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100일.
1. 100일
아기가 백일을 맞이했다. 지난 100일간 있었던 일들을 모두 나열해 보면 100개도 넘는 에피소드가 있었겠지만 지나고 나서 보니 그저 그 모든 것은 ‘아기를 키우는 것’이라는 단 하나의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는 일일 뿐이라는 게 조금 대단하고 또 서글프기도 하다. 아기는 쑥쑥 자라 엄마를 알아보고 잠에서 깰 때마다 방긋방긋 웃어주기도 한다.
만삭사진부터 본아트, 50일 사진까지 어느 것 하나 하지 않고 넘어가고 나니 왠지 100일만큼은 사진을 하나 남겨줘야 할 것 같은 묘한 의무감이 생겨 스튜디오를 예약했다. 스튜디오 촬영이면 됐지 뭐, 하는 마음으로 손 놓고 있다가 100일 당일에 그래도 떡이라도 짓고 꽃이라도 올려 가족들이랑 사진 하나 찍어야 하지 않나 싶은 마음이 들어 부랴부랴 백일상을 준비했다. 명주실이고 현수막이고 그런 거창한 건 모르겠고 그저 꽃과 떡과 아기만 두고 찍는 사진.
가족들이 모였고 20분 남짓의 짧은 시간 동안 아기 옷을 두 벌이나 갈아입히며 겨우 사진을 남겼다. 그렇게 피곤한 아기는 그날 밤 1시간을 오열하다 잠들긴 했지만 양가 부모님 카카오톡 프로필에 사진이 올라온 걸 보고 있자니 그래도 찍길 잘했다 싶기도 하고.
아기의 100일은 일 년 전 엄마 뱃속에 태아가 생긴 날과 같다고 한다. 나는 일 년 전 매우 바빴고 거의 피로를 이기지 못해 떨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겨우 운전대를 잡고 집에 갔던 기억이 난다. 아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그 몇 번의 계절 중에 가장 좋은 날 아기가 왔다. 10개월의 임신을 경험하고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면서도 종종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른 채 책을 읽어주고 노래를 불러주고 있는 날도 있지만, 엄마가 된 지 100일 돌파다! 200일에는 조금 더 능숙한 엄마가 되어있었으면!
2. 한약
얼마 전부터 산후보약을 먹고 있다. 조리원 2주, 산후도우미 선생님 2주를 보내면서 나름 산후조리기간을 충분히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아기를 낳고 3달쯤 지나니 온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머리가 핑 돌아 앉았다 일어나면 아기를 꼭 붙잡고 벽에 기대어 있어야 했고, 밤이면 무릎과 발목이 시큰거려 양말을 꺼내 신어야 했다. 산후풍이라는 게 이렇게 무서운가 라는 생각도 했다.
보약을 먹으면서 다행인 건 공복에도 먹을 수 있는 약이라 아침인 듯 간식인 듯 꺼내어 먹고 있다는 점이다. 아침에 엄마가 사과를 고이 깎아 식탁 위에 포크까지 꼽아 두고 가도 어떤 날은 사과가 갈색이 다 되도록 먹지 못하고 결국 저녁 후 먹는 간식이 되는 날도 있으니까. 한약을 후루룩 마시고 나면 약간의 허기가 채워지는 것 같기도 하고. 물론 그러라고 먹는 한약은 아니지만.
예전엔 한약을 먹을 때면 지켜야 하는 여러 식습관을 지키는 게 꽤 어려웠다. 밀가루도 먹으면 안 되고, 자극적인 음식이나 술, 커피도 자제해야 하고 등등. 하지만 지금은 마시는 거라곤 물과 주스, 먹는 거라곤 밥과 국뿐인걸. 어느 때보다 한약이 더 몸에 잘 받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건강이 가장 우선인데 한약에 기대서라도 좀 챙겨봐야겠다. 내 건강.
3. 수면교육
우리 아기의 가장 큰 문제는 밤잠에 들어갈 때마다 귀가 찢어지도록 쏟아내는 강성울음. 신생아 졸업즈음엔 배앓이, 장염, 변비 등등 때문에 매일 울곤 했었는데 요 근래에는 밤이면 밤마다 피로에서 오는 울음이 심해지는 걸 느꼈다. 밤잠을 잘 못 자니 낮잠을 조금 더 자고, 낮잠을 많이 자니 밤잠을 또 못 자는 악순환에 울다 자니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기도 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아기를 9시에 깨우기 시작했다. 조금 적응되니 8시, 그리고 나니 아기가 7시 반이면 눈을 떴다. 자정 언저리에 자던 아기의 취침시간을 저녁 8시대까지 끌어내린 지 거의 2달. 울지도 안고 8시 즈음 스르르 잠든 아기의 기적 같은 하루를 경험하고는 수면교육이 필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8시 육퇴라니. 그 이후에 하는 모든 생활이 즐거웠다. 게다가 다음날 아침 7시 반에 다시 아기와 시간을 보낼 때도 피로가 가시니 조금 더 할만해졌다.
