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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Apr 13. 2019

[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4.12

29. 일상


어째 꽃구경들은 좀 하셨나요. 춘삼월도 다 지났고 벌써 4월 중순이지만 여전히 꽃구경을 하기엔 괜찮은 듯합니다. 꽃잎이 떨어져 군데군데 푸른 잎이 돋은 나무도 있지만, 여즉 꽃을 활짝 피우고 있는 녀석들도 더러 있으니까요. 꽃이 한참 만개했을 때는 집안에만 있느라 제대로 구경도 못했지만, 어쩌다 한 번씩 밖에 나갈 때마다 오며 가며 거리에 피어있는 꽃나무를 보면 괜히 감격하게 됩니다. 평소에는 의식하지 못했던 계절감 같은 게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요. 뭐라 말로는 다 설명하기 힘든 감각에 절로 탄복하게 됩니다.


이맘때면 경희대는 벚꽃이 만개해있어 정말 예쁘긴 합니다.


예전에는 꽃이 피어도 별다른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계절이 바뀐다고 해봐야 더워지고 추워지고 그 정도 차이가 전부였죠. 꽃이야 피든 말든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꽃이 피고 지는 것처럼, 순간순간의 감각이 아주 소중하다는 걸 어느 순간 문득 깨달았습니다. 물론 계절도 풍경도 반복되기에, 그러한 일상의 의미는 서서히 퇴색되기 마련입니다.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는 데에 몰두하게 되면 무감각해지죠. 어린 시절의 저는 시간이 빨리 흐르기만을 원했던지라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작년 2학기에 수강했던 강의들이 계기를 마련해주었습니다. 교양 강의 교수님이 주변의 꽃을 보고 린네의 분류 중 어디에 속하는지 알아보라고 과제를 내주셨는데, 엄밀함을 요구하진 않으셨습니다. 한 번 주변에 관심을 가져보라는 의도에서 내주신 거겠죠. 그 과제를 하면서 꽃을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또 다른 강의에서 교수님이 내주신 과제도 의미가 컸습니다. 그날그날 인상적이었던 것을 기록하고 학기말에 제출하라며 과제를 내주셨는데, 그 이후 주변의 풍경을 눈에 담아두려고 노력하게 되었지요.


별생각 없이 지나치던 풍경을 의식적으로 들여다보려 하자, 생각보다 많은 게 달라졌습니다. 계절이 바뀌면 꽃이 핀다는 당연한 사실도 경이롭게 느껴지게 되었죠. 생각해보면 그렇습니다. 저는 오늘이 끝나면 당연히 내일이 올 것이라고 믿으며, 계절이 바뀌면 꽃이 피고 지는 게 자연스럽다고 마음 한 편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절대적인 건 없고, 당연한 것도 없지 않습니까. 하물며 이 일상이 정말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데도 그런 것들을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있습니다.


하여간 꽃이 전부 지기 전에 꽃을 봐 두어서 다행입니다. 백수로 지내는 것도 좋지만 계속 이러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취업 준비를 하는 시늉이라도 하려고 증명사진을 찍으러 나갔는데 그 김에 학교에 들렀죠. 많은 분들이 꽃구경을 하러 나오셨더군요.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찍는 이들을 보며 예전이라면 왜들 그러나 이해를 못한 채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겠지만 오늘은 좀 달랐습니다. 이 계절을 떠나보내는 시점에서 내년에 다시 올 봄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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