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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을 한낮의 전화 한 통

동생의 죽음

by 오맑음

여름이 조금씩 꼬리를 내리고 가을이 슬며시 찬기를 뿜어내던 즈음이었다. 나는 여느 날처럼 이른 시간에 하루를 시작했다. 간단히 세수를 하고 책상에 앉았다. 법원 행시 2차 시험이 한달 정도 남아 있어 마음이 바빴다. 윤옥씨가 방으로 가져다 준 토스트를 먹으며 채권자 취소권 문제를 풀었다. 2시간 안에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그들이 원하는 답을 써내기 위해서는 같은 문제를 여러 번 풀어야 했다. 민법은 특히 싫어하는 과목이라 그날 오전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윤옥씨는 장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윤옥씨는 내가 8살이 되던 해 부터 학교 앞에서 작은 문방구 겸 분식집을 했다. 학생 수가 줄어 들면서 문방구는 거의 폐점 상태였다. 유학까지 보냈는데 돌아와서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실질적으로 백수인 딸을 대신해 떡볶이와 김말이 튀김 같은 것을 팔아서 두 모녀가 먹고 살았다. 그 날도 평소처럼 윤옥씨는 떡을 떼어 빨간 양념을 풀어 놓은 물에 넣었다. 튀김 솥에서는 기름이 끓어 올랐다. "밥 먹어라." 윤옥씨의 전화에 점심 먹을 시간임을 알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그날 처음으로 해를 보았다. 하늘이 맑고 높았다. 살랑이는 바람에 약간의 찬기가 느껴졌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여름이 다 지났구나 생각했다. 숨을 한번 크게 들이 쉰다. 막연한 걱정이 들이찬다. '아... 이번 시험도 또 떨어지면 어쩌지.' 연약한 믿음을 붙잡아 본다. '아니야, 시간이 좀 있으니까 더 열심히 하자.' 다시 한 숨을 크게 내쉬고 윤옥씨 가게로 간다. 문방구 한편에 있는 간이 탁자에 밥이 차려져 있다. 흰밥에 된장찌개 그리고 양배추 쌈이 있다. 조촐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메뉴이자 윤옥씨가 누구에게나 자랑하는 요리였다. 밥을 두 세입 정도 먹었을 때였다. 탁자 한켠에 놓아둔 윤옥씨의 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택이 회사'. 동생은 물류 회사를 다녔는데 중국에 파견을 가 있었다. 안 그래도 아빠가 돌아가신 후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영 알 수 없을 정도로 말수가 적어지고 가족과 내외했는데 멀리 떠나 버리고 나서는 거의 연락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왔다. 평일, 그것도 이런 시간에 동생 회사에서 왜 전화가 왔을까. 나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아무렇지 않게 윤옥씨에게 폰을 건넸다. 윤옥씨는 명랑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이내 윤옥씨가 '뭐라구요? 우리 택이가 왜요?'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면서 다리를 버둥거렸다. "우리 아들 살려내. 우리 아들 살려내" 윤옥씨는 한참이나 바닥에 앉아서 엉엉 울며 땅을 치기도 하다가 다시 다리를 버둥거리며 뒤로 드러눕기도 했다. 행동이 재빠른 남자 아이들 몇 명이 벌써 하교 길에 올라서 가게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윤옥씨는 진정되지 않는 마음을 애써 누르며 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빠르게 가게를 정리했다. 떡볶이 판은 어쩌지 못해 그냥 두고 튀김을 일회용 비닐에 넣어 냉동실에 넣었다. 가게 문을 재빠르게 닫고 방으로 들어갔다. 윤옥씨는 10년 전 내 아빠의 장례식장으로 돌아간 듯 보였다.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었다. 나는 밖으로 나와 도움을 줄 만한 사람들을 떠올려 보았다. 바들 바들 떨리는 목소리를 최대한 진정시키고 간결하게 사실만 전달했다. "택이 회사에서 전화가 왔는데 택이가 죽었대요. 자살인 것 같대요."


그 후로도 몇 번의 통화를 더 하고야 사건의 전달이 끝이 났다. 나는 햇빛을 막으려고 쳐 놓은 어닝 아래 그늘에 서서 찬기만 남은 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계속해서 바들바들 떨었다. 어디 또 전해야 하는 곳이 없나 떠올리려고 애를 쓰면서 계속해서 바람을 맞았다. 그러다가 혼자 떨고 있을 윤옥씨 생각에 얼른 방으로 들어갔다. 울고 있는 윤옥씨를 안고서야 겨우 내 떨림은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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