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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Jun 17. 2021

사이드 프로젝트에 대해서

[오늘한편] 사이드 프로젝트

사이드 프로젝트라는 말이 참 그렇다.


남들이 좋다거나 대단하다고 이야기하는 걸 있는 그대로 좋게좋게 보지 못하는 성격이다보니, 꼭 한 번씩은 삐딱하게 바라보고는 한다. 하필 이번에는 사이드 프로젝트가 그 대상일 뿐이다.


애시당초 사이드 프로젝트라는 건 대체 뭘까.


메인에 두기는 그렇고, 딴짓처럼 하는 게 사이드 프로젝트인가? 처음부터 너무 열심히 하면 지레 포기하는 일이 흔하니까 일단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두자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너무 열심히 하지는 않는다는 말 같은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처음부터 열심히 하지 말 것.


이미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겠다 마음 먹은 순간부터가 '열심히 하겠다'는 선언이 아닌가. 자신이 하고 있던 일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이드 프로젝트 같은 것이 되어있을 수는 있겠지만, 시작부터 사이드 프로젝트라 명명했다면 이미 그건 사이드 프로젝트의 본질과 어울리지 않는 것 아닐까?


나는 사이드 프로젝트란 말이 가진 이 요상한 모순을 도무지 견딜 수가 없다. 그렇게 시작한 의구심이 한층 더 심해지면, 사이드 프로젝트라는 말 자체에 반감이 생기고 만다.


좋게좋게 생각하자면, 직장에만 매달리지 말고 이것도 저것도 적당히 해보라는 것 같지만, 이미 일과 운동만으로 하루가 그득 차버린 탓에 -물론 냉정하게 따지고 든다면 나의 일과에도 여유시간이 그렇게까지 없는 건 아니다.- 사이드 프로젝트가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그래,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자. 그런 의도겠지만 말이지. 말장난처럼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한술 더 뜨자면 요즘 자주 보이는 부캐라는 표현도 선뜻 이해가 가질 않는다. 이 표현도 사이드 프로젝트랑 다를 게 없다. 말 뿐인 말인데가 무엇보다 더 꺼림칙한 건, 도피처럼 보인다고 해야할까.


게임에서도 부캐라는 것들은 결국 본캐만으로는 부족한 것들을 채우기 위한 수단일 때가 많다. 그게 게임 내 재화가 되었든 혹은 새로 시작한 다른 유저들 속에서 우월감을 느끼고 싶어서든 말이다. 부캐의 본질은 그 이름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다.


차라리 자신에게 부족한 재화를 얻기 위한 수단이라면 양반이지, 구태여 부캐를 통해서 새로 시작한 유저들의 기를 죽이는 일이 얼마나 비일비재하던가. 물론 본캐에서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유저들과 플레이하는 건 굉장히 스트레스 받는 일이라는 걸 잘 알고, 그런 차원에서 부캐로 빠지는 심리를 모르는 것도 아니지만....


물론 한 사람에게 여러 페르소나가 있다고 하니, 그런 차원에서 '부캐'라는 말을 쓴 것일 게다. 그 맥락을 이해해보려고 해도, 영 탐탁치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


굳이 따지자면 글쓰기도 나에게 사이드 프로젝트일까? 나는 내 '부캐'를 만드는 건가?


나는 이런 말이 나 자신이 무언가에 충실하지 못함을 반증하는 것 같아 괜히 신경질이 나나 보다. 무엇이든 좋으니 하나라도 제대로 해보고 싶다. 그렇다고 남들에게 강요할 필요까진 없다. 그건 정말 이상한 거니까. 


글을 쓸 시간을 내지 못해서 -혹은 내질 않아서- 스트레스를 좀 받았나 싶다. 어딘가에서 사이드 프로젝트를 열심히 실천하고 있을 분들이 괜히 기분 상할 글을 썼나 싶어 후회가 되기도 하고. 쓰고 나서 보니 엄청나게 투덜거린 게 내 눈에도 보여서 민망하다.


그럼에도 사이드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뭔가 더 고민해봐야지 않나 싶다.


이 글은 언젠가 그 고민을 위한 기록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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