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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Oct 21. 2019

잠깐이라도 좋으니 멈춰보기

[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년 10월 21일 월요일, 88번째

저녁의 공기는 아침의 공기와 다르다.

오늘은 4일 만에 운동을 다녀왔습니다. 매일 나가다가 한 번 안 나갔더니 왜 이리 나가기가 싫은지. 그래도 흐름을 바꿀 겸 어떻게든 나갔습니다. 평상시에는 오전 11시 40분쯤 집을 나서는데 오늘은 저녁 6시 40분쯤 나서서 7시에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끝나고 보니 저녁 8시. 주변은 이미 어둑어둑해져 있습니다.


운동을 하고 나왔을 뿐인데, 벌써 하루가 끝났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더군요. 오전에 운동을 갔더라면 우선 점심을 먹고 여유롭게 남은 시간을 무엇을 하며 보낼지 고민했을 텐데 말이지요. 아침과 저녁, 시간만 달라졌을 뿐인데 느낌도 다릅니다. 낮과는 다르게 운동 후의 들뜨는 기분은 전연 없고 외려 차분해집니다.


그러고 보면 시간에 따라 공간의 분위기도 달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같은 곳도 낮에는 활기가 넘치고 주변 사람의 표정이 밝게 보입니다. 아직 하루가 이만큼 남았어! 뭘 해도 좋아! 괜히 더 긍정적으로 느껴집니다. 해가 지면서 저녁이 되면 차차 센티해지다가, 이윽고 밤이 되면 감정도 더더욱 가라앉습니다. 


황혼과 여명. 사진에서도 느낌이 다릅니다.


흐르는 시간 속에 존재하기

날씨에 따라서도 사람의 기분이 들쑥날쑥하는데, 시간에 따라 바뀌는 건 그다지 놀랄 만한 일도 아닌가요? 머리로만 알고 있던 지식이 나의 생활에서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났을 때, 그 느낌은 구태여 입밖에 꺼내게 되는 힘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거 봐요. 이게 진짜였어요! 발견을 공유하고 싶어서 소리치고 싶어 지지요. 


모든 순간에는 그 순간만의 고유한 분위기가 있습니다. 동쪽으로부터 해가 떠올라서 중천에 머무르다 서쪽의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기까지. 나를 둘러싼 세상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합니다. 천변만화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순간에 온전히 있지 못합니다. 눈 떠보면 아침이고, 정신 차리면 저녁이지요.


새삼스럽게 시간의 변화를 느낄 짬이 없지요. 그럴 시간에 조금이라도 뭔가 더 해야 합니다. 계획표를 짜지 않더라도, 괜히 뭐라도 더 해야 할 것만 같고 해가 뜨든 말든 이 때는 뭘 하고, 또 저 때는 이걸 하고. 계획과 실행의 연속입니다. 그런 과정을 반복하다보면 내 안에 있는 무언가가 닳아가는 것 같습니다.

 

충전이 필요한 순간.


우리도 호수로 떠날 수만 있다면

존 카밧진 교수가 쓴 마음챙김 명상 관련 서적에서 핸리 데이비드 소로에 대한 일화를 소개해줍니다. 그는 월든 호수로 떠나 그저 하루가 변하는 것을 바라볼 뿐입니다. 현대 문명 사회에 살아가는 저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시간에 따라 변하는 매순간을 나의 눈으로 바라보는 일은 정말 멋질 것 같습니다.

지루할 수도 있겠지요. 5분 정도 지나면, 시간에 따른 변화를 바라보는 건 이제 아무래도 좋으니까 컴퓨터로 웹서핑이나 했으면 좋겠고, 게임을 한 판 하거나 영화를 봐도 좋고 하여간 무엇이라도 하고 싶을 겁니다. 그러나 걱정 없이 그저 시간 안에 온전히 있을 수 있다면?


우리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 세상에 적응해야하고, 생존을 위해서 무엇이라도 하는 데에 익숙합니다. 자연으로 돌아가 목가적인 삶을 즐긴다는 건 배부른 소리처럼 들립니다. 얻는 것도 있겠지만, 포기해야할 것도 산더미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게 그저 나를 괴롭게만 할 뿐이라면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월든 호수의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https://www.walden.org/) 


아침에는 네 발, 점심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 스핑크스가 냈다는 수수께끼입니다. 정답은 아시다시피 '인간'입니다. 너무 유명해져서 이제는 수수께기라 하기도 민망하죠. 이 유명한 일화는 딱히 얻어낼 교훈도 없어보이지만, 인간은 곧 이 연속된 시간 안에 존재한다는 걸 깨우쳐줍니다.


현재는 찰나에 불과합니다. 그 현재가 차곡차곡 쌓여서, 지나간 현재는 과거가 되고 다가올 현재는 미래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진실로 주어진 순간은 '현재' 뿐입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현재에 오롯이 있기는 어찌나 어렵습니까.


오늘 하루도 머리를 어지럽혔던,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과거에 대한 후회. 그리고 계속 들이닥치는 이 순간의 문제들. 우리는 너무 바쁘게만 사는 것 같습니다. 잠시라도 이 순간에 그저 있을 수만 있다면! 오늘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잠시라도 좋으니, 멈추어서서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만끽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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