정독한다. 해보자 잠 정복. (의지만 충분)


3. 5월

엄마집에서 보낸 한 달. 이제는 집이 문자 그대로 그리운 지경이라 주말에 시간을 내어 집에 다녀왔다. 한 달 동안 몇 번을 들르긴 했지만 어쩐지 먼지가 소복하게 쌓인 기분이 들어 남편은 청소기를 돌리고 나는 모든 수납장을 열어 물건들을 확인했다. 창문 밖 나무가 참 아름다운 집이었는데 출산을 하고 온 사이 멋없게 댕강 잘려나간 나무들을 보며 어쩌면 조금 더 답답함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언제든 집으로 돌아가 아기를 키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엄마집에 오니 절대 발이 떨어지지 않는 매직. 새벽이면 남편이, 주말엔 부모님이, 한낮에만 오롯이 내가 보는 이 정도의 육아도 지쳐 매번 저녁이 되면 80일 된 아기를 향해 눈을 흘기게 되는 날도 있는데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싶다. 그래도 5월은 어쩐지 여름에 조금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라 몸도 마음도 가벼워질 것 같은 기대감! 아기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산책도 나가봐야겠다.


4. 치킨

어제 짧은 산책을 마치고 남편과 집에 돌아오는 길,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풍기는 후라이드 치킨 냄새에 갑자기 군침이 돌았다. 치킨은 꼭 그렇더라고. 남의 집에서 시켜 먹은 냄새를 맡으면 마다할 수 없어진다니까. 그 길로 다시 나가 치킨을 포장해 방에 쪼그려 앉아 정말 맛있게 먹었다. 수련회라도 온 느낌으로 식탁도 상도 마다하고 열심히 먹고 바닥도 물티슈로 박박 닦았다. 이런 소소한 날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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