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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Mar 14. 2020

운동은 나를 이기는 일이다

[크로스핏의 맛] 4.  악마의 운동, 버피

또 너냐, 버피(Burpee)

오늘은 13일의 금요일, 제가 다니는 크로스핏 박스에도 악마가 찾아왔습니다. 그 정체는 바로, 듣기만 해도 진저리가 나는 운동 버피(Burpee)입니다. 고작 버피 가지고 뭘 그리 호들갑을 떠냐고요? 버피가 아니어도 어려운 동작이 쌔고 쌨는데, 까짓것 버피 정도야 대수롭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아요.


일단 횟수가 잔인합니다. 보통 10개씩 EMOM(Every Minute on The Minute)으로 진행됩니다. 영어로 쓰여서 어려운 것 같지만 매우 간단합니다. 매 1분마다 버피를 10개씩 하라는 겁니다. 가령 버피를 EMOM 10min으로 진행하면 1분에 10개, 100개입니다. 혹은 시간제한 없이 버피 100개를 최대한 빨리 하거나.


보셨다시피 버피가 어려워질 수 있는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버피는 아무리 해도 해도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할 때마다 새롭게 어렵습니다. 일어서 있다가 곧장 쪼그려 앉아서 팔굽혀펴기를 하고 다시 올라오는 걸 반복할 뿐인, 간단명료한 동작임에도 왜 이리 할 때마다 어려운지!


힘겹게 하나씩 버피를 해나가는 모습

버피보다 어려운 버피들 

횟수만 늘어나는 게 아닙니다. 더 어려운 단계의 버피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일어서는 것과 동시에 제자리에서 뛴다거나, 팔굽혀펴기를 정석으로 한다거나, 구분 동작 각각을 신경 써가며 제대로 수행하면 지금까지 해오던 버피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려워집니다.


끝이 아닙니다. 여기서 몇 단계는 더 어려워질 수 있거든요! 덤벨 혹은 박스만 있으면 됩니다. 덤벨을 들고 일어서기만 하면 되는 덤벨 버피와 스쿼트 자세로 일어서는 것과 동시에 덤벨을 머리 위로 들어서 올리는 데빌 프레스(Devil Press)와, 이들보다 훨씬 어려운 맨 메이커(Man maker)라는 동작이 있습니다.


뭐, 덤벨을 활용하는 시점에서 이미 버피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수행 과정에서 버피가 섞여있으니 버피는 버피입니다. 박스를 활용할 경우에는, 제자리에서 뛰는 대신 박스를 넘어가는 걸 반복하며 버피를 수행하면 됩니다. 어때요, 버피를 어렵게 하는 건 참 쉽죠?


대부분은 정신력 문제입니다.

물론 버피만으로도 충분히 어려우므로 굳이 더 어렵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1분에 기본적인 버피를 10개씩 해도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니까요. 100개나 되면 두말할 것도 없죠. 여기서부터는 정신력 싸움입니다. 크로스핏을 하면서 느끼는 건 운동은 체력뿐만이 아니라 정신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숨 쉬기도 바빠 죽겠는데, 침은 왜 이리 나오는지. 헐떡거리며 입맛을 다시는데 목구멍에서 피맛이 납니다. 온몸에 땀이 비 오듯이 흐르고, 심장은 튀어나올 것처럼 요동치는 게 느껴집니다. 근육이 그만 하라며 비명을 지르는 것 같고 이대로 쓰러져 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아직 운동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다잡고 어떻게든 하나씩이라도 해야만 합니다. 포기하는 순간 정말 끝입니다. 크로스핏은 다른 사람들과 기록을 경쟁할 수도 있지만 그 이전에 나 자신과의 싸움이고, 지금 이 순간 얼마나 더 굳건하게 멘털을 붙잡아놓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니까요.


그래서 오늘도 버피를 한다

자, 글을 시작하면서도 밝혔듯이 오늘 운동에는 모두 버피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아예 버피로만 구성된 운동도 있었죠. 박스를 넘어가야 하는, Box Jump Over Burpee를 30개씩, 매 라운드 사이에 1분만 쉬고 3번을 수행해야 했습니다. 버피를 끝내고 박스를 넘어가는데, 다리가 어찌나 고통스럽던지.


간신히 운동을 끝내고 나니, 다음 운동은 더더욱 잔인했습니다. 다양한 맨몸 운동을 최소 50개에서 많게는 150개까지 수행해야 했거든요. 그것도 모자라 마지막에는 버피 100개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겨우 운동을 끝냈다 싶을 즈음에 남아있는 운동이 버피에, 그것도 100개나 해야 하니 정신이 나갈 것 같더군요.


100개를 해야 한다는 걸 애써 잊고, 쉬지 않으면서 천천히 하나씩 해나갔습니다. 1개, 2개, 어느새 20개. 25개쯤 했을 때는 이제 3/4만 더하면 되겠구나 싶었는데, 개수로는 여전히 75개나 남아있다고 생각하니 다 때려치우고 싶은 심정이었죠. 그래도 또 하나, 하나. 어느새 50개. 75개. 마침내 100개!


나를 이기는 경험

오늘의 운동이 끝나고, 실신하듯이 바닥에 누우면 그 순간 밀려오는 쾌감은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아, 드디어 끝났구나. 안도감은 물론이요, 어떻게든 유혹을 이겨내고 나 자신을 넘어섰다는 그 성취감이란! 크로스핏을 끊지 못하는 데에는 이런 이유도 있습니다. 나를 이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경험이니까요.


인간의 신체는 얼마나 정직합니까. 분명히 자의로 시작한 운동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포기하라며 온갖 신호를 동시다발적으로 보냅니다. 지금 당장 이 위험한 짓거리를 그만두라면서 우리를 몰아세우죠. 하지만 갖은 방해(?)에도 어떻게든 하나씩 해나가는 게 운동 아니겠습니까. 


마침내 모든 걸 끝냈을 때, 나를 넘어서는 순간을 발견합니다. 물론 그 순간에만 유효하죠. 성취의 감각은 잠깐일 뿐, 너무나 쉽게 잊힙니다. 그러니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또 운동을 하러 가는 거죠. 다시 한번 더 나 자신을 넘어서기 위해서!


당신에게도 버피를 추천한다

장황하게 이야기했지만, 간단히 말해 운동은 체력 만큼이나 정신력이 중요하고, 나를 이겨내는 과정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것과 별개로도 버피 자체가 워낙 운동 효과가 좋다 보니, 주변에서 살을 빼고 싶다는 이야길 하면 주저 없이 버피를 추천합니다.


딱 5분이라도 좋으니, 1분에 10개씩 50개만 하라고. 5분 정도는 시간을 낼 수 있지않냐며 말이지요. 물론 그런 말을 하면 무슨 괴상망측한 소릴 다하냐는 시선이 돌아옵니다. 하지만 고작해야 5분이라도 매일 같이 버피를 한다면 분명 달라질 겁니다!


다른 건 몰라도 운동은 꾸준함에 비례하고, 노력을 배신하지 않으니까요. 인간은 몸으로 사는 존재라는 걸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도 운동 아니겠습니까.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여러분, 오늘부터 버피를 해보시는 건 어떠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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