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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Apr 03. 2019

[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4.2

22. 일기


여러분은 일기를 쓰시나요? 초등학생 때는 쓰셨을지도 모르겠네요. 원해서 쓰신 분도 있을 테고, 선생님께 검사를 받아야 하니 억지로 썼던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그러나 어떤 쪽이셨든 그 시절이 지나고서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자연스레 일기를 쓰지 않게 되셨을 겁니다. 당장 저만 해도 그랬으니까요. 그 이후로도 몇 번씩 일기를 써보려 노력은 해봤는데, 목적의식이 없어서 그런지 얼마 못가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올해 1월부터 다시 한번 쓰기 시작해 매일매일 이어오다 보니 벌써 3개월째를 맞이했습니다. 과연 이번에는 얼마나 더 유지할 수 있을는지. 그래도 일상을 기록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 수면시간 조절을 위해 병원을 다니면서부터 잠드는 시간과 일어나는 시간을 기록하기 위한 목적을 겸하고 있어 좀 더 끌고 갈 수 있을 듯도 합니다. 일기를 쓸 때의 마음가짐도 여러모로 달라지기도 했구요.


일기, 그 말대로 하루의 기록. 우리는 왜 기록을 남길까요?


가장 큰 변화는 부담이 사라졌다는 겁니다. 예전에는 일기를 쓴다고 하면, 시작하고 며칠간은 의욕에 불타 그날 떠오른 생각들을 모두 풀어내려고 했습니다. 지금 브런치에 올리는 글이랑 어떤 면에서는 비슷했지요. 하루 이틀은 가능했는데 그 기세가 한 달, 아니 일주일도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문장을 그럴싸하게 쓰려고 하다 보니 시간이 너무 걸렸고, 펜으로 써서 그런지 손이 아팠습니다. 키보드로 일기를 쓴다손 쳐도 또 다른 문제가 있었습니다. 일기라는 게 남들에게 보여줄 것도 아니고 자기만 보고 그만인 글이지만, 이게 또 괜히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하게 될 때가 있거든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굳이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말면 될 걸 그 고생에, 시간까지 들어가며 해야 하나 의구심이 드는 거죠.


군대에서도 일기를 쓰곤 했는데, 일병 때는 정말 열심히 쓰다가 상병이 되고부터 서서히 분량이 줄어들더니 나중에는 안 쓰니만 못한 글이 되었습니다. 이게 일기를 자꾸 뭔가 어마어마하게 대단한 일처럼 여기니까 부담은 심해지고, 잘 쓸 필요도 없는 글에 괜한 공을 들이다 보니 제풀에 지쳐서 포기하게 되는 거죠. 지금은 일기에 그날 있었던 일만 적고 맙니다. 생각이나 이런 건 언젠가 따로 정리하겠죠. 가령 브런치에 매일 같이 올리는 글도 그 연장이고요. '하루에 짧은 글 한 편'도 각 잡고(?) 쓰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이미 1시간 가까이 시간을 들이는 데다 여기서 더 빡빡해지면 금세 때려치우고 말 테니까요. 뭐든 지나친 건 좋지 않은 법이죠. 긴장을 놓치 않는 선에서 적당히 느슨하게. 그런 모토로 글을 쓰려 합니다.


하여간 일기는 여러모로 그 날 있었던 일을 돌이켜 보고,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언제 자고 언제 일어났는지 기록하기 위한 용도에 가까운 지라 별 생각없이 쓰고 있습니다. 다만 그날그날 적어야 하는데 밀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지금도 며칠 정도 귀찮다고 넘겨버리는 바람에 밀린 일기를 처리해야하는 상황이지요. 초등학생 시절로 돌아간 것 같네요. 검사를 할 선생님도 없으니, 안 써도 그만이긴 합니다만.  뭔가 이대로 때려치자니 해온 게 있어서 나름대로 습관이 된 듯도 합니다. 아마 이 글을 마무리하고 부랴부랴 일기장에 뭘 했었는지 몇 글자 적은 다음 잠을 청할 듯 합니다. 그러면 새벽 6시 정도 되어있겠군요. 이쯤 되면 제가 대체 뭘하고 있나 다시 한 번 의문이 들긴 하네요.


그럼에도 기록을 포기하지 않는 건, 먼 훗날이 되더라도 지금의 감정과 생각이 어떠했는지 분명히 해두고 싶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해묵은 말이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틀린 것도 아니죠. 한 번 뿐인 오늘의 기억과 생각을 오늘만 가능한 언어로 정리하자. 그런 마음을 가지고 설혹 귀찮더라도 일기장을 펼쳐 문장을 써나갑니다. 거창할 필요도 없지 않습니까. 초등학교 때처럼 투박한 문장으로 쓰면 또 어떻습니까. 오늘은 늦잠을 잤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하루종일 게임을 했다. 새벽이 다 되어서야 잠에 들었다. 재미있었다. 이런, 오늘 제 일기를 보여드린 셈이 되었군요. 여러분들도 짧게라도 몇 문장 남겨보시길. 혹시 압니까. 나중에 그러길 잘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죠. 모쪼록 좋은 하루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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