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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Mar 02. 2022

때로는 벽에 부딪혀봐야 한다

2022년 3월 1일 화요일(605일째, D+889)

1.

삼일절에도 어김없이 박스가 문을 열었다. 공휴일이니만큼 평소와 같이 오전부터 저녁까지 매시간 수업이 있는 것은 아니고, 카페를 통해 운동시간을 공지해 주시는데 삼일절은 저녁 7시 반이 유일한 수업 시간이었다. 물론 본격적인 수업이라기보다는 매니저님, 코치님과 함께 운동을 한다는 개념에 가깝다.


하루 종일 잠만 자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저녁에 집을 나섰다. 그리고 삼일절 와드를 본 순간, 만만치 않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심지어 매니저님과 함께 운동을 하게 되었는데, 과연 내가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그리고 그 걱정은 현실이 되고야 마는데.


2.

삼일절 와드는 다음과 같다.


3.1절 운동

Team of 2

Buy-in 1919m Rowing

31 Snatch 135lbs

31 C.2.B

31 Double Under

31 Clean 135lbs

31 T2B

31 Bar Touch Burpee

31 Shoulder to Overhead

31 Ring Muscle up

31 Jump Squat

31 Deadlift

31 Hand Stand Push up

31 Pull up

31 Over head Squat

31 Push up

31 Wall Ball Shot

31 Thruter

31 Sit up

31 Bar over Burpee

31m Hand Stand Walk

Buy-out : 1919m Run together


시작에 앞서 매니저님에게 몇 개씩 하실 것이지 조심스레 물어봤다. 이유는 하나. 만약 한 사람이 한 번에 15개를 하고, 그다음 사람이 이어서 16개를 해야 하면 내가 도저히 따라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매니저님은 1개씩 하자고 말씀해 주셨다. 아마도 나를 배려해서 그렇게 말씀해 주신 것일 텐데 문제는 그 1개씩도 쉽지 않았다는 거.


스내치나 클린까지는 어찌어찌 따라갔는데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맨몸 운동 동작들도 여러 개를 이어서 하기가 어찌나 힘들던지. 한 번에 16개를 끝낸 동작을 손에 꼽을 수준이었다. 심지어 뒤쪽의 링 머슬업이나, 쓰러스터는 아예 절반을 다 하지도 못해서 5개를 매니저님이 더 해주셨다. 그렇게 개수를 줄였어도 나는 이 악물고 끝내야 했지만.


와드를 하는 내내 동작을 수행하다가 퍼지거나, 물 마시느라 자리를 비우면 그때마다 호통이 날아들었다. 중간부터는 이러다가 죽겠구나 싶었는데 어떻게 어떻게 끝내긴 했다. 마지막에 1,900m를 뛸 때는 중간부터 쥐가 나서 진짜 어떻게 뛰었는지도 모르겠더라. 다 끝나고 나서도 정신을 차리질 못해서 바닥에 한참을 누워있었는데, 아직 내가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3.

역시 사람은 자기보다 실력이 뛰어난 사람과 해봐야 자신의 위치를 더 정확하게 알게 된다. 운동을 하고 있는 순간에는 엄청난 고통을 맛봐야 했지만 내가 무엇이 부족하고, 언제 나가떨어지는지 제대로 알게 됐다고 해야 하나. 이번에 느낀 점 중에 하나는 내가 긴 호흡의 운동을 제대로 수행하질 못한다는 점이었다.


지난 2년 동안에도 종종 깨닫곤 했던 사실이라 아주 새로울 건 없지만, 유난히 긴 호흡의 운동에 약하다. 다른 사람, 특히 나보다 실력이 뛰어난 사람과 함께하면 더더욱. 당연하다면 당연한가? 그러나 남들에 비해서도 좀 심한 것 같아서 말이다. 누구나 다 운동시간이 길어지면 힘들어하지만, 나는 유난히 빨리 퍼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단순히 '못한다'라고 말하고 끝낼 것이 아니라, 왜 시간이 길어지거나 실력 차이가 나는 사람과 함께 할 때 더 빠르게 퍼지는지 고민해 보게 된다. 동작마다 호흡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고, 쫓기는 듯한 느낌이 들면 침착함을 잃고 급하게 동작을 수행하느라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둘 다 해당될 가능성도 크다. 급해지니까 호흡도 덩달아 흐트러지는 것일 테지.


나 혼자 운동을 하는 거라면 내 템포에 맞춰서 가면 되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운동은 실력도 실력이거니와 서로의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훨씬 더 힘들 수밖에 없다. 그것을 잘 조율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내가 끌려가는 타입이다 보니, 조정을 하지 못해서 더 극단적으로 퍼지게 된 것이 아닐지. 다음부터는 상대방의 특징을 잘 파악하고, 내가 먼저 퍼지는 곤란한 결말을 잘 피해봐야겠다.


4.

오늘의 결론

1. 지피지기 백전불태.

2. 실력을 더 키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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