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준희 Oct 30. 2019

'나'와 마주하는 일로서의 연애.

[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년 10월 30일 수요일, 95번째

나와 웹툰, 그 인연에 대해

웹툰을 즐겨보시나요? 저는 웹툰을 꽤 좋아했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네이버와 다음이라는 양대 산맥을 비롯해 레진코믹스 심지어는 네이트와 야후, 어디 스포츠 주간지나 일간지 웹사이트에서 연재되는 웹툰까지,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으면 일일이 챙겨보고는 했습니다. 요즘은 네이버만 보고 있지만요.


웹툰에 대한 애정이 시들시들해진 데에 별다른 이유가 있지는 않았습니다. 뭐랄까, 시간도 적지 않게 쓰게 되고 어느 순간부터는 웹툰이 연재되는 요일마다 최신 연재분을 신경 써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버거운 일로 느껴졌습니다. 나의 일상에 한 귀퉁이를 차지할 만큼 대단한 게 아닌데 존재감이 지나치게 커져버린 거죠.


그 후로는 네이버에서 연재되는 웹툰만 보게 되었습니다. 신작이 나와도 딱히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설사 보더라도 몇 편 보다가 그만두었지요. 전반적인 퀄리티가 떨어진다든지, 척 봐도 그림체가 성의 없다든지, 취향에 맞지 않는다든지 등등 이유를 대자면 끝이 없겠네요. 혹 가다 이거다 싶은 작품이 나타나더군요.


웹툰 <바른 연애 길잡이>를 아시나요?

그중에서도 나름대로 재미있게 보고 있는 웹툰을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매주 화요일마다 연재 중인 <바른 연애 길잡이>입니다. 오늘 이야기해볼거리를 제공해주기도 했지요. 작품에 대해서는 완결이 난 후 기회가 된다면 해보도록 하고 오늘은 간단한 요약만 해보겠습니다.



작품의 전반적인 내용은 대학에 갓 들어온 신입생 '정바름'이 주변 인물들과의 교류하며 연애라는 관계로 나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두 명의 남자 사이에서 스스로의 감정에 대해서 고민하기도 하고, 동시에 자신이 과연 연애를 할 수 있을지 근본적인 물음을 이어나가는 게 인상적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웹툰의 내용은 연애가 전부는 아닙니다. 연애라는 건 인간의 삶에 존재하는 수많은 이벤트 중 하나일 뿐이며 궁극의 목표도 아닙니다. '정바름'은 연애로 나아가기 직전, 혹은 와중에서 주변 사람들과 자신의 '연애'관을 끊임없이 되묻습니다. 이거야 말로 이 작품의 미덕이죠.


연애할 수 없는 현실

한참 젊음을 구가하는 청춘이 '연애'를 하는 거야 굉장히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묘사되고는 합니다. 하지만 남들이 다 한다고 해서 나도 해야 하는 업적도 아니죠. 내 마음이 이끌리면 하기 싫다고 해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연애'에 대해서 강박을 느낍니다. 왤까요?


연애가 일종의 정상성을 규정하는 기준으로 느껴지기 때문일 겁니다. 정상적인 성인이라면 당연히 연애를 해야 한다는 식의 관념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요즘 자발적으로 연애를 포기하고, 나아가 결혼까지 단념하는 추세가 강하지만 이조차 연애-결혼으로 이어지는 굴레의 '압박'을 반증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정상 사회로의 편입을 위해서 연애와 결혼을 해야 하는데 주어진 여건으로는 도저히 그럴 수 없으니까요.


일단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잠시 차치해두겠습니다. 이것도 굉장히 흥미로운 주제임에는 틀림없지만 오늘 글에서 다루어보고 싶은 것은 '인간의 감정'으로서의 '연애'입니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연애를 하게 되는 걸까요? 그 질문으로부터 연애라는 게 그렇게 '자연스러운' 일인지 한 번 따져보자는 거죠.


좋아하는 마음으로는 부족한.

