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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Mar 08. 2022

좌절감이 사람을 키운다

2022년 3월 7일 월요일(610일째, D+894)

1.

실패는 쓰다. 실패 자체로도 괴롭지만, 나도 모르게 남들과 비교하면 그 고통은 더 커진다. 내가 보잘것없이 느껴지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좌절감이 찾아온다. 마치 높은 것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한없이 아래로 떨어지는 기분. 그 수렁에서 빠져나오기란 얼마나 힘든가. 종종 이런 상황을 두고 '늪에 빠진 기분이 든다'라고 하는데, 매우 적확하다. 그 기분에 잠겨있을수록 더 깊게 빠지기만 하니까.


크로스핏 일기에서 웬 땅 파는 소리나 하는가 의구심이 드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2.

2022 크로스핏 게임즈 오픈의 두 번째 와드를 측정하기 위해, 야근이 끝나자마자 부랴부랴 박스로 향했다. 거리두기가 완화돼서 얼마나 다행인지 그러지 않았다면 오늘 측정을 못했을 뻔했다. 3번째 측정이라 사실 기록이 엄청나게 좋아질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지난번 기록에서 단 하나라도 더 해보자는 심산이었다.


오늘까지 포함해 두 번째 측정을 마친 회원분들의 기록을 보니, 첫 번째 기록보다 좋아진 분들이 대다수라서 나도 늘리지 않으면 여러모로 순위가 밀리기도 하는 상황이었다. 마음속으로 각오를 다지며 스트레칭과 워밍업을 끝내고 세 번째 측정에 들어갔다. 그리고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2022 Crossfit Games Open wod 22.2


for time : 131


1-2-3-4-5-6-7-8-9-10-9-8-7-6-5-4-3-2-1

Deadlift 225lbs

Bar facing Burpee


Time cap : 10 min


지난번에 비해 2개 덜한 131개로 마무리했다. 아무래도 이틀 연속 22.2를 했던 여파가 남아있었는지, 9개쯤부터 데드리프트를 끝내는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 그런데 버피까지 힘들 줄이야. 지난번과 거의 비슷하거나 느린 시간에 2번째 8개 데드리프트에 들어갔고, 어떻게든 데드리프트를 들어보려고 했지만 호흡은 호흡대로 털리고, 허리도 이미 말을 안 들어서 그대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끝난 순간에는 힘들어서 아쉽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들이 조금씩 밀려오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더 잘하고 싶었는데 그 순간 너무 쉽게 포기한 건 아닌지 후회도 들고, 지금까지 내가 운동을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던 게 착각은 아니었는지, 또 이렇게까지 분해할 일도 아닌데 괜히 남들과 비교해서 너무 책망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감정이 수시로 널을 뛰었다.


내가 또 이렇게 속상해하는 게 남들의 노력을 무시하는 것처럼 비치지는 않을까 싶어서, 속으로 끙끙 앓다가 이미 지나간 일에 이렇게까지 감정을 쓸 게 또 무언가 싶어서 이 글을 쓰면서 다 털어내려고 한다. 사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절대로 다 털어내지는 못하겠지만, 일단 써두고 나면 나중에 이 글을 볼 때 부끄러워서라도 침울해하진 않을 것 같다.


3.

실제로 해보진 않은 게임이라 인터넷에서 짤방으로 본 게 전부지만, 삼국지 게임에서 유래한 유명한 격언이 있다.



퇴각할 때 하는 대사라, 일종의 '웃음벨'이 된 모양이지만 이 말이 주는 묘한 위안 같은 것이 있다. 분명히 좌절은 매우 속 쓰린 경험이다.하지만 좌절한 채로 멈추지만 않는다면 분명히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언제고 잘할 수 없는 노릇이고, 오늘 하루만 운동을 하고 말 것도 아니다. 비록 이번 와드를 내 예상보다 잘 마무리하진 못했지만 아직 세 번째 와드도 남아있고 앞으로도 많은 날들이 남아있다.


그러니 오늘의 이 기분을 자양분으로 삼아서 더 성숙한 크로스피터가 되어보려고 한다. 한 편으론 진짜 크로스핏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땅을 파나 싶기도 하고, 진짜로 오늘의 결과가 분하다면 더 갈고 닦아서 다음에 더 잘해야겠지. 자신의 좌절을 지나치게 과장할 필요도 없다. 잠시 흔들리더라도 금세 훌훌 털고 일어설 수 있을만큼 강해지고 싶다.


4.

오늘의 결론

1. 좌절감이 크로스피터를 키우는 것이다.

2. 일희일비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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