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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Apr 06. 2021

세계 대회에 도전해보았다

[크로스핏의 맛] 13. 크로스핏 게임즈

미안합니다, 이거 말하려고 어그로 끌었습니다.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고백을 하나 하자면, 글의 제목은 엄청나게 거창하지만 이른바 어그로를 끌기 위한 의도로 작성되었습니다. 정말로 브런치에서 이목을 끌기 위해서는 제목이 중요할까 궁금하기도 했거든요. 그래도 지금부터 할 이야기와 아주 다르지도 않으니 양심의 가책(?)도 덜했습니다.


그럼 어그로를 끌려는 목적 외에도 세계 대회 운운한 이유를 바로 밝히겠습니다. 실제로 며칠 전 세계 대회에 참가하기는 했거든요. 다름 아니라 크로스핏 계의 세계 대회인 크로스핏 게임즈 2021입니다. 


https://games.crossfit.com/


크로스핏 세계 대회에 참가하다

'크로스핏 게임즈'는 전 세계의 크로스피터들이 모여서 각자의 실력을 겨루는 대회입니다. 크로스핏도 세계 대회가 있다니 놀라는 분들도 있으실 것 같습니다. 저만 해도 이런 게 있다는 걸 알고만 있었지 실제로 뭘 어떻게 진행하는지 전혀 몰랐거든요.


백문이 불여일견. 이번에 큰 맘먹고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참가비는 20달러, 한화로 약 2만 원. 책 한 권, 밥 한 끼 덜먹으면 되는 돈이지만 입상도 못할 대회에 돈까지 써야 한다니 살짝 망설여졌습니다. 상위권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않았지만, 돈까지 내고 참여하는 데 마땅한 성과도 없다면 좀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도 크로스핏을 해온지도 2년 가까이 되었는데 한 번쯤 대회에 나가봐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설령 예선 참가에 그친다고 하더라도 이런 대회에 나가보는 건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을 테니까요. 과연 내가 지금까지 크로스핏을 해오면서 어느 정도 위치까지 올라와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얼굴도 모르지만 전 세계에서 나와 같이 '크로스핏'을 하고 있는 이들과 경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크로스핏 세계 대회, '크로스핏 게임즈'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2021 게임즈 오픈

간략하게나마 크로스핏 게임즈의 진행 방식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한국어로 잘 정리된 문서가 있다면 좋을 것 같아 한참 인터넷을 뒤졌지만, 크로스핏도 아주 대중적이진 않은 데다가 세계 대회라 그런지 딱히 정리해둔 곳이 없더군요. 떠듬떠듬 크로스핏 게임즈 홈페이지에서 찾아본 내용들을 토대로 정리해보았습니다.


우선 전 세계의 수많은 크로스피터들이 모여서 약 한 달 혹은 5주는 기간에 걸쳐 예선을 치르게 됩니다. 매주에 한 번씩 공개되는 운동의 기록을 재고, 그중에서 상위 10%만을 뽑는 거죠. 그리고 그 상위 10% 중에서도 가장 기록이 뛰어난 선수들을 뽑고, 또 뽑고. 이 과정을 반복해나가며 우승자를 가르게 됩니다.


3월 11일부터 29일까지 약 한 달간 온라인 예선인 '오픈'이 진행되었습니다. 코로나 때문인지 종래 진행된 것보다 훨씬 짧은 기간에 마친 것 같더라구요. 그러나 짧다고 해서 결코 쉽지는 않았습니다. 지난 3월 동안 크로스핏 오픈 와드(WOD)를 수행하느라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간략한 오픈 후기

크로스핏에서 경쟁이라는 단어는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정해진 운동을 얼마나 빠르게 끝내느냐, 얼마나 무거운 무게를 드느냐, 정해진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횟수를 하느냐 등 남들과 경쟁하기도 하고, 자기 자신과 경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회'라는 환경이 놓이게 되면 같은 경쟁이라고 해도 그 결이 달라집니다.


압박감의 차원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요. 그냥 적당히 하고 '나는 뭐 이 정도지'라고 생각하면 당장은 속이야 편하겠지만, 막상 그렇게 되지 않는 게 또 사람 아니겠습니까. 어떻게든 잘하고 싶지만, 자기 능력 이상으로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괜히 의욕만 앞섰다가 다치기 쉬운 게 크로스핏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21.1부터 21.4까지 총 4개의 크로스핏 오픈 와드를 수행하면서 가급적이면 욕심은 부리지 않는 선에서 부담감도 떨쳐내려고 했습니다. 그냥 즐기자! 그런 마인드였죠. 냉정하게 말해서 운동을 하는 동안은 전혀 즐겁지 않았지만요.


적어도 최선을 다하되 쫓기듯 운동을 하지는 말자고 되뇌었습니다. 기록을 재야 하는 날이면 어찌나 긴장이 되던지. 지금 돌이켜봐도 참 어떻게 끝냈나 싶습니다. 


