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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Feb 15. 2021

2월 15일 월요일

그래서 잘라요 말아요. 가 가장 큰 고민인 월요일의 일기

1. 미용실을 찾는 여정

서울로 이사 온 첫 해는 정말 바빴다. 서울에 살고 있지만 모든 생활권은 모두 수원 본가에 머물러있었다. 주말마다 부지런히 내려와 미뤄뒀던 병원 진료를 봤고 두어 달에 한 번씩 미용실도 다녔다. 서울에 얻은 원룸은 주 5일 출퇴근을 위한 공간으로 전락하기 직전이었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갑자기 온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주말까지 기다릴 수도 그렇다고 주중에 수원을 갈 수도 없어 동네 맘 카페에 가입했다. 특히 병원 류의 정보는 맘 카페가 가장 정확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딱히 다른 선택권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카페에서 소개해준 내과에서 여러 번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적절한 치료를 받았고 그 이후 모든 정보는 그 카페에서 검색하고 검증하는 절차를 거치곤 했다.

나에게 어떤 검색 엔진보다 더 공신력이 있었던 그 카페에서 찾기 어려운 정보가 딱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미용실이었다. 아주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선택지를 한두 곳으로 추려 확인해봐도 마음에 쏙 드는 곳은 없었다. 게다가 내 머리카락으로 말할 것 같으면 두껍고 건강한 모질에 엄청난 머리숱으로 파마나 염색을 하고 나면 그 부분을 자르지 않는 이상 아주 오래도록 유지되는 몹시 복 받은 기질의 것. 그 때문에 미용실을 찾는 여정은 언제나 고되고 귀찮은 것이었다.

2. 동네 미용실

가장 빠른 방법은 미용실 여러 곳을 골라 시도해보는 것이기 때문에 지체 없이 동네의 작은 미용실 몇 곳을 골랐다. 홍대 근방의 동네 미용실은 20,000원 균일가 미용실이거나 유명 브랜드 미용실뿐이기 때문에 꾸준히 맘 편히 다닐 동네 미용실을 찾기 조금 어려웠다. 물론 그 시절 내가 망원동을 아주 흠모했던 점이 미용실 결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도 했던 것 같긴 했지만. 여하튼 앞머리만 잘라봐도 느낌이 오는 가위손 몇 분을 거치고 결국 트렌디한 헤어스타일 (이를테면 레이어드 컷)을 세련되게 완성하는 1인 미용실을 찾았다.


각기 다른 개성의 가위손을 거쳐 엉망이 된 머리를 이고 지고 들어가 "저 어쩌죠?"라고 물으면 언제나 멋진 헤어스타일로 화답해주는 곳. 망원시장에 인접한 골목 초입에 위치해 창 밖으로 보이는 과일가게 강아지와 풍경을 내내 구경하다 보면 이보다 더 멋진 동네 미용실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3. “저 어쩌죠?”

친한 친구들에게 여전히 회자되는 나의 인생 머리 숏커트를 거쳐 숏단발이 되었던 어느 시점, 동백꽃 필 무렵이라는 드라마를 보게 됐다. 그 드라마가 문제의 시작이었다. 공효진 배우를 살아하는 나로서는 동백이 머리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1년이면 동백이 머리에 가 닿을 거라고 믿었고 미용실로 찾아가 "이제 기를 거니까 조금씩 다듬어 주세요"라고 호기롭게 외쳤다. "그저 버티면 기르는 건 금방이니 버티세요!"라고 응원 아닌 응원을 들으며 머리를 기르기 시작한 지 어느덧 1년. 결혼 준비를 할 때도 어깨를 겨우 넘긴 머리 길이 때문에 겨우 머리를 올려붙인 내가 동백이 머리라니. 우선 해 보기로 했다.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지금 엉망이다. 선생님 저 어쩌죠?

4. 중단발의 또 다른 이름

거지 존. 거지 같다고 해서 거지 존이 필히 맞을 것이다.

도저히 어찌할 방도가 없어 우선 파마를 했다. 아마 이게 재앙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왜냐면 앞머리도 뽀글뽀글하게 파마를 했기 때문에. 아마도 이게 제일 큰 문제였던 거겠지. 그렇게 나는 푸들이 되었고 볼륨 없는 로우 번만이 허락됐다. 그렇게 오늘도 오늘도 찾는다 중단발 C컬. 중단발 S컬. 중단발 레이어드 컷.


5. 잘라요 말아요?

고민의 끝에 이제는 중단발을 거쳐 긴 머리에 다다른 모두에게 묻고 싶은 심정이다. 저 잘라요 말아요?

남들은 과거 사진 보며 피부가 탱탱하네 살이 빠졌네 한다던데 나는 매일같이 짧았던 머리를 보며 수백 번 고민한다. 아마 이번마저 결국 자르면 10년쯤 오만가지의 단발 헤어스타일을 다 해보다가 질려서 다시 거지 존에 올 것 같아서 오늘도 거지 존 앞에서 심각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고민한다. 그래서 잘라 말아?

+번외

클럽하우스의 여러 방이 생기고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그래서 저 머리 잘라요 말아요?'라는 방을 만들 뻔했다. 진심이다. 무기명 투표라도 받아내어 그 핑계로 결정하고 싶은 나의 마음을 나도 모르는데 누가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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