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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Oct 01. 2019

비어 있는 시간의 의미

[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년 10월 1일 화요일, 74번째


요즘 들어 아침 10시 반쯤 하루를 시작합니다. 잠이 드는 건 새벽 2시 남짓한 시간. 직장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호사라고 생각합니다. 하루 종일 뭘 하냐면요. 명상하고 운동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먹고 산책합니다. 적어놓고 보면 엄청 부지런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다지 부지런하지 않다는 게 사실이지만요.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면 의자 등받이를 최대한 기울여 놓고 눕다시피 기대어 앉아 선풍기 바람을 쪼이며 음악을 듣기도 하고 영상을 보고 있을 때가 자주 있습니다. 그 당시만 놓고 보면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지만, 합쳐놓고 보면 상당할 겁니다. 


하루 중 밀도 높은 시간을 보내는 순간은 얼마 되지 않을 거라고 감히 추측해봅니다. 대체 무어가 밀도 높은 삶이냐 말하려면, 밀도부터 재정의를 해야겠지요. 과학에서 밀도는 단위 부피당 질량을 뜻한다고 위키백과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단위도 부피도 질량도 그 의미는 어렴풋이 알겠는데, '단위 부피당 질량'이라고 하니 무슨 뜻인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마법 같은 사태가 벌어지는군요. 의무 교육 과정에서 분명 배웠을 텐데, 정작 사전에서 자세한 뜻을 접하면 전혀 모르겠단 말이죠. 그래서 이미지를 참고해보았습니다.


이런 느낌으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출처는 이미지 하단의 영문 사이트입니다.


이미지로 보았을 때 주어진 공간에 얼마나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지가 밀도의 높고 낮음을 가르는 듯합니다. 보다 수월한 이해를 위해서 위키뿐만이 아니라 다른 곳도 참고해보면 좋겠군요. 과학포털 사이트 사이언스올에서 정의한 밀도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밀도란, 빽빽이 들어선 정도를 뜻하며, 물리에서는 물질이 포함하고 있는 원자나 분자의 조밀한 정도를 뜻한다(이하 생략)

오, 역시나! '빽빽이 들어선 정도'라고 밀도를 이해하니 좀 와 닿습니다. 보다 자세한 설명은 아래의 링크를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https://www.scienceall.com/%EB%B0%80%EB%8F%84-density-%E5%AF%86%E5%BA%A6/)


여하간 삶에 밀도를 들이민다면, 다음과 같겠습니다. 주어진 시간 동안 얼마나 그 일에 몰두하였는가. 설명이 만족스럽진 않군요. 예시를 들어보면 좀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가령 제가 운동을 1시간 동안 했다고 했을 때 낮 12시에 시작해서 낮 1시에 마무리했다면 정말로 1시간 내내 운동을 했을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잠시 물도 마시고, 숨 좀 돌리고 딴짓 좀 하다 보니 1시간이 지났겠죠. 또한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30분 읽는다고 쳐도 30분 내내 책만 부여잡고 있는 게 아니라, 지루해서 시계도 보고 스트레칭도 하고 그랬을 겁니다. 보통 인간은 주어진 시간에 한 가지 일만 하지 못합니다.


그 사실을 몰랐던 어린 시절, 방학 계획표를 짠답시고 물리적으로 수행 불가능한 물건을 내놓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대학에 와서도 비슷한 참사를 맞이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방학 계획표야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보여주기 위한 물건이라지만 대학 시간표는 실생활과 이어지니 비극의 정도를 비교할 수가 없지요.


현실의 헤르미온느라고 불리는 분들. 그분들의 대학생활에 심심한 유감을 보냅니다.

 

지금껏 어떻게든 채워 넣어야만 한다고 배워왔기에 방학 때 시간표를 짜든 여행 계획을 짜든 비어있는 시간을 내버려 두지 못합니다. 영단어라도 암기하고, 문제라도 풀고 책이라도 읽어서 '의미 있는' 시간으로 승화시켜야만 합니다. 무의미하다는 것은 곧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진다는 의미니까요.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도 비슷한 강박이 있었습니다. 쉬는 시간 10분에도 영단어를 외웠고, 계획에 없던 자습시간이 생기면 시간에 따라 뭘 할지 미리 정해놓았지요. 어쩌다 계획을 어기는 날은 어찌나 분하던지. 자신이 쓰레기가 된 것 같았습니다. 아니, 실제로 쓰레기라는 둥 쓸모가 없다는 둥 써뒀더라고요, 글쎄.


그 시절을 보내고 나서, 그 반동으로 아무것도 하기 싫었던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대학교 2학년 1학기부터 약 1년. 저는 낮밤이 바뀐 채로 '해야 한다'는 감각으로부터 도망치듯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없더라고요. 먹어야 하고, 잠도 자야 하고. 게임도 했고요.


요즘 용어로 하면 '번아웃'이 되려나요? 그런 시간을 보내서 인지, 요즘에는 비어있는 시간이 생겨도 그냥 내버려 둡니다. 오히려 비어 있는 시간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깨닫게 되었죠. 반드시 하루의 밀도가 높다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니고, 시간의 100%를 활용하겠다는 건 욕심이라는 걸요.


더더욱, 좀 더. 삶의 의욕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모든 걸 태워버리기도 합니다.


물론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으로 살아낸다면 그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입니다. 당장 저만 하더라도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오죽하면 활력 100%로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할까요. 그러나 하루를 마무리할 즈음에 돌이켜보면 98% 정도 아니 70%일 때가 많았습니다. 그게 최선이었던 거죠.



밀도가 높은 것도 좋지만 너무 빽빽하면 우연히 만나게 되는 사람이나 사건을 받아들이기도 어렵겠죠. 무엇보다 그렇게 밀도를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압력을 스스로에게 가해야 할 겁니다. 모쪼록 하루 중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어 비어 있는 시간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요. 커피 한 잔도 좋고요. 성난 어깨에 힘 좀 빼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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