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준희 Mar 07. 2019

[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3.6

1. 개강


어젯밤, 글을 쓰고 자려다가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그만 잠들었습니다. 워낙에 피곤하기도 했지만 소재를 정하고 글을 써야 하니 그동안 잠깐 누워있자고 결정한 게 실책이었습니다. 포근한 침대에 몸을 맡긴 채로, 오늘은 뭘 쓸까 고민하다가 기왕 3월이고 이 시기에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자는 식으로 사고의 흐름을 이어나가던 중, 거기서 의식이 흐려졌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형광등도 켜놓고 내리 12시간을 잤더군요. 그러게 침대에 눕는 게 아니었는데…. 후회해봐야 이미 늦었고 하루 지난 일기를 쓰는 심정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도 무엇을 쓸지 정하긴 정했습니다. 3월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것 중에 하나지요. 바로 개강입니다. 대학생들에게는 믿기지 않는 현실이지만, 늘 그렇듯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잔혹한 사실이지요. 저도 작년까진 대학생이었으니 개강이라는 시련을 앞에 둔 그 절망감(?)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이란 걸 잘 알지요.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휴학을 할 게 아니라면 다녀야죠. 그러나 이렇게 스스로를 타일러봐도 달콤했던 지난 겨울방학의 나날을 떠올리면 절로 한숨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잘 압니다. 뭐가 되었든 이제부터 정말 큰일입니다.


저 아득한 표정이야말로 개강을 맞이한 대학생들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입생들은 조금 사정이 다를 수 있습니다. 대학 생활의 시작을 앞두고 여러모로 긴장도 될 것이고, 기대감과 걱정 같은 온갖 감정들이 복잡미묘하게 얽혀 개강을 맞이하겠죠. 8년이나 지났지만 제가 대학교에 입학했던 당시를 떠올려보면 뭔가 형용하기 힘든 감정들로 가득 차 있었던 게 기억납니다. 20년이란 세월 동안 나고 자란, 익숙한 고향을 떠나 무작정 향한 서울에서 어떤 삶이 나를 기다릴지. 솔직히 기대보다는 걱정이 더 컸고 그 와중에 나를 비롯해 환경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더 강했습니다. 현실을 마주하자, 강한 실망감을 느끼기도 했고요. 그 실망감을 이기지 못하고 여러모로 방황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이제 막 대학생활을 시작한 분들께 괜한 악담을 늘어놓으려는 건 아닙니다. 제 경우에나 그랬다는 거지, 제각각 느끼는 바가 다를 테니까요. 그래도 이맘때의 분위기가 무언가 떠올리게 만들어 괜한 소리를 늘어놓게 됩니다. 학생들로 북적이는 대학 근처에 살고 있다 보니 질리도록 겪었지만 아무리 겪어도 낯설게만 느껴지고 옛날의 기억이나 감정이 떠오르게 되니다. 신입생이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졸업생인데 과연 나의 삶은 그때 내가 걱정하던 것보다는 괜찮은 모습일지 스스로도 확답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개강은 누군가에게는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지만 어떤 이에게는 더없이 떨리는 순간이고 또 다른 이에겐 지겨운 또 한 번의 반복일 뿐이지요. 무언가 시작하기도 하고, 끝나기도 하는 인생의 특정한 시기 그 한복판에 와있다고 생각하면 어쩐지 조바심이 납니다. 그러나 조바심에 짓눌려서야 아무것도 되지 않지요. 너무 잘할 것도 없고, 아주 걱정할 필요도 없는 듯합니다. 앞으로 한 학기를 보낼 모든 대학생들, 그리고 저마다의 시작과 끝을 맞이하는 여러분들에게도 응원을 보냅니다. 설령 잘되지 않더라도 뜻깊은 나날이 되시기를.

작가의 이전글 [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3.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