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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주고 싶은 스토리 푸드 레시피

Ep11. 비빔밥

by Eunjung Kim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꼭 한 번은 듣게 되는 질문이 있단다.

"고향이 어디세요?"

보통은 호감 있는 상대방과 공통분모를 찾고 싶은 가장 쉬운 질문이기도, 가끔은 할 말이 없어서 그냥 물어보는 흔한 질문이기도 하지.

엄마의 경우 고향을 이야기하면 백이면 백, 다시 돌아오는 또 다른 질문.

"와, 전주는 비빔밥이죠. 그럼 비빔밥 많이 먹겠네요?"

어디 시트콤에서 나올 법한 이야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전주=비빔밥이라는 판에 박힌 인식 때문에 당황했던 적이 많았단다. 물론 지금은 비빔밥 말고도 내 고향 '전주'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도 많으니 다행이지 말이야.

그런데 20대 초반만 해도 엄마는 '전주 사람들은 비빔밥 많이 안 먹어요.'라고 대답했었어. 사실 집에서 냉장고에 있는 나물 반찬 털어 양푼에 비벼 먹는 비빔밥이 맛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너무 맛있어서 먹는 건 아니라는 걸 퉁명스럽게 말하고 싶었던 거 같아. 덧붙여서 '그걸 왜 돈 주고 사 먹어?'라는 말과 함께.

그런데 엄마가 대학교 2학년 때쯤이었나? 지도 교수님께서 꽤 멋진 한정식 식당에서 밥을 사주셨는데, 글쎄 거기가 궁중비빔밥 전문점이라는 거야.(20여 년 만에 처음 알았네)

이렇게 비싼데 그만큼 맛있을까라는 의문도 잠시. 반짝이는 놋그릇에 담겨 나온 알록달록 오색나물 위에 소복이 앉은 빨간 육회는(식전에 타락죽이나 호박죽이 나오고 정갈한 밑반찬도 구첩 정도 나오는 전주 한정식 클라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지. 아, 이게 양반들이 먹는 진짜 비빔밥이구나라는 말을 속으로 삼키며 어떻게 비벼야 할까 고민을 했단다. 집에서 먹는 양푼 비빔밥은 늘 비벼져 나왔고, 학교 앞 식당에서 먹는 참치 비빔밥과는 다른 고급 상차림 앞에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던 것 같아. 정갈하게 잘 배열(?)된 이 조합을 깨버리기 아깝기도 했고(그러나 먹어야지). 옆에 경험 많은 선배님들 따라서 젓가락 두 개로 나물들을 슥슥 섞어준 다음, 숟가락으로 밥과 양념이 고루 잘 섞이게 배합해준 뒤, 한 숟가락 크게 떠서 먹었는데, 이야~! 왜 돈 주고 비빔밥을 사 먹는지 알겠더라니까. 그동안 사람들이 물어보던 비빔밥이 바로 이거구나라는 깨달음이 있은 뒤로는 절대 비빔밥을 우습게 보지도, 전주=비빔밥이라는 사실에 토 달지 않기로 했단다.

아무튼 그렇게 새롭게 각인된 비빔밥의 이미지 덕분에, 집에서 먹는 비빔밥에도 더 신경을 쓰게 되었어. 냉장고에 남아있는 밑반찬 처리용 비빔밥이 아니라, 새로 나물을 무치고, 야채를 볶는 수고와 정성을 거친 신선한 비빔밥에 대한 로망이 생겼다고 할까. (경제가 어려운 때에) 소고기 육회 대신 다진 소고기를 넣어 볶음 고추장을 만들어 부족한 영양소를 보충하고 오색 나물 예쁘게 담아서 먹기 직전에 비벼먹는 비빔밥.

조금 수고로울 수는 있지만 보면서 즐겁고 비비면서 즐겁고 먹으면서 다양한 맛에 또 즐거운 비빔밥, 이제 만들어 볼까?


• 요리 순서
1. 간 고기에 맛술, 후추, 소금으로 밑간을 한다.
2.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밑간을 한 고기를 볶다가 양념을 넣고 센 불에서 타지 않게 볶아준다. 중불로 바꾸어 양념을 졸이듯 5분 정도 볶고 불을 끈다.
3. 야채를 깨끗이 씻어 물기를 빼주고 건표고버섯은 전날 물에 불려놓는다.
4. 전날 건고사리를 냄비에 10분 정도 삶아준 뒤 그대로 5시간 정도 불려준다. 물에 헹군 뒤 물기를 빼주고 한 입 크기로 잘라준다.
5. 팬에 기름을 두르고 센 불에서 고사리를 볶다가 다진 마늘, 소금, 들깨가루를 넣고 중불에서 5분 정도 볶다가 불을 끄고 참기름을 넣어준다.
6. 팬에 기름을 두르고 당근, 애호박, 버섯을 각각 볶아주고 소금으로 간을 한다.
7. 콩나물은 깨끗이 씻어 팬에 넣은 뒤, 다진 마늘을 넣고 뚜껑을 덮고, 물 없이(콩나물에서 물이 나옴) 삶아준 다음 소금, 참기름을 넣고 무친다.
8. 시금치는 삶아서 차가운 물에 10분 정도 담갔다가 물기를 짜낸 뒤 소금, 참기름을 넣고 무친다.
9. 채 썬 무를 팬에 넣고 물 3 큰술을 넣고 자작하게 볶다가 물이 졸아들면 소금 간을 하고 참기름을 넣는다.
10. 팬에 기름을 두르고 달걀 프라이를 소금 간 없이 바삭하게 굽는다.
11. 넓은 볼에 갓 지은 밥을 담고 나물들을 올린 다음, 볶은 소고기고추장을 올린 다음 참기름 한 두 방울 두르고, 마직에 달걀 프라이를 얹는다.



달걀 프라이 올리긴 전, 각자 취향껏 담고 싶은 나물을 가감하기.

Ps1. 여름에는 볶은 소고기 고추장 대신 황태 초무침을 올려도 좋아. 황태 초무침 레시피는 다음에!

Ps2. 계절에 따라 나물의 종류는 다양하게 바뀔 수 있지. 여름에는 무나물 대신 무생채, 시금치 대신 참나물, 애호박 대신 오이로. 이렇게 좋아하는 나물들로 바꿔가면 맛있는 비빔밥의 매력에 빠져보길.




자꾸 업데이트가 늦어집니다.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을 확보해야하는데 여의치가 않네요. 그래도 기다려주시고 읽어주시는 작가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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