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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Feb 28. 2020

100일을 운동하고 보니

[크로스핏의 맛] 3. 다시 한번 새롭게

경축, 100일!

어느덧 운동을 한 지도 100일이 되었습니다. 2019년 9월 23일에 크로스핏을 다시 시작하여, 올 2020년 2월 21일 날에 대망의 100번째 크로스핏 박스 출석을 하였지요. 기실 운동을 시작한 날짜로 따지고 보면 100일은 한참 전에 지났지만, 운동을 간 날만 꼽다 보니 100일을 채우는 데에 은근히 오래 걸렸습니다.


벌써 100일이나 되었나 싶기도 하고, 언제 운동을 시작했는데 이제 겨우 100일인가 싶기도 하고 여러모로 복잡한 심정입니다. 이 100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다가올 200일과 300일, 아니 어쩌면 평생을(!) 지속할 수 있어야 할 텐데 과연 제가 운동을 그렇게 꾸준히 할 수 있을는지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


먼 훗날에 지금을 돌이켜보면, 고작 100일을 운동한 걸로 뭘 그리 좋아했나 싶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도 지금은 이 순간을 즐기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게 이렇게 운동을 꾸준히 해본 게 평생 처음 이니까요! 그냥 운동도 아니고 무려 크로스핏을 100일이나 하다니! 경축, 100일. 장하도다, 나!


습관 애플리케이션으로 기록한 지난날의 운동 기록


그래서 무엇이 달라졌는가

몸이 좋아졌다

100일 동안 대체 무엇이 달라졌는가! 글쎄요, 변화 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건 몸 그 자체입니다. 안타깝게도 옷을 입은 상태에서는 별 티가 나지 않지만 상당히 좋아졌습니다. 저에게도 복근이라는 게 있더군요! 모델들처럼 멋들어진 식스팩까지는 아니어도, 한 번쯤 바디 프로필을 찍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 정도입니다.


친구들의 반응도 신선하더군요. 언제 그렇게 몸아 좋아졌냐면서 말이지요. 뿌듯하면서도 내심 곤란한 것이 크로스핏을 시작할 때만 해도 몸을 만드는 걸 염두에 두지는 않았거든요. 꾸준히 지속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변화가 생긴 부분 중 하나일 뿐인 걸요. 그보다는 다른 변화 쪽이 제게는 더 중요했습니다. 


체력이 좋아졌다

그중 하나가 체력입니다. 과거의 저는 10시간을 활동하면 10시간 동안 자야 할 정도로 효율이 나빴습니다. 마치 연식이 오래되어 충전을 하더라도 금세 방전이 되어버리는 배터리처럼 남보다 더 자는데도, 활동시간은 비슷하거나 못한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개운하게 자본 적도 별로 없었구요.


아무리 인간이 평생의 1/3을 잠으로 보낸다지만, 저 같은 경우라면 2/5? 3/7? 하여튼 거의 절반에 가까운 시간을 잠으로 보낸 셈이지요. 이런 비효율이 어디 있습니까. 한 번은 진지하게 수면다원검사를 고민해본 적도 있습니다. 혹시나 과다수면이 아닌가 해서 말이죠.


그러던 차,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니고 운동을 병행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 비하면 체력이 엄청 좋아진 거죠. 덕분에 잠을 남들만큼 자도 남들만큼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별 거 아닌 변화지만 저에게는 참 의미 있는 성과였지요.


정신적으로 안정되었다

그뿐 아닙니다. 꾸준히 운동을 하다 보니 들쭉날쭉하던 기분도 어느 정도 평형 상태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것 역시 참 별 거 아니지만, 운동으로 얻은 혜택 중 가장 좋은 점 중 하나였습니다. 저는 경미한 우울증이 있었고, 그탓인지 자주 무기력했습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보낸 것도 그 때문인지도 모르죠.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니면서 약을 복용해왔지만, 아주 큰 차이는 없었습니다. 깨어있는 시간에 그나마 활기가 돌았다는 정도? 그러나 운동을 제대로 시작하고부터는 약의 효과도 온전히 체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단 스트레스 해소가 되기도 했고, 체력도 좋아졌으니까요.


