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숙모의 장례식
윤옥씨의 일과가 끝나가는 시간 쯤이었다. 늦여름이라 아직은 해가 길었다. 한 낮같은 햇빛을 맞으며 윤옥씨는 가게를 정리하고 있었다. 전화가 걸려왔다. 내 막내 외삼촌이었다. 아이들을 맡겨 놓고도 좀처럼 전화하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그 전화가 더 생경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수화기 너머로 살짜기 들리는 외삼촌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누나, 애들 엄마가 죽었어. 일 끝나고 집에 오니깐 그렇게 돼 있었어..." 폰을 들고 있는 윤옥씨의 손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그럼에도 윤옥씨는 최대한 차분하게 말을 하려고 했다. "어떻게 된 거야. 애들 엄마가 왜 죽어?" 그냥 죽어 있다는 말을 반복하는 외삼촌을 진정시키고 윤옥씨는 여동생들과 오빠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윤옥씨는 아이들 짐을 쌌다. '애들도 있는데... 아이고... 애들은 어쩌라고... 아이고... 어떻게 그렇게 모질게 갈 수가 있어... 아이고...'하는 소리가 끝없이 들렸다. 늦여름의 오후가 빠르게 기울어 가고 있었다.
아이들은 학원에서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아이들도 느끼고 있었다. 짐을 챙겨 들고 아이들을 챙겨 윤옥씨는 버스를 타러 갔다. 막내는 아무 것도 모르고 집에 간다고 신이 났다. 곧이어 아이들에게 닥칠 겪어 보지 못한 상황들과 그로 인해 느낄 슬픔이 내게도 몰려오는 듯 했다. 어른이 되어서야 겪었던 내 첫 장례식도 버거웠는데 이 아이들이 어떻게 제 엄마의 장례식을 버텨낼지 몰라 안쓰러웠다. 부디 씩씩하게 이겨냈으면 했다. 그 마음을 담아 아이들을 꽈악 안아 주었다. 나는 집을 지키게 되었다. 텅 빈 집이 허했다. 얼마나 힘들어야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모성애란 어쩌면 꾸며진 신화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단순히 사람마다 차이가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죽음을 생각할 만큼 견디기 힘들었던 삶을 스스로 끊었다면 그것에 대해 타인이 감히 옳다 그르다 평가해도 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스스로 목숨을 놓는 일은 비행기가 터뷸런스로 흔들리기만 해도 백짓장이 되는 나로써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용기가 필요한 일일 것이다. 혹은 살아갈 용기를 내는 것 조차도 염증이 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행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막내 외삼촌의 얼굴도 가물가물 기억이 나지 않아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우리는 왕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외숙모와 같이 외삼촌이 아이들을 데리고 우리 집에 쳐들어 왔다. 돈 때문에 윤옥씨가 참 많이 울며 기도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집에 초등학생 둘이, 그것도 아들이 둘이 생겼다. 일의 전말은 이랬다. 외삼촌의 사업이 잘 되던 때에 외삼촌은 건물을 사고 싶었다. 건물을 알아보다가 사기를 당했다. 그리고 급격하게 사업이 기울었다. 아이들을 우리 집에 맡길 즈음에는 다시 일어서 보려고 사업자를 외숙모 앞으로 바꾸고 빚을 갚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린 두 아들의 양육이 어려워져 우리집에서 아이를 잠시만 맡기게 되었다. 거절할 사이도 없이 나는 거의 스무살이나 어린 동생들이 생겼다. 갑자기 처음 보는 사람들 집에 맡겨진 아이들은 슬퍼할 겨를도 없이 새 집과 새 가족에 적응해 갔다. 새 학교에 등교했고 새 친구들을 사겼다. 많은 것들이 무섭고 두려웠겠지만 그래도 잘 적응해 나가는 것 같았다. 가족이라는 것이 메리트가 있다. 남이었다면 그러지 못 했을 것이다. 낯설기만 하더니 예쁘게 보려고 보니 많은 부분이 예뻐 보였다. 함께 먹은 식사의 횟수만큼 정이 쌓여 갔다. 그렇게 외삼촌 부부의 사업도 아이들도 좋아지는 것 같았다.
그것도 잠시였고 빚쟁이들의 채근에 외숙모는 죽음을 선택을 했다. 빼곡하게 적어 놓은 외숙모의 유언이 그의 폰에 수신자가 있는 보내지 못한 메세지들로 남아 있었다. 얼마 전에 엄마와 시간을 보내고 온 막내는 엄마의 장례식에 도착해서 엉엉 떼를 쓰며 울었다고 했다. 한참을 울더니 그제야 그치고 의젓하게 빈소를 지켰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엄마의 사인을 밝히지 않았지만 입이 많은 곳에서 비밀은 없었다. 아이들은 엄마의 죽음이 스스로에 의한 것임을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어떤 기분이었을까. 버려졌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했다. 장례식은 정신없이 지나갔고 아이들은 집에 돌아왔다. 그 즈음 윤옥씨도 아들에게 안부 전화를 받았다. 소식을 전하는 중에 그 일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