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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ung Kim Mar 07. 2017

무라카미 하루키의 메타포

 말로 대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은유의 힘

만약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승리의 희망이 있다면, 자기 자신과 타자의 목숨에 깃은 완전한 대체 불가능성에 대한 믿음, 생명과 생명을 이어 줄 때 느끼는 따뜻함에 대한 믿음을 통해 찾아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무리카미 하루키의 예루살렘상 수상 연설 중-


하루키는 예루살렘 상(예루살렘 국제 도서전에서 수여하는 문학상)을 받는 자리에서, 이 상을 수여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경의를 표함과 동시에,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문제를 조심스럽게-하지만 분명한 자신의 소신을 담아- 다루며 소감문을 발표했다.


하루키는 이 난감한 상황을 벽과 알이라는 비유를 들어 표현했다. 

; 여기서 비유(메타포)는 하루키 문학의 꽃이자-독자에게는 난관이며- 동시에 그가 어떤 글을 쓰는 사람인지 알 수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두텁고 높은 벽과 거기에 부딪쳐서 깨지는 알 중 알을 선택할 것입니다. 벽이 아무리 올바르다고 해도, 알이 아무리 잘못되었다 해도, 나는 알 편입니다.


 하루키의 메타포를 통한 해석으로 보면, 영토를 빼앗긴 뒤 폭력에 의존해온 알과, 장벽을 세우고 상대를 끊임없이 도발해온 거대한 벽과의 끝없는 분쟁을 시사하고 있다. 돌려 말했지만 종교적 신념으로 시작된 오랜 갈등관계의 현장에서 전해진 하루키의 말은 꽤 큰 파장을 일으켰을 것 같다.


약한 것이 옳은 것이기 때문이 아니다.


의도가 선하기 때문에 항상 옳다거나, 연약하기 때문에 보호받아야 마땅하다는 상식과는 조금 다른 표현이다. 누구에게나 어쩔 수 없는 연약함이 있기 때문에, 모두가 대체 불가능한 생명이기 때문에 그 연약함 편에 서겠다고 한다.






메타포는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하루키는 벽을 시스템으로 보았다.

그것이 국가일 수도 있지만, 사회와 국가를 움직이는 이념이나 사상 등의 개념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는 이 시스템이 안전, 평화, 안식을 줄 수도 있지만, 때로는 개개인이 스스로 사고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하고, 타인에 대해 빠르게 정죄하고, 생명을 빼앗는 것을 전혀 아무렇지 않게 만들게도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루키는 이 시스템이 우리의 생명을 거미줄로 옭아매어 고갈시키지 않도록 저지하기 위해 글을 쓴다고 했다.


메타포는 모든 것을 다 설명하지 않는다.


하루키 소설들을 읽다 보면, 이 시스템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하지도, 인간의 연약함을 생생히 드러내되 그것의 옳고 그름의 대해 판단하지도 않는다.

그는 특유의 메타포 기법으로 언어화할 수 없는 것들을 녹여낸다.

그래서 저릿한 울림이 있는 것 같다.

이 울림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완전한 언어로 표현하고, 그것을 옳다고 여기는 시스템으로는 공감할 수 없는 영역이 아닐까 한다.




하루키 문학은 어렵고 메타포로 가득해서 함부로 넘겨짚을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심각하게 의미를 파헤치는 쓸데없는 노력 따위는 하지 않게 된다.


단지, 내가 감히 누구를, 무엇을 판단할까 생각할 뿐.

조금의 시간을 가지고 겸손해지는 여유가 생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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