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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Jun 14. 2023

6월 5일 그리고 12일 월요일

어느새 초여름이 되어버린 날의 일기

1. 노을

아기를 재우고 소리 없이 집을 정리하다 아주 예쁜 노을을 보았다. 초여름 딱 이맘때의 노을이 정말 예뻤지, 이런 날 한강에서 낮부터 밤까지 바람이나 쐬고 배달음식이나 시켜 먹던 날들이 고작 1년 전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베란다의 작은 창으로 겨우 분홍빛 하늘을 보고 있자니 조금 서글프기까지 했다.


서울집은 동남향이라 노을 자체가 보이지 않아 낮이었다가 순식간에 밤이 찾아오곤 했는데 친정집은 동서남북 사방으로 하늘을 볼 수 있는 너른 창 덕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늘과 구름의 움직임까지 모두 보며 지낸다. 아기를 안고 창밖을 내다보며 오늘은 비가 와서 흐리고, 오늘은 날이 선선해 사람들이 나와 논다는 말들을 전하면서 아기는 내가 하는 말을 어느 정도까지 이해하며 듣는 걸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아기를 눕히면 저녁 7시 반 언저리. 예전이면 상상도 못 했던 ‘육퇴’를 경험한 지 2주가 되니 저녁에 일찍 자고 싶다는 생각보다 1분 1초라도 더 놀다가 자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렇게 자정 가까이 놀다 잠들고 아침이면 후회하는 삶. 노을을 보며 육퇴 아침 일출을 보면서 육출. 으아 늦잠은 언제쯤 가능할까.


2. 귀마개

쿠팡에서 귀마개를 구입했다. 엄마아빠의 하루 시작 시간은 새벽 5시. 현관에서 가장 가까운, 그래서 집에서 가장 분리된 공간에 우리 부부 방을 꾸리고 나니 아빠가 아침마다 현관을 열고 신문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우리의 하루도 반강제로 시작된다. 5시 반이면 엄마는 아기가 잠에 들어버린 밤동안 참아왔던 온갖 집안일을 하기 시작한다. 청소부터 빨래, 설거지, 베란다 정리, 택배 정리, 아빠 아침 차리기, 과일 깎기 등등.


친정에서의 두 달 동안 아기가 새벽마다 깼으므로 위의 소음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우리는 피곤해 잠들었기 때문에. 다만 아기가 마침내 우리에게 밤잠 시간을 허락한 지 이 주만에 저 모든 소음이 엄청난 돌부리가 되기 시작했다. 미안한 마음에 며칠을 끙끙 앓다가 집안일을 우리에게 맡겨달라고 말씀드렸다. 그 소음에 우리가 조금 이르게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고.


아기 때문에 이미 모든 소음을 최소화로 하고 사는 중년 혹은 노년을 향해가는 부모님께 더 조용히 살아달라 부탁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다행히 그다음 날부터 소음이 줄어들었다. 아침이면 창가에 지저귀는 새소리와 키 큰 나무를 거쳐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의 소리도 육아에 지친 현재의 우리에겐 모두 다 소음이다. 나의 숙면을 위해 새벽 5시면 귀마개를 귓속에 쏙 집어넣는다. 그럼 아기가 하루를 시작하는 7시까지는 내 세상! 잠이 귀하다.


3. 산책

어제는 남편과 밤산책에 나섰다. 아기가 태어나고 아기를 재운 후에 즐기는 마음 편한 외출은 거의 처음이었다. 낮동안 해를 쬐며 호사롭게 산책하는 삶에는 이제 크게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그저 오늘 하루 아기와 내가 건강하고 즐겁게 하루를 보내고 맞이한 저녁에 모든 짐을 내려놓고 늘기는 여유가 진짜라는 걸 깨닫고 있다.


4. 필라테스

필라테스를 시작하고 고작 5번밖에 가지 못했지만 몸이 좋아진 걸 매일 느끼고 있다. 임신 내내 벌어진 갈비뼈가 뻐근해지고 아기를 안을 때마다 꺾이던 허리와 골반에 약간이지만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운동을 하러 가는 10분의 빠른 걸음도 좋고 운동을 하면서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50분의 시간도 좋다. 다녀오면 없던 식욕이 돌아 밥 한 공기 뚝딱하는 예전의 나를 마주할 수 있는 것도 소소한 행복.


회원권을 다시 끊을 용기는 나지 않지만 우선 시작한 것에 의의를 두고 아기가 자는 짧은 낮잠 시간 동안에라도 꼭 스트레칭을 해야지.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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