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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파 Nov 04. 2021

작고 반짝이는 선물

작은 손으로 건넨 소중한 마음 

  '작고 반짝이는 거'. 좋은 선물의 기준을 말할 때 나오곤 하는 우스갯소리다. 저렴하고 큰 선물 보단 값비싸고 작고 반짝이는 것, 알이 크게 박힌 목걸이나 반지가 좋은 선물이란 의미로 사용되곤 한다. (미디어에서 하는 말들이지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오늘 나는 작고 반짝이는, 거기에다 값을 매길 수 없을만큼 소중한 선물을 받았다. 바로 이 반지다. 

작은 인형이나 열쇠고리에 달려있는 은색 줄로 만든 반지. 이걸 건네는 작은 손이 너무 고마웠다. 작은 손의 주인공은 채움교실에서 나와 한글공부를 하고 있는 1학년 아이다. 오늘의 이 선물이 특별했던 이유는 아이가 나에게 마음을 열고 나에게 방 하나를 내주겠단 신호였기 때문이다. 


  지난 수업 시간에 나는 가르쳐야하는 받침은 하나도 알려주지 못하고, 40분 내내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여러 번의 이사 이야기, 부모님 이야기, 보육원에서 함께 사는 형들과 누나 이야기. 말간 얼굴로 무심하게 고백하는 여덟살 인생은 꼭 안아주고 싶을 만큼 고달팠다. 한숨을 폭 쉬며 '사는 게 힘들어요.' 라고 말하는 작고 여린 삶을 어떻게 해야할까. 무슨 말을 해줘야할 지 몰라서 나는 그냥 들었다. 수업 시간이 끝나갈 때 즈음, 고백에 대한 응답을 해야한단 책임감으로 예사로운 조언을 해줄 뿐이었다. 주변이 온통 검정색이면 물들기도 쉽지만, 마음의 중심을 잘 잡아서 자신을 지켜야한다고. 여덟 살이 알아듣기엔 어려운 말이었을 것이다.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듣는 사람에 알맞은 말하기는 내가 배워야할 듯 싶었다.


  아이가 살고 있는 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겠지만, 그 날 이후 아이는 마음에 방 하나를 만든 모양이었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어른에게 내어 줄 방 하나, 나에게 그 곳에 들어와도 된다고 허락해준 것이다. 혹시나 떨어질 새라 필통에다 조심조심 담아 온 저 반지를 내미는 손을 보니 알 수 있었다. 그림책 <팥빙수의 전설>을 읽는, 평소보다 두 톤 정도 높은 목소리를 들으며 알 수 있었다. 나와 마주치는 반짝이는 눈빛을 보며 알 수 있었다. 


'선생님이랑 읽고 싶은 그림책이 있는데.'

'그림에 이거 선생님이에요.'

'선생님이 먼저 해봐요.'


선생님, 선생님을 부르는 아기 새 같은 입을 보며 알 수 있었다. 귀를 열어 준 대가로 받은 선물로는 분에 넘치는 것이라 내가 담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이가 내어 준 방에다 예쁜 꽃을 놓아줘야지. 향기로운 초를 피워줘야지. 달콤한 쿠키를 담아내야지. 앞으로 우리가 교실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아이의 마음에 작은 희망 하나를 심어줄 수 있길 바란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어른의 존재가 그 작은 희망이 될거라 생각한다. 서로에게 선물이 되는 관계가 되길 소망한다. 오늘만큼은 내가 행복한 선생님이라고, 꽉찬 확신을 담아 말할 수 있겠다. 오늘 밤은 편안하길. 아이를 위해 손 모은다. 



팥빙수 위를 함께 걷는 나와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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