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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Mar 08. 2020

사전에서 발견하는 인생

<행복한 사전>(2013)

'오른쪽'의 의미, 사전의 역할

길을 가는 사람에게 오른쪽의 뜻이 무어냐고 물어보는 상황을 상상해봅시다. 아마도 대다수는 무슨 이상한 질문을 하냐며 무시하거나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고 그대로 지나쳐갈 수도 있습니다. 그중 몇몇은 왼쪽의 반대편이라거나 북쪽을 향하였을 때의 동쪽이라며 나름대로 그 뜻을 설명해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오른쪽은 그 의미를 추측해볼 필요도 없이 너무 분명하게 알고 있는 단어지만, 막상 설명해보라고 하면 또 상황이 달라집니다. 오른손을 들어 보이면 되는 걸까요? 그래도 분명하게 오른쪽을 설명해주지는 못합니다. 오른쪽에는 좀 더 다양한 의미가 있을 수 있죠. 보수적이라고 할 때도 우리는 '우파'라는 말을 쓰니까요.


사실 오른쪽이라는 단어만 그런 건 아닙니다. 우리가 평상시 사용하는 모든 단어들에 대해 그 의미를 전부 다 알고 쓴다기보다는, 대충 상대도 알고 있겠거니 하는 암묵적인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만약 서로가 알고 있는 정의가 같다면 상관이 없지만 다르다면 의사소통 과정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리겠죠.


그도 그럴 게 저마다 단어에 대해 정의하는 바가 아주 다르지는 않아도 미묘하게 다를 텐데, 그 차이가 조금씩 누적되다 보면 결국 무시 못할 차이가 벌어졌을 테니까요. 미리 합의해놓은 단어의 의미를 정리해둔 것이 바로 사전입니다. 오늘 소개할 영화는 그 사전을 만드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영화 <행복한 사전>과 소설 <배를 엮다>

미우라 시온의 소설 <배를 엮다>와 영화 <행복한 사전>


영화 <행복한 사전>은 미우라 시온이 쓴 소설 <배를 엮다>를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소설은 2012년에 서점대상을 받았고, 이듬해 영화로 제작되었습니다. 2016년에는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는데 일본에서 미디어 믹스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걸 감안하더라도, 그만큼 원작이 매력적이라는 걸 방증하는 듯합니다.


영화의 내용은 단출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전을 만드는 일이 서사의 중심에 놓입니다. 영업에는 젬병인 출판사 직원 마지메(마츠다 류헤이 분)가 사전편집부에 합류하게 되며 사전을 내놓기까지 겪게 되는 일을 보여줍니다. 사전 제작은 단순한 출판 업무에 그치지 않고 인간, 관계, 인생에 관한 것으로 묘사되지요.


영화의 내용은 물론이고 연출 또한 특별할 것 하나 없습니다. 극 중에서는 하숙집 할머니의 손녀딸 카구야(미야자키 아오이 분)의 요리를 두고 곧잘 '싱겁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영화에도 그 '싱겁다'는 말을 갖다 대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영화의 메시지가 주는 울림은 크고 강렬합니다.




다양한 인간군상

판촉이나 대외 업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신입 사원 마지메(마츠다 류헤이 분)는 선임자의 퇴직에 따라 공백을 메우기 위해 '대도해'라는 사전 편찬 업무에 참여하게 됩니다. 결코 마지메 자신의 의지로 시작된 일은 아니었으나, '사전을 만드는 일'이 가지는 의미를 깨닫고 은근하지만 강한 열정을 보입니다.


껄렁해 보이고, 요령 좋은 사수 마사시 (오다기리 죠 분) 또한 마지메의 열의에 함께하게 되지요. 그 와중에 마지메는 하숙집 할머니의 손녀인 카구야와 만나게 되고, 사랑이라는 감정과 더불어서 책 밖에 펼쳐진 세계가 선사하는 살아있는 단어의 쓰임새를 느끼게 됩니다.


사전을 만든다고 해서 영화 내내 사전만 만드는 줄 아셨다면, 다행스럽게도 그런 지루하고 따분한 내용이 아니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오히려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바는 사전 만들기라고 해서 세계와 외떨어져 존재하는 작업이 아니라, 그 자체가 이미 인간, 그리고 세계와 끊임없이 관계하는 일임을 나타냅니다.


마지메(좌), 마사시(가운데), 카구야(우)


사전이 필요 없어진 시대?

