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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저물고 가을이 온 날

by 오맑음


아빠가 떠나고 나는 몇 번의 연애를 했다. 그다지 좋은 기억은 아니지만 사람과의 관계를 많이 무서워하지 않았다. 동생까지 나를 떠나고나자 나는 빈자리가 만들어 내는 블랙홀이 무서워졌다. 소중한 사람들은 내 곁에 충분히 있었다. 나는 더이상의 상실의 아픔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물에서 그 사람을 만났다.노을이 예쁘게 지는 날이었다. 낮게 깔리던 햇살이 넘실거리는 물을 따라 같이 춤을 췄다.그때였다. 내가 그에게서 ‘바다’를 본 날이. 햇살이 비친 그의 눈동자엔 은하수가 흘렀다. 별이 파도처럼 넘실거리다가 내 눈과 마주쳤을 때 그가 이유 없이 씩웃었다. 그 순간에 우습게도 나는 그에게서 ‘쉴 곳’을 찾았다. 어둠이 깔리고 도시가 빛으로 깨어나는 시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위 여기저기에서 그가 반짝이기 시작했다. 모르는 척 했지만 결국 그가 내 마음에 들어왔다는 걸 나도 알게 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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