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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Mar 20. 2019

[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3.20

12. 다시 하기.

'하루에 짧은 글 한 편'을 나흘째가 되어서야 다시금 시작합니다. 지난 17일 날은 울산에 내려가 친한 동생들과 만나 모처럼 또 얼큰하게 취할 때까지 술을 마셨더랬지요. 그러고 그 날 새벽쯤에 안간힘을 다해 글을 올렸습니다. 맨 정신도 아닌 상황에서 평소에도 불편하기 짝이 없었던 핸드폰 자판으로 글을 쓰려니 죽을 맛이었지만, 13일 날 쓴 작심삼일에 대한 글도 그렇고 불과 16일 날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자 피시방에서 글을 쓴다고 결심 운운한 글을 써놓은 참이라 어떻게든 써야겠다는 생각에 한 자 한 자 어렵게 이어 붙이며 글을 썼습니다. 피곤하다고 잠들었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 어떻게 글을 완성했나 신기한 노릇이어서, 글의 말미에 노력이 가상하다고 자화자찬을 했지만, 막상 다음날 정신을 차리고 글을 확인해보니 오탈자는 물론, 비문 투성이에 수준 미달인 글을 올려놓고 그렇게 말했나 싶어 부끄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결국 17일 글은 도저히 아니다 싶어 발행을 취소했고, 18일도 숙취로 하루 종일 고생해서 글을 쓰려다가 말고 19일도 서울에 올라가야 하니 쉬자고 생각하고 건너뛰었습니다. 참말이지 핑계 없는 무덤 없다더니, 갖은 이유를 만들어가며 3일쯤 글을 쓰지 않으니 이대로 때려치울까 싶다가 이제와 그러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싶어 키보드 앞에 앉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언제나 이렇게 다시 시작하는 것이 괜히 부끄러워서 많은 일들을 그만둬왔던 것 같습니다. 하루 건너뛰더라도, 설령 그 기간이 이틀 그리고 사흘이 되어도 다시 한번 할 수 있는 게 정말 용기 있는 일일 겁니다. 그러나 성실한 자신의 이미지에 경도되어, 매일 해오던 게 끊겼으니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지레 결론을 내려버리곤 했습니다.


모자란 글이라도 내놓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겠노라고 말했지만, 막상 자신이 보기에도 부끄러운 글을 쓰고 보니 말과 행동이 달라지더군요. 완성도를 떠나서 그날그날 글을 내놓기만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고민도 들었습니다. 글의 완성도라는 건 객관적으로 따지기도 힘들고 그래서 자기만족에 불과하지만, 매일매일 쓰기만 하는 것에 만족하는 것도 자기만족일 따름이지요. 그렇게 괜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그냥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집니다. 애초에 블로그라는 것도 그래요. 누군가 글을 봐줬으면 좋겠다는 작은 욕심에서 시작했다가, 자꾸만 그날의 방문자 수치나 게시글 조회수 같은 것이 신경 쓰이고, 그러다 보면 이걸 내가 왜 하고 있나, 당초의 의도와 멀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공허해집니다.


꾸준함이라는 게 어째서 미덕인지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급작스런 행사나 여행과 같은 특별한 일로 잠깐 주변이 달라지더라도 언제든 일상으로 돌아와 하던 일을 그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늘 하던 대로 한다는 게 말이야 쉽지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니까요. 더욱이 어설프게 완벽주의에 빠진, 당장 저 같은 사람은 다시 시작하면 되는 것도, 하루 정도 어쩌다 못하게 되면 괜히 모든 걸 망쳤다는 기분에 잘하던 것도 모조리 그만두려 드는 버릇이 있으니까요. 그냥 다시 하기만 하면 되는 건데 말이죠. 그러나 완벽함을 추구하다 보면, 완벽한 자기 자신의 이미지가 깨진 순간을 견디지 못하는 거지요. 일종의 결벽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완벽하다는 게 없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듯, 모든 걸 흠결 없이 해낸다는 것도 일종의 환상이겠지요.


어쩌면 오늘 쓴 글은 완벽주의에 대한 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의 주제가 되는 단어를 하나 정하는 것도 항상 쉽지가 않네요. 그래도 오늘 정말로 중요한 키워드는 '다시 한 번'이라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이렇게 또 한 편 올려봅니다. 평소처럼 미적거리다가 새벽이 다 되어서 올리지 않고, 초저녁에 허심탄회하게 느낀 바를 이야기해봅니다. 혹시 글을 기다려주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하다 말씀을 드립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조바심 내지 말고 오늘 하루부터 또 한 번 매일매일 노력하겠습니다. 하루아침에 달라지진 않아도, 쌓이고 쌓이다 보면 또 달라지겠지요. 날이 흐려서 조금 울적한 기분이 드는 하루이지만, 벌써 끝이 나갑니다. 부디 오늘 하루도 좋은 하루이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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