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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Oct 24. 2019

후회하지 않으려면 선택하자

[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년 10월 23일 수요일, 90번째

내 맘 같지 않은 너, 경의중앙선

경의중앙선을 이용해 보신 분들이라면 아실 겁니다. 이놈의 지하철이 얼마나 제멋대로인지. 1시간도 전에 역사에 도착해 전광판을 보며 하염없이 기다려보지만, 도통 올 기미가 없습니다. 간격을 유지하기 위해서 여하간 기타 등등의 이유로 늦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의 속은 타들어 가는 줄도 모르고.


1분 1초, 시간은 지나고 약속 시간이 다가올수록 대체 이놈이 제시간에 와주기는 할는지 의구심이 듭니다. 늦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당장 뛰쳐나가서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잡아야 하나? 노선을 바꾸면 상황이 좀 달라질까? 머릿속이 복잡해집니다. 당장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우선은 지하철 때문에 늦을 것 같으니 미안하다고 미리 연락부터 하는 게 맞겠죠. 뭔가 억울합니다. 늦은 건 지하철 잘못인데 내가 미안해야 하는 거지, 나는 진작에 나왔는데! 지하철 운영을 하는데에 불가피한 고충이 있겠죠. 물론이죠. 암요. 이해합니다. 이해해야 하는데, 그런 순간에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점잖은 말로도 다 표현되지 않는 분노.


분당선, 너마저!

비단 경의중앙선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언제 어떻게, 지하철과 관련한 이슈가 생겨도 이상하지 않으니까요. 오늘도 gPause 모임에 가는데 경의중앙선은 출발할 기색이 없고, 배차 간격 조정을 위해 얼마간 정차한다는 방송이 나왔습니다. 속이 타들어갔지만, 이해했습니다. 그래, 너는 그럴 수 있지. 경의중앙선이니까!


분당선까지 그럴 줄은 몰랐습니다. 경의중앙선을 벗어나 분당선으로 갈아타려고 이동해 열차가 오기만을 기다리는데 안내 방송이 나오더군요. 불안했습니다. 신호 문제로 지연이 되었다는군요. 언제 고쳐질지는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다음 열차가 오기는 왔습니다. 그러나 내리는 사람들의 표정에 어린 어리둥절한 표정!


아, 이걸 어쩌란 말이냐. 지금도 이미 늦었는데! 저는 부랴부랴 다른 호선을 알아봤습니다. 늦지는 않겠다 싶어서 서둘러 분당선 플랫폼을 벗어나 지하 역사로 향했지요. 지하철로 인해 일정이 꼬이는 날이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있다면 아마 오늘이 아녔을는지.



브루투스, 너마저도를 외쳤을 카이사르의 심정이 이해가 갑니다.


결단이 필요한 순간

gPause 모임 시작 전에 늦지 않게 도착해서 무사히 참여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문득 '분당선 말고 노선을 바꾼다고 결단을 내려서 참 다행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모임에 늦는다고 해서 인생이 바뀌었다거나 하는 종류의 일은 없었을 겁니다. 짜증이 머리 끝까지 나서 즐겁게 모임에 임하기는 힘든 정도?


여하간 우리가 의식해서 선택을 내려야 하는 순간들이 종종 그렇게 찾아옵니다. 모든 변수를 예상해 행동에 옮길 수는 없으니 변수로 인해서 기존의 선택을 재고하고 바꾸어야 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는 될 대로 되라며 선택 자체를 유보하기도 하고, 막무가내로 행동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일수록 차분해져야 하는데도, 어떻게 하면 '나'에게 가장 이득이 될지 진지하게 고민하기보다 흐름에 몸을 맡겨버리지요. 그리고 후회합니다. 그러지 말것을! 맞습니다. 차라리 뭐든 선택했다면 그 선택으로 인한 결과에 대해서만 후회하면 됩니다. 그런데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그 순간 전체가 후회로 다가옵니다.


때때로라도 제대로.

모든 순간에 갖은 경우의 수를 고려하며 선택하며 산다는 건 피곤한 일이기는 합니다. 그랬다가는 가뜩이나 힘든 삶이 더 팍팍해지기만 할 겁니다. 오늘 점심은? 나의 건강과 행복한 생활을 위해 모든 필수 영양소를 고루 고려해서 최적의 식단을 짜야겠어!(...) 생각만 해도 진절머리가 나는군요.


물론 그런 의식적인 삶을 비웃자는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정말 훌륭한 일이니까요! 다만 인간은 물리적인 한계 때문에 매순간 그럴 수 없다는 게 함정이죠. 인간의 정신자원도 한정되어 있습니다. 필요한 곳에 의식 전부를 집중해서 선택하면 되는 게 아닐까요? 아니, 그래야만 합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그러나 가장 흡족한 답은 있을 수 있겠죠. 후회가 발생하는 이유도 내가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아니라 정말 이것이 아니면 안 되겠다! 그렇게 고심한 끝에 내린 결정은 비교적 납득하기 쉽습니다. 그러니, 우리 때때로라도 제대로 선택합시다.

실제 등산로의 표지라면 제작자의 악의를 엿볼 수 있는 사진이지만, 우리 인생에서는 진실입니다.


끝으로.

gPause 후기를 작성했던지라, 솔직한 심정으로는 글을 또 한 편 더 쓰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있었던 일을 어떻게든 기록하자, 이 순간이 지나면 분명히 잊혀지고 그저 불쾌한 기억으로 남아서 스스로를 괴롭히겠지 싶어서 예전에 작성했던 글의 주제와 다소 겹치는 내용이 있음에도 작성했습니다.


<하루한편>의 세 번째 글이 바로 결정에 대한 것이었는데, 어쩌면 비슷한 주제를 비슷한 방식으로 다루게 되는 건 글을 쓰는 사람이 마주하게 되는 문제 중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자기복제라 해야하나, 표절이라 해야하나 섣불리 말하기는 어렵군요. 이것 자체로도 좋은 글감이 될 듯 합니다.


여하간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이렇게 '형태'가 분명한 모습으로 남기고자 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쪼록 여러분의 하루가 즐거우셨기를 바라며. 아래에는 지난 번에 썼던 '결정에 대하여'라는 글의 링크를 첨부해놓겠습니다. 이 글과 비교해가며 읽어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keepingmemory/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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