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떠나는 이유를 묻는다. 우리의 대화는 늘 물에서 시작해 물에서 끝난다. 물에서 만났고 그래서 물에서 헤어진다. 그는 물속에 잠길 때 가장 빛이 났다. 그의 두 눈이 말을 한다. ‘나는 당신의 어둠이 무섭다’라고. 당신이 너무 밝아서 내 어두움이 돋보일 뿐인데. 그는 나를 어둠이라 칭한다. 그런 그를 탓할 수 없다. 그의 두려움을 이해할 수 있어서. 처음 바다가 좋아진 날이었다. 해가 뜨는 걸 보여주겠다며 동쪽으로 달린 날. 동생과 나는 잠이 많았다. 우리는 9시를 잘 넘기지 못하고 아무 곳에나 찌그러진 콜라 캔처럼 기대어 잠이 들었다. 찌그러진 콜라 캔들을 회색 차 뒷좌석에 집어넣고 젊은 부부는 동쪽으로 달렸다. 그들은 얼마 전, 길에 흔하게 굴러다니는 평범한 차를 샀다. 비로소 그들에게는 고속버스 시간표의 네모 칸에 쫓겨 어린 아이들을 안고 서둘지 않아도 되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젊은 부부는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도시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바다’같은 것을. 나는 그 날 처음 본 바다에 내리 깔린 어둠이 무서웠다. 그렇게 거대한 어둠은 처음이었다. 도시에서만 자란 아이는 도시의 불빛에 익숙했다. 가로등 불빛은 어둠이 다 물러서기 전에는 꺼지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는 어둠이 무엇인지 몰랐다. 파도 소리만 가득한, 이런 거대한 어둠은 접해본 적이 없었다. 우리 가족의 새 차는 싸구려 부직포 시트 냄새가 났다. 나는 그 냄새가 싫었다. 그 냄새를 없애려고 놓아둔 모과는 더 싫었다. 만지기만 해도 모과 냄새가 손에 가득 묻어서 구역질이 났다. 냄새에 민감한 나는 좀처럼 차에 타기 싫어했지만 그날만큼은 자꾸만 차 안으로 깊숙이 숨어들었다.
어둠은 볼수록 익숙해졌다. 군청색에 남색을 섞은 듯한 하늘빛은 그저 까맣지 않았다. 더 짙은 색의 까만 구름들이 종종 떠 다녔고 그 아래로 까만 물결들이 달빛에 반짝이며 구불거리는 선들을 그렸다. 익숙해진다고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파도소리가 제일 생경했다. 티비에서 듣던 소리와 달랐다. 책에서 읽은 파도소리와도 달랐다. 상상보다 더 웅장한 소리였다. 티비에서 듣던 잔잔하게 몰려와서 해변 모랫가에서 물거품으로 사그라드는 김 빠지는 소리가 아니었다. ‘철썩 철썩’ 친다던 책에서 읽은 소리와도 달랐다. 나는 그냥 어디에서 나는지 모를 그 큰 소리가 싫었다.
겁이 많다는 것은 그 어린 나이에도 왜 그렇게 부끄러웠지 모르겠다. 나는 들키지 않으려 애써 관심이 없는 척을 하고는 했다. 무관심한 척. 흥미가 없는 척. 시시한 척. 그런 나에게 엄마는 더 많은 것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엄마는 ‘막상 해보면 좋을 거야’라며 밖으로 몰아내곤 했다. 나는 놀이터 흙이 싫었다. 파고 파도 그 아래에 흙이 있다. 그 흙 색깔들이 조금씩 바뀌고 물기가 스며들어 있는 것이 싫었다. 자꾸 더 파다가는 흥건한 물이 흐르는 물길을 만날 것 같았다. 그 물길이 나를 삼켜 엄마도 아빠도 없는 곳으로 나를 밀어낼 것 같았다. 그래서 무서웠다.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저 멀리서 붉은 빛이 스며들었다. 짙은 남색의 어디선가 경계가 생긴다. 붉은 선이 바다와 하늘 사이에 그어진다. 도화지에 수채 물감이 퍼지듯이 빛이 스며든다. 빛을 받은 바다는 여러 가지 색의 구불거리는 선을 만들었다. 노란 선이 그어지는 듯하다가, 흰 선이 되었다가, 아이보리색 같기도 하다가 또 어느 순간에는 탐스러운 자몽 과육 같은 빨간 주황색이기도 했다. 색색의 구불거리는 선은 가까워지다가 다시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까만 바탕에 그런 화려한 색감을 그려 넣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제야 들려오는 파다 소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눈으로 보기 시작하자 그것은 내 상상 속에서 듣던 소리와 같았다.
나는 무엇이나 내가 가늠할 수 있는 깊이만큼 만 좋아했다. 바다의 넘실거림을 좋아한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물방울을 좋아하고 그 물방울들이 모여 선이 되어 만드는 빛의 길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내가 모래바닥을 밟고 서 있는 그 순간에만 사랑스러웠다. 헤엄을 치려 모래 바닥에서 발을 떼는 순간 나는 이 모든 사랑스러운 것들의 이면을 보았다. 물속에서 나는 숨을 쉴 수 없다. 깊은 물속에서 나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인다. 겁을 먹는 순간 더 깊은 곳으로 빨려 들어 갈 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겁이 난다.
지금 그도 그런 것이다. 물 밖에서 바라보던 반짝이는 나는 물속에서는 빛을 잃는다. 나는 빛이 닿지 않는 깊고 어두운 곳으로 너무 빠르게 침몰하고 있다. 나를 건져내려고 그가 나를 잡을 때마다 내 어둠이 그에게 옮겨갈 듯이 달려든다. 내 어둠이 그에게 닿을 때마다 그는 도망가고 싶었을 것이다. 어둠에 잠기기 전에 내가 어둠을 두려워했듯이. 그는 아직 어둠이 무서운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