예전이라면 예민했을 순간에도 평이하게 넘어갈 수 있게 되었고, 기분이 울적한 상황이 그리 오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약의 영향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무엇보다도 운동의 공이 가장 크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어느 하나만 했더라면 이런 효과는 없었을 테니까요.


그래도 여전히 갈 길은 멀다

100일이라는 기간 동안 무엇이 달라졌나 적어놓았지만, 여전히 갈길은 멉니다. 스스로 이쯤이면 크로스핏 초보자는 아니고 그래도 중급자는 되지 않을까, 자신만만해 있었는데 그런 안일함에 경종을 울리듯이 어제 wod(Workout of the Day)는 정말로 끔찍했거든요.


바벨에는 조금 익숙해졌을지 몰라도, 덤벨로 하는 운동은 좀체 숙련이 되지 않더군요. 그도 그럴 게 바벨은 틈틈이 시간 나는 대로 연습이라도 했지만, 덤벨은 기피하다 싶을 정도로 멀리 해왔으니. 더욱이 자신 있던 바벨마저도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쉬지 않고 연달아 바벨을 들어 올릴 때, 그 괴로움이란.


100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부족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알면 알수록 이 운동, 크로스핏은 해야 할 게 더 늘어나는 느낌이에요. 더 무겁게 더 빠르게 더 격렬하게! 입문자는 입문자대로, 숙련자는 숙련자대로 어려운 게 크로스핏인 것 같습니다.


또 다음 계단을 향하여

물론 그 덕분에 지치지 않고, 쉽게 지루해지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지만요. 예를 들어볼까요? 철봉을 이용한 운동을 크로스핏에서는 다음과 같이 나누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일반적인 턱걸이인 Pull up과 Chest to Bar(C2B), 마지막으로 대망의 Bar Muscle up. 이해가 어려우실 수 있으니 부연하겠습니다.


간단하게 턱걸이 위로 턱을 올리면 되던 것을 그다음으로 가슴을 붙이고,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아예 온몸을 철봉 위로 올리는 겁니다! 또한 반동을 주느냐 주지 않느냐에 따라 난이도가 또 달라집니다. 철저하게 힘만 이용해서 올라가려면 더 많은 훈련을 요구하지요. 이 얼마나 잔인한 운동이란 말입니까!


머슬 업이란 바로 이런 것 (출처 - 영문 위키피디아)


물론 모든 운동이 숙련자에게 더욱 가혹하겠지만, 크로스핏을 하다 보면 막막한 심정이 들 때도 있습니다. 대체 언제쯤 이 운동은 쉬워질까! 좀처럼 쉬워지는 날은 없지만 그래도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자신을 발견하며 위안을 얻습니다. 그래, 그래도 어제보다는 더 나아졌으니 이쯤이면 만족! 그런 거죠. 


다시 1일이라는 마음으로

오늘 출석을 하면 104일째를 맞이합니다. 다시 한번 1일을 맞이했다는 마음가짐으로 다음 200일을 향해 나아가 보려고 합니다. 새로 시작할 때와 아주 같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항상 겸손하게 배운다는 자세로 시작해보려구요. 도대체 이 운동은 자만해 있을 겨를이 없네요.


취업을 하고도 과연 이렇게할 수 있을지. 그 때는 또 그 때 나름대로 글을 남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글은 구직준비자(?)가 남는 시간 동안 이렇게 운동을 해왔다, 그런 느낌으로 글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오늘 하루, 아주 간단한 운동이라도 시작해보시면 어떨까요.


팔굽혀펴기나, 맨몸 스쿼트처럼 집에서 할 수 있는 운동도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설령 10분, 아니면 5분, 이마저도 힘들다면 단 1분이라도 좋으니 말이죠. 분명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변화가 있을 겁니다. 다른 건 몰라도 운동에 한해서 노력은 정직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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