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시작한 월요일의 일기
1. 필라테스
가장 오래 한 운동은 요가이지만, 아 아니 요가는 수련이라고 표현해야 하려나? 여하튼 최근 몇 년 간 가장 빈번하게 들락거린 곳은 필라테스 스튜디오였다. 결혼준비하면서 엄청난 체형교정 효과를 봤었고, 이직하면서 직장 근처에서 필라테스를 1년 정도 배웠다. 필라테스의 가장 큰 장점은 근력을 많이 쓴다는 점이고 단점은 유산소가 다소 부족하다는 점인데, 실제로 유산소를 많이 안 하니 체력적으로 부치는 느낌은 분명히 있었다. 그래도 일주일에 2-3번씩 하루 50분씩 필라테스를 한 날과 안 한날의 내 몸은 달랐으니까 부지런히 해왔다.
임신을 준비하면서 매일 운동을 했다. 걷기도 하고 필라테스도 하고 종종 집에서 골반 교정 요가도 했다. 운동의 효과인지 임신이 되고 나니 어떤 것도 겁이 나 할 수 없었다. 어쩌다 한 번씩 임산부 요가를 찾아 스트레칭이나 할 뿐이었다. 임신 중기가 넘어가고 임부 필라테스를 3번 정도 한 날, 미주신경성 실신으로 기구에서 까무룩 정신을 잃은 후 운동을 멈췄다. 그게 거의 가을쯤이었으니 몸에 있던 아주 소소한 근육들은 이미 출산과 함께 사라져 버린 것이나 다름없어졌다. 산책 30분도 못 채우고 숨이 차는 날도 있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태양경배 자세를 가볍게 반복했을 뿐인데 머리가 핑 도는 날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 체력을 올려야 하는 데에는 ‘건강한 정신은 건강한 신체에 깃든다.’는 모토 때문. 산후우울 상담 5회 차가 어느덧 끝나가지만 나는 여전히 우울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기의 낮잠 4번을 때로는 8번이 넘게 재워가며 내 귓가를 찢는 울음소리를 감당해야 하고, 밤이면 밤마다 1시간씩 울어대던 아기를 지난 한 달간 겨우 달래 재우기도 했다. 누군가의 울음소리 때문에 일상이 무너지고 식욕도 수면욕도 모두 사라지고 나니 조금 허무했다. 엄마에게 그리고 남편에게 하루에도 여러 번 SOS를 치고 있지만 근본적인 체력이 올라와야 해결될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시작한 필라테스.
직장 생활 근 10년 동안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해피아워’ 이벤트를 보고 혹한 마음에 바로 신청했다. 해가 중천에 떠 있는 평일 낮에만 누릴 수 있는 바로 그것. 가격도 저렴하고 출산 후 아직 돌아오지 않은 몸을 만들기에 제격인 1:1 클래스로 신청했다. 오늘로 두 번째 시간, 다행히 출산 전과 동일한 수준의 몸 상태라 삐뚤어진 골반을 교정하고 호흡을 가다듬어가며 몸을 다시 만들고 있다. 7kg에 육박한 아기를 안으며 매일같이 활처럼 휘는 허리를 풀어내기도 하고 날개뼈에 잔뜩 뭉친 긴장감을 덜어내니 월요일도 꽤 괜찮은 날처럼 느껴졌다.
나는 조금 느리지만 이렇게 천천히 내 방식대로 나를 위로하고 치유하기로 마음먹었다. 새벽이면 잠을 쪼개어 나의 부담을 덜어주는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아침저녁으로 집에 들러 나의 안위를 살피는 엄마를 위해, 그리고 언젠가 이 모든 과정을 다 지내고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줄 나의 아기를 위해.