누군가 좋아해 봤던 경험이 한 번 정도는 있으실 겁니다. 아예 없으실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는 글의 전개를 위해 부득이 '있었다'라고 가정하겠습니다. 그러면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셨나요? 잠시 제 과거를 돌이켜 보니 차마 글로 끄집어내기도 어려울 만큼 민망한지라, 능숙하지 않았다고만 해두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연애를 위해서는 그 이상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연애는 단순히 좋아하는 마음을 확인하는 절차가 아니라, 지속적인 관계니까요. 두 사람이 연인으로서 감정은 물론 실질적인 물질, 시간 등을 주고받으며 끊임없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단순히 좋아한다고 연애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나 혼자 좋아한다면 더더욱 그렇죠. 그리고 대체 좋아한다는 게 뭘까요? 기준이 너무 다릅니다. 외모를 좋아한다? 혹은 그 사람의 배경을 좋아한다? 그의 품성을 좋아한다? 자신이 왜 좋아하는지도 분명히 알아야 비로소 '연애'가 가능합니다.


연애는 기대와 배신의 연속?

우리는 연애뿐만이 아니라 여러 인간관계를 겪으며 무언가 기대했다가, 이루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무참히 배신당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혹은 언제쯤 기대가 이루어지나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지쳐 나가떨어지기도 해 봤을 겁니다. 어쩌면 인간관계라는 건 기대와 배신의 지난한 반복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상대방의 기대에 맞추어야 한다는 의무가 있는 건 아닙니다. 최소한 받은 만큼은 돌려준다는 윤리(이른바 황금률)는 필요하겠지만, 모든 기대에 부응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더욱이 개인차가 있으니 어디까지 맞춰줄지도 제각각입니다. 나의 기대보다 더 해주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그 반대도 있습니다.


결국 관계를 통해 우리가 확인하는 건, '자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어디까지 기대를 하는구나, 그리고 어디까지는 참아내도 어디까지는 도저히 못 버티는구나. 그것을 확실히 아는 사람이 보다 유연하게 상대를 대할 수 있는 것 같구요. 연애도 잘할 수 있는 거겠지요.


'나'와 마주하는 일.

저는 연애를 잘해봤던 적이 없고, 여전히 자신이 없습니다. 대체 내가 연애를 통해 무엇을 원하며, 상대방과 무엇을 하고 싶은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답을 내리지 못했거든요. 연애도 다른 일들이 그렇듯이 해봐야 는다는데, 겁만 많아서 인연을 만들고 이어나가는 데에 망설임이 있습니다.


아마도 제가 연애를 앞두고 겁내는 건 인연이 끊어지는 것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추한 모습까지 상대방에게 내비쳐야 한다는 사실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는 언제나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고, 나쁜 사람으로 기억되지 않았으면 좋겠으니까요. 그러려면 평생을 혼자 지내야겠지요.


스스로에게 좀 더 당당해진다면 가능할까요? 확신이 들지는 않습니다. 연애를 반드시 해야 한다고는 여기지 않지만 그럼에도 연애라는 것만 앞두면 가슴이 답답해지는 건 겁이 나서겠지요. 상대방의 눈에 비칠 '나'를 마주할 자신이 없으니까요.


끝으로.

세상에 쉽기만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만은, 연애야말로 가장 어렵지 않나 종종 생각합니다. 좋아함 혹은 사랑함에 대해서도 의문투성이고 그걸 표현하는 방식에서부터, 관계를 이어나가는 일까지. 그럼에도 우리가 연애 상태를 갈구하는 건 서로가 서로를 충족시켜주는 일이 선사하는 만족감 때문이겠지요.


어쩌면 공교육 과정에서 무엇보다 알려주어야할 것은 이러한 관계의 방법론이 아닐런지. 인간관계의 능력을 타고난 사람도 있겠지만, 저처럼 어려움을 느끼는 이들에게는 혼자서 A부터 Z까지 배워나간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이더군요. 아직도 평생을 배워야하는 처지인지라 더더욱 힘에 부칠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배워나가야겠지요. 사람이 평생 공부를 해나간다는 건 아마 이런 보이지 않는 영역도 포함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나아가보려고 합니다. 분명히 변하겠지요. 오늘도 좋은 하루셨기를 바라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전 23화 꾸준함이라는 미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