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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May 15. 2019

선생? 스승?

[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년 5월 15일, 마흔세 번째 글.


5월은 가정의 달이라는 지칭이 무색하지 않게 유난히 관계에 관련된 기념일이 많습니다. 지난 5일과 8일은 각각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었고, 오늘은 스승의 날이었지요. 선생님 혹은 은사님께 평소에 표현하지 못한 고마움을 전달하기엔 이만한 날도 없을 겁니다. 김영란법 이후로 선물은 굉장히 조심스러워졌다곤 하던데 굳이 물건이 아니라 말씀이라도 드린다면 괜찮겠죠. 저는 특별하게 뭔가를 하진 않았습니다. 막상 선생님들께 연락을 드리자니 망설여지더군요. 초중고 합쳐 12년의 의무교육을 받은 게 벌써 10년도 더 된 옛날이고 대학교에서도 한 번 내지 두 번 정도 강의를 들은 게 전부였습니다. 인사를 드리자니 찾아가긴 해야 할 텐데 계실지도 의문이고,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한참 생각만 하다 이내 그만두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의문이 들었습니다. 선생 혹은 스승이란 대체 무엇일까요? 나아가 어떤 존재여야 할까요?


https://www.korean.go.kr/nkview/nknews/200005/22_1.htm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스승은 '자기를 가르쳐서 인도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선생은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을 의미하는군요. 굳이 사전까지 갈 필요도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선생이나 스승은 무엇을 가르치는 존재라는 인식이 우리 안에 이미 있으니까요. 그러나 굳이 그러한 단어가 있다는 건 차이가 있다는 것이고, 그 차이가 무엇인지 궁금한 것도 사실이죠. 실제로 둘의 뉘앙스도 묘하게 다르지 않습니까.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스승은 무당 혹은 스님에게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 합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를 참조하시는 게 더 좋을 것 같군요. 하여간 종교가 되었든 무엇이 되었든 뭇사람들에게 가르침을 베풀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존재라면, 과연 '스승'이라 할만합니다. 선생보다 더욱 큰 존경의 의미를 담을 때도 '스승'이라 하는 것도 납득이 가구요.


http://www.inh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401


과연 우리 주변엔 그런 존재가 있었나요? 구태여 스승과 선생을 구분하여 '스승'의 부재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글도 이해가 갑니다. 단지 지식을 가르치는 걸 넘어서 인생의 지혜 혹은 갈 길을 인도하는 존재가 없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대한민국 교육체계에서 교사 혹은 교수가 학생 개개인에게 그만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니, 무작정 교직에 종사하고 있는 분들에게 책임의 소재를 돌리고 싶진 않습니다. 다만 학생이었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쓴웃음이 나긴 합니다.  스승이라 할만한 분이 드물었던 게 사실이니까요. 밥벌이를 위한 수단으로써 누군가를 가르칠 뿐, 딱히 사명감은 없는 이들. 직업윤리는 개인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으니 비난할 수는 없겠지만, 그들에게 무엇을 배웠나 스스로 물어보면 떠오르는 게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저도 썩 훌륭한 학생은 아니었으니, 피차일반이라 치고 푸념은 이쯤 하는 게 좋겠네요. 그래도 초등학교 시절에는 꽤 좋은 기억도 있습니다. 4학년 때였을 겁니다. 만화에 관심이 생겨 연습장에 이것저것 낙서하기를 좋아했는데 담임선생님께서 관심을 가져주셨던 게 기억나네요. 어찌나 신이 나던지. 선생님의 코멘트만 기다리며 그림을 그렸던 게 기억납니다. 지금도 그때 그림을 그렸던 연습장을 가지고 있어 한 번씩 들여다봅니다. 조악한 그림에 그런 칭찬을 해주시려면 보통 배려로는 힘드셨겠죠. 하지만 그 외에는 그 선생님을 포함해 누구의 기억도 잘 나지 않습니다. 유난히 옛날을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긴 한데, 선생님들에 대해선 더더욱 남은 게 없습니다. 뭐라 해야 하나, 그때 제 시선은 온통 제 자신에게 쏠려있었으니까요. 남들이 눈에 들어올 턱이 없었죠.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을 선생님들에게 돌릴 수도 없습니다. 누구라도 그 시절의 저를 설득하기는 어려웠을 테니까요.


대학에서도 교수님들과 인간관계를 맺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일 뿐더러, 기실 교수님들과 어울린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어야 말이죠. 여러 교수님께 나름대로 배움을 얻긴 했으나 인생에 대한 길은 스스로 찾는 게 맞나봅니다. 그래도 학문하기 어려운 시대에 꿋꿋하게 교육자로서, 또한 연구자로서 일생을 바치는 모습에서, 우리 삶에서 무엇을 결정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실마리를 얻은 것도 사실입니다. 한때 멘토 열풍이 불었던 이유도 그만큼 우리 사회가 올바른 길을 인도해줄 존재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누구도 정답은 알 수 없습니다. 스승이라는 존재는 치열한 고민 끝에 자기만의 결론에 도달한 존재고 그것은 우리의 답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답을 내려야하지만, 그럼에도 그 답을 내리기까지의 고난과 역경을 알기에 스승을 존경하고 흠모하는 것이겠죠. 이렇게 보면 스승이 있는지 없는지 그 자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굳이 그 존재가 아닌, 삶의 태도야말로 스승이라 할 수 있겠죠. 다소 뜬구름 잡는 소리인 것 같기도 하네요. 오늘은 유난히 길어졌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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