영화에서도 나오듯, 우리는 '사전'이라는 말이 고리타분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동네 집집마다 책장 한 편을 장식하고 있던 유명 출판사의 국어사전이나 백과사전도 옛말이 되었고, 이제는 전자사전조차 쓰이지 않습니다. 어쩌다 생소한 단어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면 인터넷으로 사전을 들여다보는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전에 어떤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시대는 물론 그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 ㅁ설령 우리가 사전을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인간은 언어를 이용해 의사소통을 합니다. 누군가와 말할 때, 언어를 제외한 의사소통 상황을 상상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이렇듯 스스럼없이 언어를 쓰기 마련이고 어쩔 때는 정확한 의미가 궁금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사전 없이 그저 '이런 느낌이겠거니'하고 대충 넘겨버릴 수도 있겠지만 마음 한 구석은 영 찝찝하겠죠. 이를 애써 무시하고 넘어가면 서로 간의 오해가 쌓인다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합니다.


세상을 잇는 다리, 사전

가령 중요한 사안을 두고 논의하는데 핵심적인 언어에 대한 정의가 다르다거나,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서로 다른 뜻으로 언어를 쓴다면 괜한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겠죠. 또한 개인과 개인뿐 아니라 기성세대와 신세대 사이에도 언어를 둘러싼 입장 차이와 오해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들 스스로가 의식하고 있지 않더라도 의사소통의 상당 부분을 합의된 언어에 기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분명하게 기록해놓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잊히고 말 겁니다. 이때, 사전은 인간사회에서 언어가 활용되는 양상을 기록하여 그러한 망각을 방지하고 쓰임을 분명히 규정해놓는 기준이 되어줍니다.

언어도 끊임없이 쓰여야만 생명력을 가지듯이, 사전도 그 시대 언중의 용어를 반영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영화 <행복한 사전>에서도 말하듯이, 사전이 시대와 함께 호흡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단순한 기록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사전을 만드는 작업은 결코 대단하거나 멋지지도 않습니다. 


출간을 앞두고 사전이 지닌 의의를 설명하는 마사시


지난하고 고루한 노동으로서의 사전 제작

4차 산업 혁명이니, 빅데이터니 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영화 속 묘사처럼 실생활에서 단어의 용례를 수집하거나 일일이 사람의 손을 거쳐 작업하는 일은 고리타분한 걸 넘어서 중노동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극 중 인물들이 보여주는 '집념'은 우리가 잊고 살았던 진중함을 떠올리게 합니다.


단순한 사명감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생에 대한 충실함이라고 해야 할까. 영화의 중심에 놓인 인물 마지메와 영화 <행복한 사전>의 매력은 이 같은 진지함에 있습니다. 또한 사전 제작에서 감동을 느끼는 바탕에는 양적으로든 질적으로든 물리적인 노동이 집약되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물론 그것만 가지고서는 만리장성이나 피라미드를 보고 느끼는 감동과 다를 게 없습니다. 막대한 노동량을 넘어서 그 안에 담겨있는 인간의 진심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평생직장이 없는 시대라고 하지만 자신의 '업'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며, 갖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걸어가는 이의 '위대함'이 여기 있습니다.


그저 묵묵하게 마지메는 매일 같이 일합니다




사람과 사람

영화에서 보여주는 관계에 대한 조명도 울림을 더합니다.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주제의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건 새로울 것이라고는 전혀 없는 시도지만, 그럼에도 뜻깊습니다.


인간(人間)을 파자하면 사람 인과 사이 간, 사람 사이라는 뜻이 나오지 않습니까. 사람 인()도 두 사람이 기대어 서있는 모습이라고 풀어쓰지요. 아리스토텔레스도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 정의했지요.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의 존재는 단독자나 개체를 넘어서서 '관계' 속에서 정의되어왔습니다.


이 세상에 남아있는 사람이 나 혼자라면, 나는 모든 의미에서 가장 훌륭한 인간일 겁니다. 그러나 그 비교는 더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비교할 사람이 없으니까요. 나 자신의 의미는 다분히 관계 속에서 상대적으로만 정해집니다.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인간은 있을 수 없죠.


영화에 등장하는 두 커플


우리는 혼자일 수 없다  

마지메는 요령 없는 청년이었습니다. 10년 넘게 하숙을 하며 하숙집 할머니 하고만 몇 마디씩 주고받을 뿐, 회사에서 혼자 밥을 먹으며 책을 읽는 게 전부입니다. 추측하건대 그의 대학생활도 회사에서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 안의 세계'에서 평온했을 것이라 짐작해봅니다. '나'로 충만하니, '남'이 끼어들 여지가 없고 불합리를 겪을 일도 없습니다. 내향적인 사람을 두고 '불행하다'며 지레짐작하는 것은 사회적 통념에 불과하다는 걸 감안해야겠지요. 그럼에도 이는 '인간'으로서 온전히 충족된 상태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설령 당사자는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는 상황이 만족스럽다 할 지라도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일에 둔감하다는 것은 당장은 문제가 되지 않아도 꽤나 큰 결핍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겠다는 개념 자체가 원론적으로는 불가능하기에 성립할 수 없습니다. 


