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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Sep 27. 2019

마일리지

[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년 9월 27일 금요일, 70번째


올해 중순부터 생긴 습관이 하나 있습니다. 매일 같이 정해진 시간, 하루가 바뀌는 자정에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하는 겁니다. 그 앱이란 다름 아닌 모 은행에서 운영 중인 멤버십 애플리케이션입니다. 앱에서 제공 중인 출석 체크와 마일리지 적립을 하기 위해서죠. 잠들기 전에 모두 해놓는 게 관례처럼 굳어졌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크게 비용이 들어가지 않지만, 고객을 유치할 수 있는 이 같은 마케팅은 요즈음엔 흔하게 찾아볼 수 있지요. 더욱이 출석했다고 냅다 주는 게 아니고, 룰렛을 돌려서 도박성까지 가미하니 없던 관심도 생길 지경입니다. 혹시나 하는 심정에 해보지만 역시 나일 때가 대다수죠. 그래도 그게 어딥니까.


룰렛의 상품은 현금 가치로 만원에 해당하는 마일리지에서부터, 잔돈으로도 못쓸 5원(...)까지, 편차가 꽤 큽니다. 어쩌다 한 번 만 원이라도 걸리면 얼떨떨합니다. 아니, 이게 진짜 되는 거였구나. 기쁘기도 하지만 솔직히 절대 되지 않을 줄 알았거든요. 저도 지금껏 딱 한 번 만 원을 받아봤습니다. 대부분은 5원이었죠.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이러니까 광고라도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이상하군요. 어디까지나 설명을 위해서니 오해 말아주시길. 광고를 보면 돌릴 수 있는 룰렛도 있지요. 이건 횟수와 시간에 조건이 있습니다. 어차피 스마트폰을 들여다볼 바에야 광고라도 보고 돈을 번다고 여기면 되지만 맘이 영 불편합니다.


내 시간이 지닌 가치라는 게 고작해야 1점이나 5점 안에서 책정되는 수준인가 싶고, 차라리 이럴 시간에 책을 한 자 읽는 게 낫지 않나 싶어서요. 물론 만에 하나라도 5만 점이 나온다면 횡재한 거겠지만, 그럴 일이 흔하게 일어날 리도 없고 설령 일어난다 할지라도 시간 대비 비용으로 친다면 의문이 들 정도지요.


시간은 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시간을 이용해 '금'을 만들어내는 건 별개의 문제죠.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실제로 시간은 '금'으로 환산됩니다. 당장 우리 삶이 펼쳐지는 이 곳, 대한민국만 봐도 그렇습니다. 현재 2019년 기준으로 최저시급이 8,350원입니다.


물론 최저 시급이니 그보다 더 가치 있는 일, 혹은 특수한 경우 훨씬 많은 돈을 받을 겁니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같은 시간이라도 누구의 시간이냐에 따라서 값어치가 달라진다는 건데, 납득할만합니다. 대기업 회장의 시간과 대기업 사원의 시간이 가지는 의미가 같을 수는 없겠죠.


광고를 보고 마일리지를 적립하는 경우도 그다지 값어치가 높게 책정되긴 어려울 겁니다. 실제로 고객이 될 수도 있고 되지 않을 수도 있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너무 많은 비용을 들일 순 없겠죠. 고객을 유치할 수 있는 선에서 최소한도로 제공하는 거겠죠.


하여간 새벽마다 마일리지를 받으려고 기다리는 모습이 마치 파블로프의 개 같다고나 할까. 조건반사처럼 앱을 켜고 있으니 이게 사람인가 싶고 그렇습니다. 처량하다는 느낌보다는, 정신이 들고 보니 나의 의식과 삶을 조종하는 외부적 조건에 경각심이 든달까요.


그렇다고 당장 이걸 때려치우자니 해온 게 아깝고, 계속 한다고 해서 그렇게까지 문제가 될 것 같지도 않고, 뭔가 의아하군요. 반성도 아니고 푸념도 아니고, 번뜩 머리를 스치고 간 글을 남겨봅니다. 이런 마일리지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도 궁금하네요. 대수롭지 않게 여겨도 괜찮은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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