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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Dec 29. 2021

무언가의 마무리

[오늘한편] 2021.12.28

1.

2019년쯤부터 글씨교정을 해왔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백수로 지내던 시절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시작한 일 중에 하나였다. 예전에도 몇 번 글씨에 관한 글을 썼을 만큼, 나는 글씨에 관심이 많았다. 글씨를 잘 쓰면 괜히 그 사람이 멋있어 보이지 않나. 나만의 필체라는 말도 얼마나 매력적인지. 다른 사람이 감히 따라 하지 못하는 나만의 것.


뭐, 이제 와서 이유를 갖다 붙이는 셈이지만 여하간 그랬다. 그래서 글씨 교정 책을 사서 반년 정도 따라 썼다. 나름 글씨체가 달라진 것 같아서 다시 혼자서 시를 필사하던 중에 글씨 교정은 되다만 상황에서 도리어 글씨체가 망가지는 것 같아서 새로운 글씨 교정 책을 사서 1년 가까이 썼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1년이나 붙잡을 것이라곤 상상도 하지 않았으나 하루 짬짬이 하다 보니 그만한 시간이 걸렸나 보다.


자음 쓰기부터 시작한 첫날. 정확히 1년 전 즈음이다.


2.

사실 글씨 교정을 시작한 순간에도 이걸 이렇게 오래 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글씨 교정이라는 게 뭐 하루아침에 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30년 넘게 써온 글씨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다면 굳이 시간을 들이고 책까지 사는 고생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2년이라는 시간을 들여서 글씨가 아주 조금 나아진 것 같은데, 나와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에게 글씨체를 보여주면 그리 달라진 것도 없는 가보다.


그럼 나는 대체 왜 2년이라는 시간을 들여가면서까지 글씨 교정을 한 걸까. 실로 허탈해지지 않을 수가 없는데, 마냥 그렇지도 않다. 왜냐하면 글씨 교정을 한다는 건 명목에 가까워졌고 어느 순간부터 루틴을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5분 내지는 10분간 글씨 교정을 하고 있자면 하루가 마무리되는 그런 느낌이었다.


밤이니까 글씨 교정을 한다, 그리고 일기를 쓰고, 하루가 끝. 그래서 2번째 글씨 교정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채웠을 때, 그 기분은 뭐랄까, 해방감과 더불어서 이제는 뭐하나 그런 느낌이 들었다. 요사이에는 글씨교정을 거의 5일에 한 번씩 하는 수준으로 띄엄띄엄하다 보니 한참 열심히 글씨 교정을 하던 때만큼의 애착은 남아있지 않지만, 뭔가 하나를 끝내고 나니 아쉽기 그지없다고 해야 하나.


어제부로 더 이상 글씨 교정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3.



마침 또 2021년이 끝나가는 시점. 뭔가 끝이 난다는 것은 끝나가고 있는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건 물론, 무언가 시작할 새로운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관성이 붙어서 이어오던 글씨교정을 끝내고 보니 나는 이걸 앞으로도 계속해야 할까 싶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다른 것들도 별다른 목적 없이 그저 해오고 있으니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꼭 거창한 목적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하루하루를 그저 살기 위해서 살고, 의미 없이 보냈던 건 아닌지. 뭔가 방향을 잡지 못한 채 제자리를 뱅뱅 맴돌고 있는 느낌이다. 걷고는 있지만, 어디론가 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멈춰있으면 불안하니까 걷는 느낌. 그러다 제풀에 지쳐서 주저앉은 다음 멍하니 도대체 왜 걸었던 것인가를 고민한다.



그래도 글씨 교정이라도 한 게 어딘가. 조금이지만 글씨가 나아지기는 했겠지. 여하간 나는 또 다른 것을 시작해야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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