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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May 14. 2019

마흔두 번째, 가성비라는 망령

[하루에 짧은 글 한 편] 2019년 5월 14일



하여간 만한대찬 우육면은 맛있게 먹었습니다.

오늘의 점심은 만한대찬 우육면이었습니다. 평소처럼 웹서핑을 하던 중 그 존재를 알게 되었지요. 면식 애호가라고 자칭하려면(?) 한 번쯤은 반드시 먹어봐야겠다고 결심했었지만, 근처 편의점에는 물건이 납품되지 않아서 며칠 동안 하릴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었습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발품을 팔아서라도 구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 마침 간단히 점심을 때우러 동네 편의점에 들어갔더니 떡하니 매대에 놓여있는 걸 보고 잽싸게 구매했지요. 가격은 꽤 비싼 편이었습니다. 4800원이면 컵라면이 아니라 편의점 도시락 혹은 순대국밥과 맞먹는 가격인데 제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고작 컵라면에 이만한 돈을 지불할 용의가 또 생길지는 의문이 들더군요. 그때 번뜩하고 단어 하나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물건의 값과 그 효용을 저울질할 때 기준으로 삼게 되는 바로 그것이죠. 가격 대비 성능의 비율. 즉, 가성비. 줄여서 부르는 게 훨씬 익숙한 단어 중에 하나죠.


국어사전에는 등재되지 않았어도 가성비는 우리 일상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일상의 모든 영역이 경제활동으로 환원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효율을 추구하는 거야 응당 필연적인 결과라 할 수 있고, 가성비라는 단어 역시 그 흐름을 반영한 결과입니다. 그렇지만 한국인은 유독 가성비에 혈안이 되어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당장 저만 해도 그렇거든요. 편의점을 이용할 때마다 2+1이나 1+1 같은 할인행사 상품에 반사적으로 눈이 돌아갑니다. 물론 다른 국가와 민족의 상황은 어떤지 턱이 없으니, 그에 비해 한국인이 가성비를 따진다고 말하는 성급한 일반화에 불과합니다만 '혜자' 혹은 '창렬' 같은 조어도 그렇고 사회와 언론, 기업에서도 거리낌 없이 가성비를 운운합니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07052.html


저널리스트 박권일 님도 이에 대한 칼럼을 한겨레에 기고하신 적이 있더군요. 위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해당 칼럼은 가성비를 끝판왕이라는 단어와 묶은 후 사회학적 관점과 더불어 한국 현대사 속에서 가성비가 득세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살펴보고 그 의미를 밝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석이 적절한지를 따져보는 것도 좋겠지만, 이 주장을 바탕으로 가성비가 우리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양상을 띄고 있나 확인해볼 필요도 있습니다. 곧잘 '언어는 개인의 의식은 물론 문화를 반영한다'는 투의 말을 주워섬기지만, 실제로 얼마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세세한 부분까지 면밀히 고민해보진 않으니까요. 정말 가성비는 우리 사회를 잠식하고 있다 말할 수 있을까요?


http://www.edaily.co.kr/news/read?newsId=02863446615859384&mediaCodeNo=257


가성비가 우리 사회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었다는 걸 마냥 느낌으로만 치부할 수도 없다는 걸 문화체육관광부의 2016년 트렌드 분석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해당 뉴스에서는 가성비가 한국 사회를 읽어낼 중요키워드로 자리매김했음을 시사합니다. 뿐만 아니라 네이버든 구글이든 할 것 없이 '한국인 가성비'라고만 검색했을 때 연관 뉴스는 물론이고 가성비가 좋다며 극찬을 보내는 상품소개글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죠. 인터넷까지 가지 않아도 우리 일상에서도 편의점 할인 행사를 비롯해 가성비를 연상케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그야말로 가성비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그에 들어가는 비용과 효용을 고민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가성비 그 자체나, 가성비를 따지고 드는 현실이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그 뒤에 무엇이 가려지는지 궁금할 뿐입니다. 개인의 취향과 판단 기준, 가치관은 다를 수밖에 없음에도 가성비 안에서 한데 뭉떵그려집니다. 제한된 비용 안에서 강요된 선택이 가성비라며 퉁쳐지기도 합니다. 그 가격이면 차라리 국밥을 먹겠다는 식의 인터넷 밈(meme)도 그저 농담으로만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가성비에 갇히는 순간, 저마다의 맥락은 사라지고 효용만이 유일한 잣대가 됩니다. 합리적인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합리만으로 살아갈 수도 없죠. 나는 무엇을 놓치고 있었나, 생각해보게 됩니다. 고민의 지점을 넓혀줄 글을 알게 되어 아래에 첨부합니다.


http://slownews.kr/61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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