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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Jun 28. 2021

6월 28일 월요일

하루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버린 월요일

1. 호

요즘 나의 가장 큰 호好는 고요함이다. 반대로 말하면 요즘 나의 가장 큰 불편함은 소음이라는 말이다. 소란스러움에서 피로감을 느낀다. 지하철에서 들리는 숱한 대화 소리와 불필요한 자동차 경적음에 눈살이 찌푸려지고, 시답지 않은 농담과 소비되는 불평 소리에 꽤 많은 에너지가 쓰인다. 그저 탁 트인 숲에 들어가 앉아서 바람이 나무 사이로 부는 소리나 들으며 푹 쉬면 좋겠다.


2. 불호

지난주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뭐니 뭐니 해도 ‘선 넘네?’였다. 미움받기 싫어하는 지인을 달래고 달래다 결국 나에게 그 화살이 돌아오기도 했고 선의로 하는 위로에 상처를 받기도 했다. 주로 내가 가장 불호不好하는 것은 요란스러운 사람들인 것 같기도. 그리고 요란스러운 날씨도 싫다.


3. 죽음의 에티켓

주말 내내 집에서 끼니마다 정성스레 식사를 차려 먹었다. 밥을 다 먹고 나면 남편이 곧장 설거지를 했고 나는 주변 정리를 했다. 한 달은 넘게 못 태우던 인센스를 태워가며 샤워를 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 에어컨 아래서 아무 걱정도 고민도 없이 저녁을 맞이했다. 이토록 평화로운 주말이라니. 오랜만에 늦잠도 넉넉하게 자고 나니 그래도 꽤 즐거운 월요일을 맞이할 수 있었다.


어제저녁 남편과 소파에 앉아 책을 읽었다. 죽음의 에티켓. 죽음은 우리 모두의 일이면서도 또 모두가 바라지 않는 일이기도 해서 사실은 나 역시도 외면해왔던 것 같다. 몇 달 전 인스타에서 꽤 오래 팔로우하던 동화작가 윤지회 님의 부고와 얼마 전 유튜버 새벽 님의 부고로 조금 환기가 됐달까. 죽음은 어디에도 있는 일이라고. 죽음의 에티켓의 책 초반에는 죽음을 어떻게 준비하면 되는지 아주 소상히 적혀있었다. 맨 정신에 해야 하는 일들에 대해서 일목요연하게. 장례식을 어떻게 치르고 싶은지 나의 정신이 온전하지 않을 때를 대비해 미리 정해두고 적어두라는 말이었다.


사실 지난주 출근길에 내 옆에 가만히 앉아있던 길고양이가 갑자기 찻길로 뛰어들어 고양이 별로 가버리고 말았다. 그날 처음 본 고양이었지만 나는 그 고양이의 마지막을 본 사람 중 하나가 되고 말았다. 그 짧은 찰나, 거의 10초도 안 되는 시간 사이에 갑자기 벌어지고 말았다 바로 죽음이라는 일. 사고가 나고 1시간 정도 조금은 멍한 채로 있다가 그제야 수습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얼마 전에 이미 다른 분께 전화를 받아 아마 고양이는 잘 옮겨졌을 거라고 전해주셨다. 죽음은 어디에도 있는 일이라고. 그래도 그런 죽음은 어디에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4. 여름휴가

산을 바라다보는 아주 정적인 숙소를 예약했다. 가까운 곳에 바다가 있는 곳. 올여름휴가도 지긋지긋한 전염병으로 붐비는 여행지나 수영장은 꿈도 못 꾸고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진심으로 조용하고 고요한 휴가를 꿈꾸고 있는 내 마음에 쏙 드는 곳을 찾았다. 단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직 2달이나 남았다는 점.


작년 여름엔 부모님 제주 살이에 얹혀 매일 바다에 가서 앉아있었는데, 그것이 얼마나 호사였었는지 일 년이 지난 지금에야 절절하게 깨닫는다. 여름휴가 때까지 부디 모두 안녕하기를.


사진은 작년 여름휴가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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