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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Jan 11. 2021

1월 11일 월요일

역시 노트북으로 쓰니 이렇게나 편한 일기

1. 매트에 오르는 기분

요가를 하는 사람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각자 매트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가령 아주 어려운 고난도 자세를 꾸준히 연습하여 비포 앤 애프터를 찍어 멋지게 기록하거나, 다리 찢기나 물구나무서기처럼  매일 수련의 정도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인내가 필요한 목표를 세우는 것들. 대부분의 요기니들은 본인만의 소소하고 위대한 목표를 가지고 요가를 수련하고 그 목표가 원동력이 되어 매트를 깔고 호흡을 정돈한다.


소화불량 수족냉증 골반교정. 나의 아주 실리적이고 생활밀착형 목표. 위의 멋진 목표들과는 사뭇 다른 결의 목표이지만 그것들만으로도 일주일에 한두 번 매트에 오를 이유는 충분하다.

그럼에도 나에게도 목표랄 것이 있냐고 물어본다면 '차투랑가' 그리고 '수리야나마스카라' 라고 말할 것 같다. 일주일에 한 번씩 수리야나마스카라 (태양 경배 자세) 플로우를 수련한다. 어떤 날은 처음부터 가슴이 활짝 열리고 호흡이 온몸으로 통하는 기분이 든다. 그런 날이면 온 몸을 매트와 평행하게 일자로 길게 뻗어 플랭크 자세를 유지한 다음 팔과 배의 힘으로 매트와 가까이 내리는 '차투랑가' 포즈도 아주 멋지게 성공한다. 이에 이어지는 '업독'과 '다운독' 포즈도 함께 꽤 맘에 드는 모양으로 완성되고.


그런 운이 좋은 날의 요가는 당연히 즐겁지만, 대부분의 요가는 숨이 차고 어렵다. 그중에서도 수리야나마스카라가 유난히 안 되는, 바로 오늘 같은 날은 요가를 하다 멈추곤 한다. 한 시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자세를 풀어 손가락 발가락 끝으로 모든 호흡을 전달한다. 그럴 때면 묘한 패배감에 요가 매트 따위 어서 치워 넣어버리고 싶지만, 마음과는 달리 오히려 매트에 오래도록 앉거나 누워서 나를 찬찬히 바라보게 된다. 요가를 시작하기 전 물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 걸까? 혹은 오후에 간식으로 먹은 것들이 조금 부대끼면서 힘을 받지 못하게 된 걸까? 요가를 시작하면서 스트레칭을 너무 대충 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방의 온도가 너무 높아서? 아니면 지금 내 체온이 너무 낮아서? 어떤 이유로 오늘의 요가가 쉽지 않았는지 고민한다.

매트에 오르는 기분은 뭐랄까. 나를 괴롭히던 고민거리를 충분히 바라보고 인정하고 자리를 정리할 줄 아는 아주 성숙한 어른이 된 것 같달까. 그저 차투랑가가 되느냐 마느냐의 중요한 기로 앞에서 매트에 오르기 전 머릿속을 떠다니던 사서 하는 걱정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니까, 그저 내일은 차투랑가를 잘해야지 라는 마음만 남게 된다. 내일은 꼭 차투랑가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


2. 어느 날의 드라이브

하루 종일 식탁에 앉아 재택근무를 하는 남편은 중간중간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점심을 차려먹는 것 외에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함께 집에 있을 땐 아침 일찍 선유도 공원 산책을 다녀오거나 점심에 짬을 내서 장을 보러 가기도 하지만, 내가 출근하는 두 달간은 그 마저도 쉽지 않았다. 거기에 영하 20도에 육박하는 날씨에 산책은 거의 꿈도 못 꾸고 있다. 그 대신 이른 저녁 식사를 마치고 종종 정처 없이 드라이브를 나가곤 하는데 딱히 머물 곳이 없어 주로 스타벅스 DT에 들러 커피 한 잔을 사서 나눠 마시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곤 한다.


신호에 걸려 차가 정차한 사이 남편에게 "혹시 우리 아기가 생기지 않으면 큰 빚을 내서 좋은 집으로 이사 갈까?"라고 물어봤다. "그리고 되게 비싸고 귀한 가구를 한 점 한 점 사 모아서 그 집을 채워가면서 살자!"라고 말했다. 남편은 킥킥거리면서 "둘 중에 하나만 해야 할 것 같은데." 라면서 "둘 다 한 번에 목돈이 들어가는 거니까."라는 말도 덧붙였다.

얼마 전엔 친한 친구를 뒷좌석에 태워 함께 드라이브를 하면서 "싱어게인에서 이 가수 몇 등할 것 같아?"라는 질문을 주고받았다. "이 가수는 이미 첫 곡에 너무 많은 걸 보여줘서 한 11위 정도 할 것 같은데"라고 하니 남편이 "아 근데 이 파마머리 가수는 스타성과 대중성이 있으니까 그래도 한 5~6위 정도 할 것 같아."라고 했다. 그러자 뒷좌석 친구가 "뭐 그렇게까지 상세하게 등수를 매겨가면서!" 라면서 껄껄 웃었다. 싱어게인 경연에 나온 앨범들을 잔뜩 골라 플레이리스트에 넣고 드라이브가 끝날 때까지 듣고 따라 불렀다.


우리는 아주 오래된 차에 앉아서 아무 의미 없는 드라이브를 하면서 일상을 돌본다. 그러면 꽤 많은 것들이 괜찮아지는 것 같다.


3. 일에 대한 생각

언젠가 상사에게 선배의 평을 들은 적이 있었다. 조금 무례했던 기억에서였는지 꽤 또렷하게 생각난다. 드러나는 일만 하려 하는 여우 같은 사람이라고, 드러나지 않는 일은 처음부터 발도 들이지 않는다고 했다.

복직을 하면 주어진 일에 열심을 다 하려고 하는데, 그와 동시에 휴직 기간까지 이어지는 일은 웬만하면 피하고 싶다. 휴직과 복직의 선택이 나에게 있지 않으므로, 일의 연속성을 장담할 수 없으니 자칫하면 휴직을 하고서도 업무를 마무리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기곤 했다. 몇 번의 휴직과 복직을 거치고 나니 그것마저 때로는 스트레스로 다가오곤 했다. 그러다 문득 휴직에 하는 업무들이, 그 일들이 드러나지 않는 일이라서 그런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주춤하게 됐다. 그런 걸까. 그런 것 같아서 조금 얼굴이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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