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에 쓰는 월요일기
1. 워킹맘의 꽃말: 절절함
고작 일주일이었다. 전업주부의 탈을 쓴 채 아기를 돌보던 삶에서 출퇴근 지옥철에 올라타기 시작한 것은. 출근을 하기 시작하니 아침 30분, 저녁 1시간 정도의 시간만이 아기와 나에게 주어졌다. 아기를 깨워 우유를 먹이고 출근준비를 하고 나오면, 아기는 어느새 하루를 보내고 저녁 우유를 먹은 후 목욕을 해야 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아기는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했다. 하루 30분이긴 했지만 꽤 고단했는지 낮잠시간마다 뻗어버리기 일쑤였다. 함께 적응 중인 남편도 함께 뻗곤 했다. 첫날보다 둘째 날이, 목요일보다는 금요일이 나았다고는 하지만 주말을 보내고 나면 다시 리셋된다고 했다. 오늘 아기는 또 다른 적응을 시작해야 한다.
일을 하는 내내 아기는 잘 먹고, 잘 놀고, 잘 지내는지 궁금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양치하면서, 물 마시면서, 이동하면서 짬짬이 거실에 달린 베이비캠으로 아기를 관찰했다. 몇 달간 손발을 맞춰온 돌봄샘과 나보다 아기를 더 잘 보살필 것이라 믿는 남편이 아기와 함께 있어 사실은 누구보다 수월하게 복직 중이지만 (복직은 진행형으로 써야 그 의미가 그대로 전달된다) 그럼에도 마음속에 절절함이 남는다.
아기는 갑자기 두 손을 내밀며 ‘주세요~’를 하기 시작했고 됐다! 가는 아빠의 말에 ’됐다!‘라고 따라 말하기 시작했다. 산책 나가는 길에 가져다 달라고 말한 나의 오래된 모자를 가지고 오기도 하고, 신고 싶은 양말을 골라오기도 한다. 주말이면 아기를 보고 어쩜 이렇게 컸냐고 말하는 친정 부모님의 말이 괜한 말이 아니라는 걸 마음 깊이 깨닫는다.
아기는 이번 주부터 매일 아침 1시간씩 어린이집에 간다. 남편에게 꽤 긴 호흡의 휴식이 되기를, 아기에게는 즐거움이 가득한 재미있는 자극이 되기를.
2. 지각
예 지각하고 있습니다. 5일 출근 중에 하루는 5분이나 늦어버렸다. 물론 다른 날도 9시 온타임에 사무실에 들어섰다. 딱히 이른 출근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1년 가까운 시간을 자차로 출퇴근하다가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갈아타가며 출근하려니 체력도 체력인데 시간 안배가 전혀 안 된다. 확인해야 하는 시간도 여러 가지인 데다 지하철 역은 또 어쩜 이렇게 깊게도 파두었는지. 오늘은 환승역에서 냅다 달려 3분 사이 환승열차 탑승에 성공했다! 오늘의 소소한 행운.
3. 꽃샘추위
갑자기 영하가 됐다. 3월이면 의례적으로 찾아오는 꽃샘추위를 마주한 것뿐인데 어쩜 이렇게도 추운지 아기 방과 거실 바닥이 냉골이었다.
아기는 어린이집 적응하면서 피곤한지 컨디션이 조금 안 좋아졌다. 갑자기 콧물도 주르륵 흘리고 낮잠 시간을 한참 남기고도 툭하면 손을 빨고 엄청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병원에 다녀오니 아마도 어린이집에서 약한 코감기를 옮아온 것 같다고 했다. 다행히 주말 내내 잘 먹고 잘 자고 집에서 따뜻하게 잘 놀고 콧물도 기침도 많이 멎었지만 아기가 기관에 적응하는 내내 이런 날들이 오고 간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좀 미안했다. 어린이집 적응 기간에 꽃샘추위라니. 어서 아기의 외투가 번거롭고 더워지는 따뜻한 날이 왔으면.
4. 마르쉐
아기와 함께 첫 마르쉐에 방문했다. 매번 서교동이나 마포 등지에서 하는 바람에 가지 못했는데 이번엔 집 앞 공원에서 하고 있길래 냉큼 방문했다. 잔디밭에서 누군가는 버스킹을 하기도 하고, 쌀로 만든 빵을 사 먹고 씨앗을 사며 저마다의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남편이 좋아하는 이탈리안 파슬리 한 단을 신문지에 돌돌 말아 구입하고 집으로 왔다. 남편은 그 자리에서 파슬리를 한 입 두 입 뜯어먹기도 했고, 아기는 궁금한 듯 만져보기도 했다.
그냥 오랜만에 우리 부부 단 둘이 보내던 여러 주말에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우리의 삶에 아기가 들어오는 그런 기분. 아기의 삶에 푹 잠겨있던 우리에서 서서히 우리의 삶에 적응하는 아기를 바라보는 것이 어쩐지 뭉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