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의 태몽 이야기
첫새벽 [명사] 날이 새기 시작하는 새벽
그 아이가 별이 되고 밤이 내려앉았다. 나는 무거운 밤을 끌어 올리려 노력했다. 멀어지듯 희미해지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밤을 몸으로 이기며그 안의 그가 또렷해지다가 다시 희미해지기를 반복한다. 결국 어둠 너머로 여명이 밝아오는 것을 보다가 나는 문득 서러워졌다. 어둠이 자리에서 밀려나면 그 애도 영영 사라질 것을 알기에...
동생이 떠나고 나는 이런 꿈을 자주 꿨다. 별처럼 반짝이다가 해가 뜰 때면 빛이 사라지는 꿈이었다. 이런 꿈을 꿀 때면 나는 빛 쪽으로 끊임 없이 달려가면서 빛에다 대고 물었다. "왜 그랬어! 왜 그랬어?" 그런 선택을 한 그를 탓하다가도 이유를 알고 싶어 다그치며 빛을 쫓았다. 아마도 나 때문이 아니었다는 말이 듣고 싶었던 것 같다. 꿈에라도 나타나 ‘누나 때문이 아니라고’ 말해주었으면 했다. 내가 알지 못했던 그의 깊은 슬픔이 그의 목을 조르기 전에, 그의 한숨이 삶을 뿌옇게 흐리기 전에 그것도 아니면 그 모진 마음이 그를 세상 끝으로 데려가기 전에 변해가는 그를 알아채지 못한 나 때문은 아니었다는 말을 그 아이 입으로 듣고 싶었다. 그렇게 열심히 쫓아서 뛰다가 꿈에서 깨면 자리에 앉아 내 목숨은 빚진 목숨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애가 아니었으면 내가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햇살 아래를 걸어도 그늘 속에 있었을 그 애를 생각한다. 애초에 나는 내게 주어진 것을 그와 나누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샘이 많았다. 나눠가져야 하는 것이 분명한 것도 나 혼자 독차지하고 싶어했다. 심지어는 내 것이 아닌 것도 내 것으로 빼앗아 오고 싶어 했다. 윤옥씨는 태몽을 묻는 내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동생의 태몽이 아주 멋지다고 자랑을 했다. 나는 그 태몽이 탐이 났다. 그것마저도 내 것이었으면 했다. 윤옥씨는 어린 나를 키울 때 너무 이르게 찾아 온 생명을 먼저 보냈다고 했다. 동생은 그 후에 찾아 온 두번째 생명이었다. 윤옥씨는 몸이 좋지 않았다. 너무 작고 연약해서 아이를 낳을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렇게 고민이 깊어 가던 어느 날 윤옥씨는 꿈을 꿨다. 꿈에 어떤 아이가 나와서 윤옥씨 손을 잡고 말했다. '우리 행복한 나라로 가요'라고. 잠에서 깬 윤옥씨는 옆에서 자고 있던 내 아빠를 흔들어 깨워 꿈 이야기를 하며 아이를 낳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났다. 그 아이는 우리를 '행복한 나라'로 데려다 줄 아이였다.
아이는 그 이야기를 줄곧 들으면서 자랐다. 아이에게는 그것이 축복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지금에서야 한다. 태어나기 전부터 망설인 생명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런 꿈을 윤옥씨가 꾸지 않았다면 자신이 세상에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랐을지도 모른다. 혹은 자신은 처음부터 거절 당한 생명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섬세한 아이였다. 그래서 그런 부분에서 상처를 안고 컸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것도 내 넘겨 짚기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유를 모르는 남은 자들은 늘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한다. 아무리 불러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지만 태몽처럼 그 아이 혼자라도 '행복한 나라'로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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