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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이 점점 많아진다

갈 길을 잃었다

by 현진형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반박불가의 진리다. 대학생 시절 팀플 과제나 회사 들어와서 유관부서 협업 또는 T/F를 몇 번 해보면 이 말의 무게감에 새삼 놀라게 된다. 단순 명쾌한 진리. 다 맞는 말. 그래서 이 말이 주는 교훈은 배에는 제대로 된 선장이 있어야 된다는 건데 사람들은 속담은 받아들이고 교훈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한국 사회와 한국의 조직에는 사공만 많고 제대로 된 선장은 없다.


왼편의 사공, 오른편의 사공, 앞쪽의 사공, 뒤쪽의 사공 모두 역할이 다르다. 그 역할을 수행하는 개개인의 성격도 피지컬도 다르다. 누군가는 성격이 급해서 1초를 0.8초처럼 세는 사람이 있고, 누구는 느긋해서 1초를 1.5초처럼 셀 수도 있다. 누군가는 헬창이라서 5kg 노를 1초에 한 번씩 저을 수 있지만, 멸치인 누군가는 2초에 한 번밖에 저을 수 없어서 효율이 반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이 모든 차이점을 극복하고 목표를 향해 일직선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선장이 필요하다. 하나 둘, 하나 둘, 구령을 붙여주고 방향을 지시해 주고, 페이스 조절을 하다가 막판 스퍼트를 내야 할 타이밍을 알려주고, 기운이 빠질 때 소리 질러 사기를 올려줄 그런 선장. 그런 선장이 필요하다.


어느 틈엔가 선장은 사라지고 사공만 많아졌다. 사공은 자기 앞의 물살만 바라본다. 자기가 들고 있는 노만 중요하다. 시야가 좁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그것이 배가 목표를 향해 바르게 가는데 기여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걸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선장인데 사라졌다. 노잡이들이 모두 소리친다.


- 난 10초에 10번 저었는데요.

- 난 10초에 5번 저었지만 2시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았어요.

- 난 10초에 8번 저을 수 있었는데 느리게 젓는 옆 사람 때문에 부딪혀서 7번밖에 못 했어요. 저 사람 때문이에요.


모두 다 열심히 했고, 모두가 최선을 다했다고 소리친다. 들어보면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조직과 사회는 개개인의 뛰어난 플레이로 돌아가지 않는다. (물론 당신이 초 울트라 슈퍼 메가톤급 천재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아인슈타인처럼) 팀플레이는 조율자가 필요하다. 선장이 필요하다.


도대체 이 사회와 조직의 선장들은 다 어디로 갔나.


사공은 선장이 하는 걸 보면서 배운다. 혹은 선장이 후계자를 점찍어서 노하우를 알려줄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몇 십 년간 선장들은 자리를 포기하지 않았다. 백세시대를 맞아 중년에도 거뜬한 체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점점 늘어나는 사공들은 선장이 굳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되게 만들었다. 그들은 이 좋은 자리를 넘겨주기 싫었다. 하지만 선장이 되고 싶은 사공들이 있었기에 불만은 잠재워야 했다. 선장은 아니지만 선장 비슷한 걸 만들었다. 부선장, 차선장, 이사선장, 전무선장, 상무선장. 감투를 얻은 사공들은 선장이 아니지만 선장처럼 행세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사공들은 둘로 나뉘었다. 감투를 얻고 선장이 되려고 하는 자와 끝없이 노만 저어야 하는 사람들. 감투를 얻은 자들이 늘어나자 내분이 일어났다.


독재자가 자신이 위치를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분을 일으키는 것이다. 하부 조직에 경쟁을 부추기고 분열을 조장한다. 그러면 자라나던 어린 사자은 자기들끼리 다투다 상처받고 지치고 쓰러져서 저절로 잘려나간다. 그렇게 선장은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했다. 아무리 많은 사공이 몰려와도 자리를 물려주지 않았다. 이보다 더 편한 자리는 없었다.


그렇게 선장은 자신이 하던 일을 잊었고, 사공은 선장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잊었다. 가르치는 사람도 없고 배울 수 있는 지식도 남아있지 않다. 그렇게 우리 사회와 조직에서 선장은 사라지고, 선장의 역할도 사라졌다.


삼국지의 초반부가 생각난다. 난세다. 난세의 간웅이든, 영웅이든 필요하다. 난세를 극복할 지혜가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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