혼자 2달을 끙끙 앓아 겨우 하루 걸러 하루씩 좋이 지던 어느 날, 아기가 분명히 9시에 잠들었는데 자다 깨서 12시까지 혼자 옹알거리며 놀기 시작했다. 아기가 자는 방에 남편을 불러다 앉혀놓고 나오니 아기가 얼마나 얄밉던지. 아기를 재우기 위해 쉬- 소리를 1시간도 넘게 냈는데 고작 30분 자고 일어나서 낮잠 잔 듯 논다는 게 도저히 용납이 안 됐다. 그 길로 바로 전문 수면 컨설턴트에게 연락해 상황을 설명하고 컨설팅을 시작했다.
컨설팅 시작 5일 차. 거의 비슷한 시간대에 낮잠에 들긴 했지만 이제는 거의 같은 시간대에 낮잠에 들어간다. 등 대고 잘 자는 아기였지만 공갈젖꼭지와 유아용 바디필로우가 없이는 잠을 못 자곤 했고, 자더라도 낮잠 중간에 깨면 젖꼭지를 찾느라 울기도 했다. 이제는 “잘 자, 사랑해. 엄마랑 또 조금 있다가 만나서 놀자!”하고 방문을 닫고 나오면 때로는 웃으며 주로는 칭얼거리다 10분 이내로 잠에 든다.
밤잠 입면할 때 있던 강성울음도 많이 줄어들었다. 다만 30분 단위로 계속 깨서 울던 초반 깸 증상은 여전한 편이고, 새벽마다 수유 전후로 깨서 울고, 아기들이 많이 깬다는 아침 5-6시 사이에도 일어나서 혼자 옹알거리다 다시 잠에 들기도 한다. 완벽하진 않지만 혼자 잠들고, 혼자 잠을 연장하는 기본기를 갖추기 시작한 것. 그리고 정말 거짓말처럼 어느샌가 등을 대고 잔다. 바디필로우는 당장 떼줄 생각이 없었는데 가드용으로 아기 양 옆을 잘 막아서 재우고 있다.
수면교육으로 득을 본 건 단연 나. 아기의 일상인 먹고 놀고 자고 중에 자고 가 해결되니 한결 나아졌다. 게다가 같은 시간대에 일정한 일과를 이어가니 아기도 나도 예측가능한 하루를 보낸다. 누구보다 통제된 일과를 선호하는 나로서는 정말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랄까. 이전에도 아기의 밤잠을 제외하고는 꽤 괜찮은 일과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에 비하면 맛보기 수준이었던 것으로.
아기가 4-5개월이 되면 애착형성시기가 찾아오고 엄마 껌딱지가 된다고 해서 내친김에 분리수면도 함께 연습하고 있다. 분리수면을 하기 전에도 나는 옆방에서 남편은 아기와 함께 자곤 했지만, 수유할 때나 아기가 중간중간 깰 때마다 내는 소리에 늘 나는 잠에서 깨곤 해서 제대로 잠을 잔 날이 손꼽을 정도였다. 아기의 방을 안전하고 쾌적한 곳으로 옮겨두고 남편과 한 방에서 따로 잔 지 3일 차. 처음 이틀은 여전히 불안해 3시간 정도밖에 못 잤지만 어제는 무려 시간이나 잤다! 남편이 아기의 새벽수유를 도맡아 해준 덕이기도 하고. 3개월 차에 수면교육을 하는 게 가장 적기라기에 부랴부랴 시작했는데 단연 그런 것 같다. 아기의 낮잠이 줄어들고, 어른과 비슷한 시간대의 잠만 남게 되는 이후의 월령대에도 흔들리지 않으려면 이 방법뿐이겠지. 그래도 여전히 아기의 울음소리를 견뎌내고 모른 척 친절한 무시를 하기엔 마음이 조금 쓰인다. 고작 100일이 갓 넘은 아긴데 혹시 오늘 이렇게 혼자 누워 울게 한 것에 대한 후회를 하게 되는 순간이 올까 봐 겁나기도 하고.
그럼에도 임신 때는 임신에 집중하느라, 출산 때는 출산에 집중하느라, 집에 오니 아기에게 적응하느라 아무것도 못한 채 그저 이 작은 존재에 휘둘리는 일상이 조금은 답답하고 서글펐는데 100일이 되니 이런 삶도 가능하구나 싶다! 매일 7시 반이면 육퇴하고 남편과 수다도 떨고 시답지 않은 이야기도 나누는 삶. 이제 아기의 통잠과 새벽 깸을 잡기 위해 달려본다. 우리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자. 그러려면 엄마가 지금 좀 쉬어야 하거든. 이해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