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오늘한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준희 Oct 14. 2021

적당히, 열심히 살자

[오늘한편] 2021.10.14

1. 

마지막 업로드 날짜가 9월 16일, 거의 한 달만에 글을 쓴다. 글을 못쓸 정도로 바쁜 것도 아니었는데, 뭐랄까, 평일에는 막상 쓰려고 해도 너무 늦은 시간일 때가 많았고, 주말은 너무 쏜살 같이 지나가서 도저히 짬이 나질 않았다고 변명해본다.


그래서 매일 같이 글을 쓰지는 못해도 - 사실 백수일 때, 매일 같이 써봤는데 며칠 지나면 쓸 말도 딱히 없다. -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 일단은 쓰자고 마음 먹었다. 기왕 마음을 먹었으니, 오늘 이렇게 또 쓴다.


2. 

나는 일기를 쓴다. 그런데 일기를 쓰다보면 사실 초등학교 때처럼 그날 있었던 일들만 담백하게 쓰게 된다. 출근을 했다. 운동을 했다. 이 두 가지가 가장 많이 나오고, 뭔가 더 해야할 것 같다는 생각에 일기의 마지막에 '좀 더 열심히 살자'는 말을 마침표처럼 쓰고는 한다. 그러나 정말 일과 운동만 했냐면 그렇지는 않을 것이고, 매일매일 조금씩 다른 나날들이지만 정작 일기에는 그런 내용이 채 담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대단히 다른 것마냥 꾸며쓸 정도로 특별한 일들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날의 감정, 혹은 거리의 풍경에 사소한 변화가 있을 뿐. 물론 하고 싶었던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단 한 번뿐인 순간들'이라는 이야기였다. 기왕 살 거라면, 매순간 특별하게 그리고 열심히 살고 싶다. 결국 오늘 일기에도 나는 또 다시 '좀 더 열심히 살자'고 쓸 것이다.


3.

만남과 이별에 대해서 생각한다. 나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헤어지는 것도 잘 하지 못하는데 아마 많은 사람을 만나보지 못해서, 헤어지는 것도 잘 하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이별이라는 행위는 '잘한다'와' 못한다'를 가르기 참 어렵지만, 최소한 내 스스로 납득가능한 이별을 두고 '잘한 이별'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별이 납득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따라온다. 어떤 이별이든 불가항력적이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이별해야할 때가 있고, 나도 모르게 이별할 때도 있고, 의외로 내가 이별해야지 결심해서 이별하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 아닐까. 그러므로 '납득할 수 있는 이별' 같은 건 없다. 형용모순인 셈이다.


그래서 이별의 순간이 찾아오기 전부터 미리 겁을 집어먹나보다. 헤어지면 어떻게 하지. 이 사람, 이 공간, 이 시간과 이별하는 것은 두렵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이별해야하고, 그래서 더 지금 이순간에 충실해야지 않나 싶다. 그 무엇이든 헤어질 순간은 온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 당장이나 내일은 아닐 것이고, 그러니 최선을 다해야한다.


인간관계에 한정된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었다. 내가 다니는 헬스장 - 크로스핏 체육관이니 크로스핏식 명칭으로는 '박스'가 정확하겠으나, 이 명칭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테니-에서 알고 만나게 된 사람들이 참 좋고, 헬스장의 분위기도 좋아서 이곳을 좀처럼 떠나기가 쉽지 않아서 문득 내가 이곳을 떠나게 될 순간 어떤 감정일지를 상상하니 그 상실감을 뭐라 말하기가 어려웠다.


벌써부터 이별을 준비할 필요는 없겠지만, 언젠가 떠나야할 순간이 오기 전까지 이곳에 있는 사람들과 더 잘 지내야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 2번의 이야기와 이어지지만, 역시나 '좀 더 열심히 살자'고 다짐한다.


4. 

그럼에도 너무 열심히 살 수는 없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인데, 너무 열심히 써봐야 한 글자도 쓰지 못한다. 일단은 쓰는 것처럼, 그냥 살되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순간 정신을 차리는 정도로, 열심히 살자.


5.

그래, 내일도 좀 더 열심히 살자

매거진의 이전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산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