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엑셀 인간 01화

VLOOKUP

내가 찾는 것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나

by 현진형

VLOOKUP = 테이블이나 범위에서 행별로 항목을 찾아야 할 때 사용


사무직. 하루종일 사무실에 앉아서 오피스 프로그램을 다뤄야 하는 사람들. 공기업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기업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를 사용한다. 그 중에서도 매출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영업·마케팅 직군의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엑셀. 엑셀 함수중에서도 VLOOKUP은 독보적인 입지를 자랑한다. VLOOKUP을 알아야만 직장인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고, VLOOKUP을 모른다면 아직 제대로 엑셀을 시작한 것이 아니다.


대학생 시절에는 워드로 리포트를 쓰는 일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엑셀을 알게된 건 입사 이후다. '93년 엑스포 시절에 수학여행으로 딱 한 번 가 본 도시. 대전으로 발령받아 처음 가 본 사무실에서 처음 보는 선배에게 처음으로 배운 직장인 스킬. VLOOKUP.


선배는 나에게 VLOOKUP은 엑셀의 시작이며 끝이라고 했다. 이 스킬을 습득하면 왠만한 오더는 다 쳐낼 수 있다고 했다. 그랬다. VLOOKUP은 마법이었다. 멀리 있는 값을 가까이 데리고 와줬고, 보이지 않는 값을 보이게 해줬다. 찾고자 하는 영역과 찾아와야 하는 영역에서 공통된 키 값을 지정하고, 지정된 거리만큼 떨어진 곳에 있는 값을 찾는 함수.


입사 초기의 나는 지금과 다르게 열정이 가득했었다. 무엇이든 배우고 싶어했고, 배운 건 바로 사용하고, 심지어 남보다 좀 더 잘 한다는 소리를 들으려 애를 썼다. 내가 찾고자 하는 것들은 엑셀 속에 가득했고, 그 속에서 숫자들을 길어올려 현실로 데리고 와야했다. 미국으로 유학가기 위해 영어를 배우듯이 엑셀을 배우기 시작했다. 얼마나 멀리 있을지 알 수 없는 성공이란 것을 잡기 위해 허우적댔다. 엑셀 삽질이 시작된 건 그 때 부터였다.


Dreams come true.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S.E.S 노래처럼 쉽게 되진 않더라. 입사 후 거짓말 많이 보태서 VLOOKUP 함수를 백만 번은 쓴 것 같은데 아직도 꿈은 현실이 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애초에 꿈이란, 성공이란 무엇이었나 라는 철학적인 질문으로 다시 돌아왔을 뿐이다. 어려운 업무들을 하나씩 깨부수다 보면 최종 보스를 멋지게 무찌르고 승리의 브이를 그릴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반복된 엑셀 작업에 시력만 나빠지고 손목과 손가락만 시큰거리는 늙은 직장인이 되었다.


후회는 없다. 주역의 건괘에서는 '항룡유회'라고 하더라. 비룡을 넘어서 하늘 끝까지 올라가는 항룡은 되어야 후회가 있다고 하니 나는 아직 후회할 시기는 못 된다. 사실 세상을 살아감에 끝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찾는 것을 찾았다고 해도 두번째 산을 찾는 것처럼 새로운 목표를 세우는 게 인간이다. 아직 첫 번째 산도 못 찾은 것 같고 인생에서 VLOOKUP을 얼마나 잘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왠지 이 기술은 평생 써야할 것 같다. 내가 찾는 무언가가 있는 그 곳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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