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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Oct 31. 2021

새로운 경험의 순간들

[오늘한편] 10월 마지막 한 주를 보내며.

1.

나는 단순함을 사랑한다. 


스무 살 즈음에는 내 삶이 복잡한 사건들로 가득하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따분하리만큼 평온한 삶이야말로 가장 큰 축복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인생이 어디 평탄하게만 흘러갈 수 있겠는가.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닥쳐오기도 하는 법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배우기도 한다.


2.

지난 23일, 내가 다니고 있는 크로스핏 박스가 이사를 하게 되어 10일간 휴관에 들어갔다. 더 넓은 곳으로 가게 되었으니 기쁜 마음으로 재개장을 기다리면 그만이었지만, 그동안 운동을 어디서 하나 막막했다. 한참 고민하다가 전 직장 동료분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그분 역시 크로스핏 박스를 다니고 있어 드랍인 - 크로스핏에서는 일일 체험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이 가능하냐고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감사하게도 흔쾌히 가능하다고 이야기해 주셔서 23일 날 다른 박스에서 처음 뵙는 분들과 운동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다른 박스 분들과도 안면을 튼 덕분에 남은 9일 중에도 틈틈이 드랍인을 다니며 무사히 운동을 다닐 수 있었다. 그동안 크로스핏 박스라면 내가 다니던 곳인 크로스핏 리스펙트밖에 몰랐지만, 이번에 크로스핏 투혼과 크로스핏 스팀펑크 2곳에 드랍인을 다녀오면서 느낀 바가 있었다. 


역시나 사람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고, 가끔씩은 지금 머무른 곳에서 떠나보기도 해야 한다는 것. 


3.

오랜만에 전 직장 동료분을 만났고, 그 덕분에 새로운 사람들과 알게 되었다. 


각자의 일을 하면서 운동을 하는 분들을 만나니 동지애(?) 같은 감정도 생겼고, 나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 싶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게 참 감사할 일이다 싶고, 역시 할 수 있을 때 열심히 하자고 다짐했다. 


새로운 장소에서 운동을 해본 것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다시 한번 점검해 보게 되었다고 할까. 구태의연한 말이지만 정말로 견문이 넓어졌다고 해야 하나. 다른 박스는 어떻게 수업이 진행되는지, 나는 어느 정도의 실력인지를 점검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미처 고치지 못했던 습관을 완전한 제3자의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었던 건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든 값진 경험이었다.


물론 다른 곳에 가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깨달을 수 있겠지만, 때로는 직접 겪어봐야 아는 것도 있는 법이니. 이게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인가 보다. 백문이 불여일견, 같은 말을 주워섬기지 않아도 결국은 자기가 깨달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새로운 사람을 만난 덕분에 박스가 쉬는 동안 다른 곳에 드랍인도 갈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모처럼 만난 전 직장 동료분과 이야기하면서 서로가 고민하고 있는 것도 나눠볼 수 있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아마도 고민을 계속해야 하겠지만, 그에 대한 답도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얻을 수 있지 않을지.


4.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크로스핏 리스펙에서도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아마도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떤 취미로 사람과 이렇게까지 많이 만나본 적은 드물 것이다.  시간대에 따라 자주 나오는 분들은 얼굴을 익히기 마련이어서 하루 이틀 인사를 나누다 보면 '아, 그 사람'하고 알게 모르게 친근감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더욱이 서로가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하여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운동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간관계가 형성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내가 엄청나게 노력하지 않더라도, 그런 환경이 갖춰진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리라.


여전히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어나가는 게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운동을 하게 되면서 사람들과 만난 덕분에 예전과 비하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이렇게 일주일 남짓 한 시간 동안 떠나 있다 보니 '집'이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도 깨닫게 되었다.


익숙한 분위기와 익숙한 장소에서 좀 더 운동할 맛이 난다고 해야 하나. 똥개도 홈그라운드에서는 먹고 들어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던 것 같은데,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새로운 장소에서는 아무래도 괜히 더 긴장하게 되고, 제 실력이 안 나오는 것 같은 기분이다. '기분 탓'이라고 하기에 우리는 너무나 자주 '기분'에 휘둘리니까.


역시 이런 것도 떠나봐야 아는 법이다.


5.

예전 같았으면 체육관이 잠깐 쉬는 동안 어디서 운동해야 하나 알아본다고 전전긍긍하지도 않았을 텐데, 나 자신도 변하기는 변했구나 싶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일을 정리해서 좀 더 괜찮은 글을 써보고 싶었는데, 막상 쓰다 보니 두서없는 글이 되어버려 아쉽기 그지없다.


이렇게라도 글을 쓰는 이유는 그냥 흘려보내기엔 아쉬운 한 주기도 했고, 무엇보다 금요일 코로나 백신 2차 접종을 하고 토요일 내내 누워있다가 일요일인 오늘이 되어서야 겨우 정신을 차린 관계로 이렇게 주말이 끝나는 게 허탈해서 그렇다.


코로나 2차 백신 접종도 새로운 경험이라면 새로운 경험이겠지만 솔직히 2번 경험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도 일종의 깨달음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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