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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Nov 22. 2021

잠시 멈춤

[오늘한편] 멈추기

1.

정신없이 살고 있다. 어떻게 아침에 눈을 뜨고, 집에 돌아와 잠에 드는지 모를 정도다. 바빠서는 아니다.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를 만큼, 빠르게 시간이 지나갔을 뿐이다. 일을 하고, 운동을 하고, 틈틈이 게임을 하고. 매 순간을 무언가로 채우고는 있는데, 삶이 충만한 느낌은 아니다.


2.

뭘 하지 않아도 충만한 것 같은 날들이 있다. 그런 날들이 어떠했는지 돌이켜보면,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나 자신이 알고 있을 때가 아니었나 싶다. 할 일을 찾아야 했던 백수 시절에도 비슷했는데, 체크리스트를 만들어서 행동들을 채워본들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다. 남들은 열심히 살고 있는데 나는 이래도 되나 싶은 불안감에 쫓겨서 허둥대는 모양에 가까웠을 뿐이다.


특별히 많은 일을 하지 않더라도 어떤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내 스스로 알고 있고, 그 일을 하는 순간에 충분히 몰입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을 때만 제대로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살아지는 느낌이지 살고 있다는 느낌은 아니다. 그런 순간에는 모든 게 엉망진창이라는 생각만 든다.


3.

삶이 망가졌다는 기분이 들 때, 그냥 모든 걸 다 놓아버리고 싶은 충동이 찾아온다. 예전에는 아주 쉽게 포기해버리고는 했다. 무엇이든 시작하기가 어렵고, 그걸 유지하는 것은 더욱더 힘든데 포기하고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는 건 몹시 쉽다. 그래서 아주 쉽게 처음으로 돌아가고는 했다. 운동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나가지 않는다거나, 아침 일찍 일어나겠다고 결심하고서는 이틀도 지나지 않아서 밤을 새우고 낮이 되어서야 잠든다던가.


그때 당시의 내가 한 가지 오해하고 있었던 것은, 변화의 의미 그 자체였다. 인간이 변하기로 하면, 그 순간부터 이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져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어떻게 사람이 하루아침에 변하겠는가. 그럼에도 남들에겐 납득 가능한 기준이 자신에게는 통용되지 않을 때가 있다. 큰맘 먹고 변화를 시도하고 또 실패할 때마다, 나는 전부 다 때려치우고 싶었고 그 순간 주저 없이 시도의 끈 자체를 놓아버렸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다. 나이가 좀 더 들어서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한 가지 깨달은 바가 있어서다. 삶이란 원래 엉망진창이고, 우리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4.

삶은 내 뜻대로 된 적이 별로 없다. 그리고 너무나 쉽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 무언가 좋은 방향으로 바꾸려는 시도가 아주 쉽게 무산되듯이, 나빠지려는 것 역시도 다시 돌릴 수 있다. 삶에 대한 진실이랄 것까지는 아니지만, 우리는 얼마든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그래서 잠깐 멈춰보기로 했다.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면, 자신은 글러먹었다고 자책하면서 발걸음을 계속해서 옮길 것이 아니라 일단 멈춰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설령 돌아갈 길이 아득해 보이더라도, 지금 멈춰 서지 않으면 언젠가 더 크게 후회할 테니까. 너무 자주 멈추면 나아가지를 못하니 아주 가끔씩 멈칫멈칫 지난 하루와 나날들을 돌아본다. 


5.

문제는 왜 하필 그 멈춤의 순간이 새벽이냐는 것이다. 잠들어도 모자랄 마당에, 뭔가 시작을 앞두고 있어서 불안한 것인지 나는 새벽이 되어서야 내 삶을 멈춰놓는다. 이대로 가도 정말 좋은 것일지 스스로 물어보지만 그 답을 내어놓지 못한 채 별 수없이 잠을 청한다. 그렇게 또 나는 이 하루를 살아낼 것이다. 혹은 살아지거나.


이 새벽, 나는 또 어떻게 살아야 좋을지 생각하며 잠깐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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