2. 우산
요즘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아기의 낮잠이다. 재우는 게 육아의 80% 이상일 정도로 하루종일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총 5번의 수면 퀘스트를 깨야하는데 얼마 전부터 낮잠을 스스로 푹 잘 자기 시작했다. 따로 잠을 연장해주지 않아도 알아서 뒤척이다 자거나 눈을 떠서 자기 전에 봤던 초점책을 보거나 하면서 하루 낮잠 시간을 스스로 정하고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 찰나 같던 기적의 10일 지나고 서서히 찾아오는 잠퇴행기와 낮잠 변환기. 아기의 낮잠은 또다시 반토막이 나기 시작했고 졸리지만 30분 토끼잠에 피로가 어느 정도 풀려버린 아기는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피곤한데 못 자니 울고, 울다 보니 결국 노는 것도 싫다 다시 잠도 못 자겠다 칭얼거려 안고 돌아다녀야 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 와중에 아침 기상까지 30분씩 때로는 1시간씩 앞당기기 시작해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밤잠이 조금 앞당겨진 것? 낮잠이 줄어든 것? 날이 밝아진 것!
새벽 6시 남편과 교대를 하고 아기가 자는 방에 들어서면 대낮같이 밝다고 느껴지는 날들이 종종 있었다. 게다가 요즘 날씨가 얼마나 맑고 화창한지 얇은 린넨 커튼 사이로 파란 하늘이 새벽녘부터 보이는 계절이 오고 있었다. 부랴부랴 암막커튼을 주문하고 급한 대로 암막이 있는 방으로 옮겨 재워보기도 하고 아침이면 깨기 전까지 베개와 이불로 빛을 최대한 막아보기도 했다. 그것도 역부족. 아기는 매일 기상하기 전 1시간 이상을 깰랑 말랑한 상태를 유지하며 나를 긴장시켰다. 나는 결국 못 자고, 못 자니 피곤하고, 낮엔 스트레스받고, 아기도 힘들어하고 악순환.
오늘 아침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신발장을 뒤져 큰 골프우산을 찾았다. 최소한의 암막이 되어있을 것이라 믿고 아기 침대를 향해 펼쳤다. 오늘 아침 기상시간 방어 성공. 낮잠도 쭉 잘 자주길 바라며 다시 한번 더 우산을 펼쳤다. 오랜만에 1시간 넘게 자주는 아기. 잠퇴행은 5분 7분 간격으로 깬다는데 그래도 25분 30분마다 깨는 아기에게 아직 퇴행은 오지 않은 건가 싶다가도 긴장을 놓칠 수 없다. 암막커튼이 없다면 우산이 정답입니다. 여름에도 아기의 숙면과 엄마의 정신건강을 위하여.
3. 친구
아기가 백일에 가까워질수록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는 빈도수가 높아졌다. 내 간식을 바리바리 사 오기도 하고, 아기 선물과 장난감을 사다 주기도 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기는 그때마다 기분 좋게 손님을 맞이하고 생긋생긋 웃으며 잠을 참아낸다. 잠이 귀한 아기에게 잠을 참는다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기도 하고, 아직 세상에 적응 중인 아기에게는 새로운 사람들이 약간은 자극이 되기도 하는지 밤마다 조금 더 우렁차게 울어대기도 한다.
집에 찾아오는 친구들만큼이나 최근 나에게 가장 큰 버팀목이 되어주는 친구들은 역시 나와 비슷한 월령대의 아기를 키우고 있는 친구들. 2달 먼저 나온 아기, 이제 갓 세상에 태어난 아기들까지 운 좋게도 가까운 친구들도 함께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를 함께하게 되었다.
우리 아기가 조금 더 크면 써보고 싶었던 물건은 앞서 태어난 아기에게 보내주고, 내가 아기를 낳고 보니 육아 초기에 필요했던 물건이나 신생아 때만 반짝 쓰는 물건들은 뒤이어 태어난 아기들에게 물려주었다. 아기 수면교육에 대한 기초 지식은 조리원에서부터 쌓는 게 더 편할 것 같아 꽤 유익하게 읽었던 똑게육아 책도 친구에게 보내주었다.
인생의 여러 시점에 만난 친구들이 이제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가는 것 같은 기분. 어서 아기를 사람구실할 만큼 키워내어 같이 한강에서 맥주나 마셨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