그 영향력이 눈에 드러날 만큼 강한가 그렇지 않은가의 차이일 따름이죠. 영화 속 인물인 마지메의 상황을 두고 어떻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우나 '인간답게' 살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끝끝내 마지메가 관계로 나아가는 과정을 그리는 이유도 아마 '관계' 없이 인간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겠죠.


서로에게서 서로의 의미를 발견하는 두사람.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의미

영화는 '관계'가 가지는 힘, 그리고 관계가 필요한 이유를 마지메라는 인물의 변화를 통해 설명합니다. 우리에게 언어가 의미 있는 것도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와 소통하려면 수단이 필요하니까요. 내 마음은 그냥 전해지는 법이 없습니다.


아주 단순한 의사 전달, 밥을 먹고 싶다든지, 춥다든지 하는 일에서부터 보다 다양한 층위의 감정과 생각을 전달하는 데까지. 인간이 언어를 만들고 기록을 남긴 데에는 그러한 전달과 교류에 목적이 있습니다. 전달 그 자체가 목적일 리는 없다. 궁극적인 목표는 언제나 '상대방'입니다.


상대방이 있으니까 전달도 필요합니다. 예외도 있긴 합니다. 인간은 다른 사람이 듣거나 읽지 않을지라도 종종 혼잣말을 하거나 일기를 쓰기도 하니까요. 그 순간조차 불완전하나마 나 자신을 상대방으로 가정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상대방이 없는데도 무언가 남기고 쓰는 이유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 모든 기록은, 그저 '기록'만이 목적은 아니었을 겁니다.


관계 속의 인간

언어 그 자체, 그리고 인간에게 있어서 '언어'는, '상대방'이 있기에 비로소 성립할 수 있는 개념일 겁니다. 이를 학문의 영역에서 하듯 엄밀하게 정의하기 위해서는 엄밀하게 따져보아야겠으나, 부득이 이 글에서는 상식 차원의 추론에서 만족해야하겠습니다.


여하간 마지메가 사전편집부에 들어가면서 사람들과 만나고 이해의 필요를 느끼며 사랑을 알게 되는 과정은 사전 작업이라는 외피를 둘러썼을 뿐, 우리네 인생에 대한 은유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만나야 하고, 함께 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세계 속에서 그 의미를 정초할 수 있으니까요.


또한 개인으로서는 할 수 없지만 함께 할 때 비로소 가능한 일도 있습니다.  마지메 혼자였다면 결코 사전을 만들 수 없었을 겁니다. 13년이라는 시간을 걸려서까지 사전을 완성할 수 있었던 건 마지메 자신의 부단한 노력도 있었지만, 그를 비롯한 모두가 힘을 모았기 때문입니다.


사전편집부의 직원들.


그렇게 우리는 누군가를 만난다

이 '당연한 사실'은 너무 쉽게 잊힙니다. 어느 일도 혼자서 해낼 수 없다는 사실. 영화에서는 드넓은 바다에 흩뿌려진 단어 카드를 주으려다가 끝끝내 물에 빠져 허우적대다 꿈에서 깨는 마지메의 모습이 묘사되고는 합니다. 그는 이 모든 걸 혼자 해야한다고 생각했기에 그런 무력감에 시달립니다.


사전편집부의 외부자문을 맡은 교수(카토 고 분)는 사전은 혼자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사전 작업이 방대한 사료 조사는 물론이고, 몇 번에 걸친 철저한 검수를 필요로 한다는 물리적인 어려움만을 암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전 만들기는 곧 인간 사이의 일이라는 거죠.


나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에 이끌려 특정한 언어를 쓰는지, 언어가 쓰이는 과정에 대한 호기심이 없다면, 만들 수 없다는 것에 가깝습니다. 그 고단한 과정을 거쳐서야 비로소 사전은 사람들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요 배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끝으로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아서, 그다지 훌륭한 감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진즉에 써야할 글을 내내 묵혀두고만 있다가 이제야 겨우 내보입니다. 그만큼 고민을 한 것도 아니지만, 영화에서 느꼈던 만족감을 제대로 담지 못한 것 같아 한참 망설였습니다.


그래도 이 영화를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해서, 부족하나마 글을 남깁니다. 연출이 대단하지도 않고, 별 거 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울림 있는 잔잔한 영화 한 편 어떠신가요? 흥미가 있으시다면 그런 당신께 영화 <행복한 사전>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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