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이야기
다시 돌아 봐도 2017년은 정말 정신 없는 한 해였다. 늦여름에는 외숙모가, 가을이 오던 초입에는 내 동생이 그리고 겨울이 오기 전 늦가을에는 작은 아빠가 돌아가셨다. 한 두달 차이로 세명의 가족이 세상을 떠났다. 둘은 자의로. 작은 아빠는 가족력인 위암으로. 작은 아빠는 위암으로 몇년을 앓다 가셨다. 장례식장은 대구였다. 엄마와 나는 큰엄마의 연락을 받고 서울에서 바로 대구로 달려갔다. 아무리 빨리 도착한다고 해도 저녁이나 되어서야 대구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분위기는 처연했다. 다들 할머니 걱정 뿐이었다. 내 아빠가 먼저 떠난 뒤 많이 슬퍼하시다가 건강을 많이 해치셨다. 아들 하나가 또 어미보다 세상을 먼저 떠난 일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모두가 걱정이었다. 큰아빠가 작은 엄마 가족들과 함께 할머니 집을 찾았다. 뒤이어 고모가 할머니댁으로 들어갔다. 할머니는 많이 슬퍼하셨지만 내 아빠의 장례식 때보다는 초연해 보이셨다고 했다. 슬퍼했지만 와병 사실을 알았기에 마음의 준비를 조금은 했었던 것 같다.
그보다 먼저 벌어졌던 동생이 떠난 사실은 할머니에게 아직 알리지 못했다. 할머니에게 유독 아픈 손가락이었던 내 아빠의 죽음에 이어 그 아들의 죽음까지 알릴 수 없었다. 할머니는 아마 감당할 수 없으셨을 것이다. 내 아빠는 작은집에 양자를 보냈던 아들이었다. 좋고 싫은 것을 딱히 입 밖에 내지 않던 할머니였지만 아들을 뺏기는 일에는 큰 소리를 내어 반대하셨다. 그럼에도 집안 남자들의 결정으로 내 아빠는 작은 집 아들로 갔다. 단순히 호적이 바뀌는 일이었지만 옛날 사람이던 할머니는 그 일로 평생 마음 아파하셨다. 아빠가 죽기 얼마 전에야 작은 할머니가 기초 생활 보호자가 되려고 파양을 하자고 했다. 할머니는 그 길로 작은 할머니에게 달려가서 호통을 쳤다. 생떼같은 자식 데려가더니 이렇게 상처를 주고 버리냐고 난리를 치셨다. 인자한 할머니만 알던 내게는 약간의 충격적인 사건으로 남았다.
작은 아빠의 장례식 얼마 후, 나는 할머니를 보러 혼자 길을 나섰다. 워낙에 산골이라 운전 면허도 없는 내가 혼자서 찾아가려니 하루 반나절이 걸렸다. 어둑어둑해져서야 할머니집이 보이는 언덕빼기에 도착했다. 저 멀리 할머니가 나와서 기다리고 계셨다. 손녀 딸이 온다고 했더니 하루 종일밖에 나와서 언제오나 하염없이 기다리셨다 보다. 나를 보자 손을 부여잡고 '우리 강아지 왔나 왔나'하시더니 '배 고프지'하고 밥을 주신다. 돌쇠도 울고 갈 정도로 높은 고봉밥을 주신다. '시골이라 슈퍼가 없어서 먹을 게 없다. 큰 아빠가 올 때 사서 온 괴기가 있는데 우리 강아지가 괴기를 좋아하는데' 하면서 자꾸 뭔가를 꺼내신다. 결국엔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음식이 가득 쌓였다. 나는 가능한 최선을 다해서 밥을 먹는다. 그런 내 갸륵한 노력과는 상관없이 할머니는 자꾸 왜 시집을 안 가냐고 성화시다. '이 키에 이 인물에 왜 시집을 못 가냐'고 구박을 하신다. 내 키는 평균보다 조금 작고 내 인물은 평범하기 그지 없다는 사실을 시골에 사셔서 잘 모르시는 모양이다.
결국엔 동생 이야기가 나왔다. '택이는 잘 지내냐?' 할머니 물음에 잠깐 울컥했다가 짐짓 활기차게 '그럼요, 걔는 뭐 거기가 너무 좋아서 거기서 살거래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그래, 우리 강아지들이 잘 살면 어데든 어떻노' 하신다. 그리고는 밥상을 치우신다고 상을 들고 나가신다. 내가 하겠노라 해보지만 한사코 본인이 해야 마음이 편하다고 고집을 부리신다. 나는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이불을 덮고 귤을 까먹는다. 할머니는 설거지를 부시고 나서 방에 들어와서 왜 이렇게 귤을 조금만 먹었냐고 또 뭐라고 하신다. 나는 배 불러서 못 먹겠다고 할머니 무릎을 베고 덜렁 누웠다. 할머니는 내가 어릴 때처럼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준다. 아빠 어릴 때 이야기를 한다. '느 아바이가 어릴 때 학교에 돈을 내야되는데 그거를 일찍 말을 안하고 학교 갈 때가 다 돼 가지고 달라고 서 있는거야. 근데 돈이 있나. 빨리 얘기를 하면 빌려가지고라도 줄건데 그 날 아침에 말 하면 어디 그거를 빌릴 데가 있어야제. 근데 느 아바이가 안 가고 거기 서 있는거야. 내가 화가 부룩 나가지고 싸리 빗자루로 느 아바이를 때렸다. 그래도 안 가길래. 옆 집 할머니한테 가서 빌렸제. 그제서야 느릿 느릿 가는기라. 그러고 저 고개를 넘어가는 뒷 모습이 보이는데 내가 그 때 엄청시리 울었다. 내가 못 난거를 아를 때렸네 싶어가지고.'
할머니는 이야기가 끝날 줄 모르고 길어진다. 내가 잠이 든 척을 해도 한참이 지나서까지 할머니는 계속 옛날 이야기를 한다. '느가 어릴 때....' '느 아바이가 어릴 때...' 나는 자는 척하면서 그 이야기를 잘도 주워 들었다. 할머니는 아들을 둘이나 먼저 보내고 추억 속을 여행하며 살고 있다. 즐거운 추억이면 좋을 텐데 잘해주지 못 해서 안타깝고 슬펐던 것만 꺼내서 들여다 보고 있다. 도시보다 밤이 더 긴 산골 마을에서 할머니는 전보다 더 깊어진 주름에 그 추억들을 켜켜히 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