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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May 13. 2019

마흔한 번째, 제대로 본다는 것.

[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년 5월 13일


오늘도 병원을 다녀왔습니다. 올해 초부터 다니기 시작했으니 벌써 10번도 넘게 왔다 갔다 했군요. 집에서 병원까지 이어지는 길은 이제 익숙하다 못해 새로울 것이라고는 하나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그러나 신경 쓰지 않아서 모를 뿐, 무엇 하나도 이전과 같을 수 없죠. 한 달 전만 해도 영업했던 곳이 폐점해 있거나 새로이 영업을 시작한 곳도 있습니다. 또한 그 날의 시간과 계절에 따라 거리의 모습과 색채가 달라지지요. 사람들의 옷이나 표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슷한 체형의 사람이라도 전혀 다른 풍모를 보입니다.


설령 아무리 똑같아 보인다고 해도, 결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곧잘 잊습니다. 요즘에는 사진을 찍는다고 걷고 있을 때는 핸드폰도 잘 안 만지고 주변을 살피며 걷는데, 그렇게 부분 부분에 집중하다 보니 막상 거리 전체는 어떤 풍경이었는지 등한시하고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해묵은 말이지만 나무를 보면 숲을 못 보고 숲을 보면 나무를 보지 못한다는 이런 의미하는 거겠죠. 전체와 부분, 사이에서 무엇을 보느냐는 순간마다 달라집니다. 나는 그럼 대체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요.


눈앞에 펼쳐진 세계를 '보고 있다'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무엇 하나 제대로 의식하고 있는 건 없습니다. 물론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과 사물, 현상을 하나하나 의식하면서 산다는 건 피곤한 일입니다. 만약 컴퓨터라면 막대한 정보량을 처리하지 못하고 과부하를 일으킬 수 있겠죠. 인간의 뇌가 지닌 능력은 정말 대단하구나 싶으면서도, 그렇게 낯익은 것들을 의식 밖으로 밀어내는 과정에서 잃는 것도 있습니다. 스테레오 타입으로 세상을 파악하게 되는 것도 그러한 뇌의 습관에 기인한 것이니까요.


그렇다고 어제 보았던 풍경이 오늘 너무 색다르게 다가온다면, 그건 그것대로 곤란한 일이겠죠. 익숙함을 잃었을 때, 우리를 둘러싼 환경으로부터 느끼게 될 불안감과 공포를 감안하면 무언가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마냥 나쁜 일도 아닙니다. 다만 익숙함과 새로움을 잃어버려 그 의미가 퇴색된 상태는 구분이 필요합니다. 종종 나를 둘러싼 일상이 그 빛을 바랬다고 생각될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럴 때는 내가 제대로 보고 있는지 의심해보는 일도 필요합니다. 뭔가 놓치고 있는 거니까요.


본다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보니 우리가 의식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주어진 그대로 보고, 그걸 '보았다'는 걸로 받아들입니다. 일상이 무의미해보이고, 그 의미가 퇴색된 것처럼 보이는 건 그러한 믿음에 갇혀서 새롭게 바라볼 노력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겠죠. 눈을 뜨고는 있지만, 마치 눈 감은 듯이 살고 있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오늘 보았던 풍경과 그 감각을 잊지 않아야 겠습니다. 그와중에 내일은 또 내일대로, 색다른 일이 있을 거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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