고통의 순간들 돌아보기 (1)

가장 기억에 남는 운동은 21.2라고 불리는 와드였습니다. 이름 그대로 2번째로 공개된 와드였습니다. 덤벨을 바닥에서부터 머리 위로 들어 올리는 스내치 동작과 박스를 넘어가며 버피를 하는 버피 박스 점프 오버, 단두 가지 동작으로 구성된 아주 간단한 운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덤벨 스내치는 10개에서 시작해 20개, 30개, 40개, 50개까지 늘어납니다. 덤벨 스내치 사이사이에 버피 박스 점프 오버 15개가 끼어들어있죠. 이걸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덤벨의 무게와 박스의 높이 정도뿐이지 개수는 동일합니다.


출처 - 크로스핏 게임즈 홈페이지


하단에 적혀있듯이 20분 안에 이 모든 종목을 수행해야 합니다. 별 게 아니라고 느껴질 수 있지만, 이게 참 별 거더라고요(...). 우선 덤벨 스내치를 30개까지 끝내도 절반도 오지 못한 겁니다. 30개까지 다 더해봐야 고작 60개고, 40개부터 50개까지는 총 90개를 해야 하니까요.


거기다 사이사이 끼어있는 버피 박스 점프 오버는 또 왜 이렇게 많은지, 심지어 50개 덤벨 스내치를 끝내고 나서도 마무리로 버피 박스 점프 오버까지. 16년도의 마지막 주차에 나온 운동이 다시 나왔다던데, 해보신 분들 사이에서는 탄성이 나왔을 겁니다. 이게 또 나온다고?!


고통의 순간들 돌아보기 (2)

21.2가 단연 최고로 힘들었지만, 다른 운동도 힘들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첫 번째로 공개되었던 21.1은 벽에 기댄 채 물구나무를 서서 말 그대로 벽을 걷는 '월 워크'라는 동작이 나왔는데, 평소에는 잘하지 않던 종류의 운동이라서 그런지 쉬울 것 같으면서도 엄청 힘들었습니다.


턱걸이 동작들과 역도 동작이 섞인 21.3, 그리고 데드리프트부터 클린에서 행 클린, 저크까지 역도 동작들을 한 번에 이어서 하는 21.4는 두 가지 운동을 연달아 수행해야 했습니다. 따로 떼어놓고 잰다고 해도 쉽지 않은 운동들이 더더욱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는 순간에는 부담스럽고 힘들었지만 하길 잘했다고. 사실 다음 해에 또 참여를 하게 될지는 아직 장담할 수 없지만, 대략적으로 알고 있던 자신의 수준을 좀 더 분명히 알 수 있게 된 것은 기쁜 일이었습니다. 함께 참여한 분들과 의욕을 불태우는 것도 좋았고요.


자신의 위치를 안다는 것

제 기록은 전 세계 137,471명 중 26,312위였습니다. 상위 80% 정도더군요. 며칠 전까지만 해도 82% 였는데 그새 기록이 다 올라와서 80%까지 밀렸습니다. 아시아에서는 8,196명 중 1,511위, 한국에서는 1,880명 중 416위였네요. 권역이나 지역 단위로 내려오면 몇 퍼센트에 해당하는지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아시아에서든 한국에서든 대략 18~22% 사이인 것 같습니다. 이제는 크로스핏 초보자는 탈출한 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이야기해봅니다. 사실 아직까지도 제 수준을 정확히는 잘 모르겠습니다. 엄밀한 기준으로 수준을 나누고 싶은 건 아니지만, 과연 나는 어느 정도일까를 알고 싶다고 해야 할까요.


제가 크로스핏을 좋아하는 건 경쟁 그 자체에 있지는 않습니다. 나 자신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고 있다는 감각이 좋아서, 아니, 그보다도 운동을 할 때만큼은 그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이 순간에 집중할 수 있어서 크로스핏이라는 운동을 좋아합니다.


좋아서 하는 운동

그렇습니다. 좋아서 시작한 크로스핏이었고, 어떻게 하다 보니 1년이 넘었습니다. 거기다가 세계 대회까지 나가게 되었죠. 세상 일이 참 그런 것 같습니다. 거창한 목표도 없이 시작한 일이었지만, 일단 발을 내딛고 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얼마나 멀리 와있는지. 그래서 어떻게든 시작하라고들 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만큼 '잘 시작하는 것'도 중요하겠죠. 무작정 시작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을 테니까요. 그래도 운동은 정말 잘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제 인생에서 후회하지 않는 것을 하나 꼽으라면 운동을, 그것도 크로스핏을 시작한 일일 겁니다. 크로스핏을 무작정 예찬하고 싶지는 않지만, 얼마나 많은 게 바뀌었는지 모릅니다.


무엇보다도 좋아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있다는 건 참 좋은 일 아닙니까.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좋아서 해본 일은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크로스핏만큼은 즐거워서 하고 있습니다. 뭐, 이제 와서 운동을 끊자니 그럴 수 없게 된 감도 없지 않아 있긴 하지만요.


끝으로

좀 더 빨리 후기를 쓰고 싶었으나, 이런저런 핑계로 글을 써두고 미루고를 반복하다가 마무리합니다. 아마 앞으로도 크로스핏을 계속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종종 크로스핏에 관한 글로 찾아뵈었으면 좋겠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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